옛 절터 바위에 벙글어진 ‘백제 미소불’ “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서산 보원사지 마애삼존불길

- 천년사찰 숲길 걷기명상


보원사지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길 용현계곡에
뭇 생명들이 일찌감치 일어나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108계단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숨 들이쉬고
내 쉬고를 반복하다 잠시 멈춘다

수정봉 산허리로 밝은 빛이 내려온다
마애삼존불의 미소가 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변한다

산색과 어울린 백제의 미소가
은은하게 벙글어진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보원사지 마애삼존불

여명(黎明)이 반기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산새들이었다. 해 뜨는 서산을 향해 새벽에 달려간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보원사지 마애삼존불을 친견하러 가는 길. 기자 생활 30여 년간 열 번은 족히 넘게 다녀온 길이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갈 때마다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난 2월, 추운 새벽길을 다녀왔고, 지난해는 벚꽃 피는 시절에 다녀왔다. 대개 새벽 시간에 방문했다. 오전 9시에 문이 열리면 백제의 미소불도 벙글어질 거란 생각을 해서다. 밤새 모두가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깨어있는 것들도 많았다. 계곡물도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뜨면 부처님의 미소를 제대로 볼 수 없다.


보원사지 계단

이른 새벽 부지런히 자동차 가속기를 밟아 도착한 서산 보원사 마애삼존불길 용현계곡에 다다른다. 뭇 생명들이 일찌감치 일어나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삼불교를 건너 돌계단을 오른다. 108계단이 됨직한 가파른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숨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다 잠시 멈춘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 했다. 이 어록은 중국 송나라 때 오조 법연선사의 일화에서 나왔다. 그에게는 뛰어난 세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불감 혜근선사, 불안 청원선사, 불과 원오선사다. 이들 세 스님을 일컬어 ‘삼불’이라 부르기도 했다.

어느 날 스승 법연선사가 세 명의 제자들과 밤길을 걷다가 갑자기 불이 꺼지자 제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혜근선사는 “채색 바람이 붉게 물든 노을에 춤을 춘다”고 했고, 청원선사는 “쇠 뱀이 옛길을 걸어가네”라고 했다. 마지막 원오선사는 “발밑을 보라”로 답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살피며 정진하라는 평범해 보이지만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글귀다.

사유하는 걸음 속에 ‘나는 조고각하를 하고 있는가?’를 물어본다. ‘……’

1959년에 발견돼,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된 마애삼존불. 그동안 단순히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되어 왔다. 수많은 민중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보원사의 스님 형제가 자구책을 마련하려 노력했다. 보원사 주지 정경 스님과 전 주지 정범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다. 세간에서도, 출세간에서도 형제인 두 스님은 2004년부터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온갖 수난을 받았다. “국보인 문화유산 앞에서 무슨 짓이냐?”며 관할 공무원들이 스님을 끌어냈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용맹정진한 끝에 문화유산관리소에 스님이 머무르며 찾아오는 불자들이 마애부처님을 친견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계기는 2005년 마애삼존불 아래에 존치해 놓았던 석조비로자나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부처님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행정관청과 협의해 마애삼존불 아래 관리실에서 머물면서 마애부처님도 지키고 스님들이 기도도 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는 관리권을 사찰측이 양도받아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고 불자들이 기도해 저마다의 소원을 성취하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보원사지 먼 풍경

오전 9시. 문이 열린다. 마애삼존불로 향한다. 수정봉으로 향하는 등산길을 지나 관리실에 이른다. 그 앞에 불이문(不二門)이 서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세계에 든다. 지극한 마음이 든다. 다시 돌계단을 오르니 마애삼존불이 우뚝 서 있다.

건너편 상왕산에 산벚이 하늘에 분홍구름을 수놓듯이 피어 있고 수정봉 산허리로 밝은 빛이 내려온다. 마애삼존불의 미소가 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변한다. 산꽃 색의 농도와 어울린 백제의 미소가 은은하게 벙글어진다.

“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삼존불은 발견된 후 국보로 지정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백제인들의 세련된 기술로 부드럽게 조각된 부처님의 미소는 그 어떤 미소보다 아름다웠다. 80도로 기울어진 채 조각되어 있어 비와 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게 한 점도 과학적으로 우수하게 평가받고 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동트기 전에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 수고로움을 한순간에 보상받는 순간이다.

도로명도 마애삼존불길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65-13.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삼존상은 얼굴 가득하게 자애롭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불리고 있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미소가 다르게 보이는 이 삼존상은 중앙에 여래입상을 중심(앉은 자리에서)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자리하고 있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도 머리에 다양한 무늬와 꽃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옷을 걸치지 않은 상체는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이러한 이례적 구성은 당시 백제에『법화경』의 유행과 관련해 석가여래에게 성불하라는 수기를 준 연등불, 즉 제화갈라보살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이다. 이는 석가여래가 태자였을 때 출가하기 전 고뇌하는 모습으로 ‘태자사유상’이라고도 하며, 미륵으로 여겨진다.

마애여래삼존상에 동쪽에서 솟아오른 아침 해의 기운을 받아 오른쪽 보살입상에서부터 미소가 스며들고 있다. 매번 올 때마다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마애부처님 미소가 너무도 자애로워 좌정하고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며 미소 삼매경에 빠져든다. 20여 년 전 인도여행을 하며 아그라의 ‘붐 타지마할’을 방문했을 때도 대리석 무덤탑의 황홀경에 빠져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본 기억이 있다.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맞닥뜨렸을 때 ‘턱!’ 하고 숨이 막히는 장면이다. 더구나 여기는 바위에 서 계시고, 반쯤 앉아 계시는 불보살이 아니던가! 그 감동은 느껴보지 않은 이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보원사지 석재부재들

제행무상의 진리를 설법하는 보원사지

지금은 첩첩산중이지만 마애삼존불과 보원사가 있었던 이 지역은 과거에는 교통의 요지로 아주 번성한 곳이었다. 삼존불이 조성된 시기인 6세기 말, 7세기 초는 백제시대였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과 신라의 강성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겼다. 그로 인해 중국과의 교역은 해로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지역은 태안반도에서 백제의 수도인 웅진(공주)과 사비(부여)로 가는 교역로 역할을 했다. 저 멀리 중국 실크로드를 거치고 산둥반도를 건너는 곳곳에 마애불이 조성돼 교역하는 상인들이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던 곳이다.

마애삼존불길을 내려와 보원사지로 향한다. 용현계곡 초입인 마애삼존부처님에서부터 1.2km 거리다. 덩그러니 폐사지로 남아 있는 초입에 보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사찰은 보원사지를 보존하기 위해 수덕사 스님들이 부지를 매입해 세웠다.

이곳에 서 있는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지난해 국보로 승격지정하는 경사를 맞았다. 높이 9미터의 석조물로 석탑 자체의 건립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탄문(坦文, 900~974년) 스님이 보원사에 있을 때 고려 광종을 위하여 봄에 불탑과 불상을 조성했다는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의 비문이 남아 있다. 석탑의 조영기법, 양식을 고려하였을 때 고려 광종 때인 10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도 알 수 있다.


보원사지 법인국사 탑과 탑비

넓은 사지를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는 데 족히 1시간은 걸린다. 사찰에 들어갔던 수많은 부재의 돌들이 산을 이루고 부도와 부도비가 대단했던 사격(寺格)을 알려준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는 폐사지는 무언설법을 하고 있다.

사지를 가로지르는 계곡 이름이 용현계곡(龍賢溪谷)이다. 긴 용이 굽이굽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주변에는 10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니 과거에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가늠이 된다. 고려시대 광종 때는 나라의 왕사였던 법인국사가 주석한 곳이다. 당시에는 천여 명의 스님들이 주석하며 화엄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 거대했던 화엄도량이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는데 이유는 전하지 않는다.

보원사지를 감싸고 있는 가야산 일대는 어떤 지역보다 계곡이 크고 깨끗하다. 그래서 여름에는 반딧불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용현계곡에는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산에는 산꽃이 만발했고, 들에는 야생화가 지천이다.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봄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로 들렸다.

봄비가 내린다. 보원사지 위쪽 산인 상왕산에도 단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산 너머 개심사에도 봄비가 갈증에 허덕이는 산을 적시고 있을 듯하다. 한동안 조용하던 산에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보원사 추녀 끝으로 비를 피한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보원사지를 촉촉이 적신다. 이 비 그치면 개심사 왕벚꽃도 곧 꽃소식을 전해 올 것이리라.

 

글/사진__여태동 시인. 경북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및 동국대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를, 동방문화대학원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찰과 전통한옥 고택, 동화, 고승인터뷰, 도시농부 일기 등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법정 스님 관련 등 10여 편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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