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법(縁起法)의 존재론과 실천 윤리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 연기법과 불교]

12연기(縁起)
12연기의 순역관(順逆観)은 초기경전의 핵심 부분이다.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触)•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가 각각 전자를 원인으로 해서 일어나고, 또한 전자가 소멸하면 후자도 소멸되므로, 노사 등 인생고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무명을 타파하여 해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법을 보는 자 나(여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라고 하심으로써 12인연에 관한 연기법이 가르침의 본질 원리임을 분명히 하셨다.
이 가르침에 내포되어 있는 ‘전생의 업력에 의해서 후생의 생명이 출현하고 업보도 받게된다’는 원리는 불교의 본질적 특징인데, 후대의 논사들에 의하여 찰진심념(刹塵心念) 삼라만상의 상호의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연기법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도 중생을 깨우쳐 해탈케 하려는 부처님의 큰 인연 즉 ‘일대사인연(一大事因縁)’과 그 가르침을 간절히 바라는 중생의 고통과 무르익은 근기(根機)라는 조건(縁)이 마주친 우주적 공명으로 출현하신 것으로 해석된다.
연기론의 이해, 나비효과부터 평행우주까지: 연기론의 확장
초기의 12연기는 후대 논사들에 의해 세계의 형성 원리로까지 확장되었다.
설일체유부는 이를 3세양중(三世兩重)의 인과로 해설하였다. 무명과 행은 전생, 식(識) 이하 유(有)까지는 현생, 생과 노사는 내생에 배대하여, 전·현·내생 전체를 관통하는 인과의 원리를 밝힌 것이라 보았다. 특히 식·명색·육입의 단계는 생명 잉태와 태생(胎生)의 과정으로서, 이는 ‘부모미생전진면목(父母未生前眞面目)’이라는 화두가 가리키는 본원적 생명력의 전개 과정과도 맥을 같이 한다.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찰나연기(刹那緣起)·원속연기(遠續緣起)·연박연기(連縛緣起) 등을 논하며 시간적 전개를 세밀화했고, 용수(龍樹)는 진제(眞諦)의 관점에서 시간의 실재성을 부정하며, 분별망상(무명)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세계(노사)가 '동시적으로' 구축되는 연기적 구조를 제시했다.
세친(世親)은 개인의 윤회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현상이 중생의 업력에 의해 나타난다는 ‘업감연기(業感緣起)’를 주장하였다. 우주와 자연환경 전체(기세간器世間) 역시 중생들이 공동으로 지은 행위의 에너지인 공업(共業, Collective Karma)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뒤이어 무착(無著)과 호법(護法) 등 유식학파는 모든 업의 씨앗(종자)을 저장하는 심층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상정하여, 세계를 이 종자의 투영으로 보는 ‘아뢰야연기’를 주장했다. 이는 ‘만법유식(萬法唯識)’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대승불교의 핵심 선언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하여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眞如)가 조건(무명)과 결합해 생멸의 현상계로 나타나는 ‘진여연기’ 혹은 ‘여래장연기’설이 대두되었다.
한편, 8세기 중국 법장(法藏) 등의 화엄사상에서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걸림 없이 우주 만물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서로 비춘다는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제시했다. 인다라망(Indra's Net)의 비유처럼 구슬 하나에 우주 전체가 비친다는 ‘상호즉입(相互即入)’의 논리는 의상 대사의 법성게(法性偈)에 압축되어 있다.
이러한 연기설은 불교의 중추이며, 무상·무아·공·중도 역시 연기라는 원리의 측면적 결론들이다. 모든 것은 쉼 없이 연기하기에 머물지 않고(無常), 불변하는 실체가 없기에 '나'라 할 것이 없으며(無我), 고정된 자성이 없기에 비어 있으나(空), 그 비어 있음이 곧 묘한 존재로 나타나기에 허무를 넘어선 중도(中道)에 이르는 것이다(眞空妙有).
과거에는 연기론의 환생·업보·사사무애 등이 비과학적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최신의 양자물리학·뇌과학 등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통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인류의 학문이 마음과 세계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는 과정이라면, 이는 모두 연기론의 각론에 해당한다. 해인삼매(海印三昧)는 이러한 연기의 실상이 왜곡 없이 투영된 ‘절대적 평온과 통찰’의 상태이며,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Anuttara-Samyak-Sambodhi)은 이 삼매를 통해 연기의 전모를 남김없이 깨우친 지혜의 완성이다.
그러나 연기론의 오남용은 엄격히 경계해야 한다. 연기법의 본질은 무명으로부터 괴로움이 일어나는 유전(流轉)과 그 소멸인 환멸(還滅)의 법칙에 있다. 이를 ‘우주적 상호연관성’으로 무한 확장하여 세상사 모든 현상을 모호하게 연결 짓는 것은 위험하다. 현상의 관계에는 필연적 인과뿐 아니라 단순한 상관관계나 우연도 존재한다. 필연적 제약이 없는 곳에 연기법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것은 법의 왜곡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부른다”는 식으로 예외적 논리를 일반화하거나, 부자와 가난의 관계를 단순 대립적 인과로 파악해 가난의 해결책을 부자의 제거에서 찾는 식의 궤변은 악취공(惡取空)의 전형일 뿐, 부처님의 정법과는 거리가 멀다.
연기론과 윤리, 깨달음은 진공 상태에서 오지 않는다: 진제와 속제
흔히 연기적 상호연관성은 상생(相生)의 선행을 요청하는 윤리적 논리로 쓰인다. 유교 「소학」의 ‘골육수분 본생일기’나 조식의 ‘칠보시’도 그러하다.
그러나 상호연관성은 상극(相剋) 상투(相闘) 상황에서의 복수나 징벌의 논리로도, 선악과 무관하게도 적용되는 것이어서, 아전인수적 일방 논리로 윤리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타당하기 어렵다.
상호연관성에 입각한 공(空) 도리에 달통하였던 나란다(Nalanda) 대학의 고승들이 침략자의 칼날 앞에서 비폭력으로 일관하다 인도 불교의 몰락을 초래한 비극은 우리에게 중대한 교훈을 준다. 용수는 이를 진제(真諦)와 속제(俗諦)의 이제설(二諦説)로 규명했다. 궁극의 차원(진제)에서는 모는 것이 공(空)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속제)에서는 사법적 책임과 국가적 방위가 엄연히 존재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개인의 번뇌를 도려내는 ‘의사의 메스’로서는 완벽하지만, ‘국방 장비’나 ‘실정법’에 대한 대체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해탈에 있지만(진제), 수행자가 발을 딛고 있는 터전은 엄연한 현실 국가이므로(속제), 불법을 수행하고 전승하기 위한 울타리는 보존되어야 한다. 권력과 관계함으로써 발생하는 각종 폐단과 위험은 최대한 차단해야 하지만, 호국을 불교와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는 견해는 바르다고 할 수 없다.
연기(縁起)법에는 연기가 없나?, 변하지 않는 원리로 변화하는 세상을 사는 법
부처님께서는 이 법이 항상 머물러 있다고 강조하셨지만, 용수는 연기에 통달한 자는 연기법이라는 개념조차 버려야 한다는 ‘공공(空空)’을 주장했다. 금강경의 뗏목 비유처럼 해탈의 언덕에 도달하면 진리의 도구마저 미련 없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연기법 자체도 무상한 것일까?
『법화경』「방편품」에는 제법실상(諸法実相)의 원리로 ‘십여시(十如是)’가 설해져 있다. 우주 만상의 모든 현상은 겉모습(相)•본성(性)•실체(体)•잠재력(力)•작용(作)•직접적 원인(因)•간접적 조건(縁)•결과(果)•과보(報)로 치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이 모든 과정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진실한 이치로 귀결된다(本末究竟等)는 것이다.
이처럼 선악의 모든 조건에 반응하여 만상(万象)을 짓는 철저한 인과율은 대승기신론 등에서 ‘불변수연 수연불변(不変随縁 随縁不変)’, 즉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인연(조건)을 따라 만물로 나타나며, 인연을 따라 만물로 나타나지만 그 근본 성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라고 포괄적으로 설명된다.
“다 잘 알고, 다 잘 도와서, 다 잘 살자”가 연기법에 따른 실천적 금언이라 하겠다.
1) 명(無明):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과 '나'라는 실체가 없음을 알지 못하는 진리에 대한 무지, 행(行): 어리석음에 기반한 의지적 행위, 식(識): 행위에 의해 형성된 분별하는 인식 또는 의식, 명색(名色): 입태시의 정신적(名) 요소와 물질적(色) 요소, 즉 육체와 마음의 결합, 육입(六入): 눈•귀•코•혀•몸과 의지라는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생성, 촉(触): 감각 기관이 외부 대상과 접촉함, 수(受): 접촉을 통해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 애(愛): 느낌에 따라 갈망과 욕망이 일어남, 취(取):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 유(有): 집착의 결과로 형성된 존재의 상태, 생(生): 출생, 노사(老死): 태어났기에 필연적으로 겪는 늙음•죽음•슬픔•고통.
2) 김윤수 역주(2019), 잡아함경Ⅱ, 운주사. 316면, 제13권 335경 「제일의공경(第一義空経)」 중 3. 등. 전체 가르침은 “속수법(束修法)이란, 예컨대 무명이 조건이 되어 형성하고, 형성이 조건이 되어 의식하며, … 순전히 괴로움의 큰 무더기가 일어나는 것처럼,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나는 것, 또 예컨대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며, …순전히 괴로움의 큰 무더기가 소멸하는 것처럼,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이다.
3) 김윤수 역주(2019), 중아함경Ⅰ, 운주사. 387면, 제7권 제30 「상적유경(象跡喩経)」 중 16.: 빠알리 『맛지마 니까야(MN)』 28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큰 경」.
4) 김윤수 역주(2019), 잡아함경Ⅳ, 운주사. 752면, 제47권 1265경 「발가리경」 5. 중 각주 62; 빠알리 『상윳따 니까야(SN)』 22:87 「왁깔리 경(Vakkali Sutta)」.
5) 법화경 방편품에는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것은 “중생들에게 여래지견(如来知見)을 열어주고(開), 보이고(示), 깨닫게 하고(悟), 들어오게 하기(入)” 위한 일대사인연 때문이라고 하셨다.
6) 龍樹(Nagarjuna)는 150년경 남인도 지방에서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고, 북인도에서 공부하고 다시 남인도로 돌아가 활동하였다. ‘있음(有)’과 ‘없음(無)’의 양 극단(二邊)을 벗어나기에 중도(中道)라 이름한다는 등으로 대승불교를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중론송(中論訟)」과 그의 수제자 제바(Aryadeva)의 「백론(百論)」이 유명하다.
7) ‘인다라망(因陀羅網, Indra's net)’ 개념은 고대 인도 베다(Veda) 신화에 나오는 무기이자 환술인데, : 불교가 인도 전통 신들을 호법신(護法神)으로 수용하면서, 인다라는 33천(도리천)을 다스리는 최고신 ‘제석천(帝釈天, Śakra)’으로 편입되었고, 그의 무기였던 그물은 제석천의 궁전 선견성(善見城)에 드리워진 장식물인 제석망(帝釈網)으로 되었는데, 법장(法蔵, 643~712) 등이 법계연기(法界縁起)를 설명하는 시각적·철학적 모델로 활용하였다, “그물에 달린 수많은 구슬 중 하나를 들어 올리면 전체 그물이 딸려 오듯, 하나의 현상(事)은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구슬 하나에는 다른 모든 구슬의 빛이 온전히 반사되어 맺히고(一中多), 동시에 그 구슬의 빛은 다른 모든 구슬에 각각 투영됩니다(多中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상징적 비유일 뿐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8) 용수는 중론(中論)에서 악취공의 위험성에 관하여 “공을 잘못 이해하는 것은, 독사를 잘못 잡는 것과 같고(뱀의 머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꼬리를 잡으면 오히려 뱀에게 물리듯, 공성을 잘못 이해하면 상하게 된다). 잘못된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다.”고 경계하였다.
9) 骨肉雖分 本生一気: 뼈와 살(육체)은 비록 각각 나뉘어 있으나, 본래는 하나의 기운(부모)에서 태어났다. 또한 형우제공 불감원노(兄友弟恭 不敢怨怒): 형은 아우를 우애로 대하고 아우는 형에게 공손해야 하며, 감히 서로 원망하거나 성내서는 안 된다.
10) ‘본시동근생 상전하태급(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본래 한 뿌리에서 났는데, 어찌 이리도 급하게 볶아대나!
11)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이 법(연기의 이치)은 항상 머물러 있다.(若佛出世 若未出世 此法常住 法住法界)〔김윤수 역주(2019), 잡아함경Ⅲ, 운주사. 61면, 제12권 296경 「인연경(因縁経)」 중 3.〕
12) 처음과 끝과 최종의 해탈이 조금도 다르지 않고 평등하다(같다).
구상진|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했고, 서울시립대 법학과 교수 및 동 대학 로스쿨 원장, ‘법조불교인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변호사,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명예회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불교와 자유민주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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