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길 위의 명상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



여행을 다니다 보면 

홀로 있는 사람들을 

많이 바라보게 된다. 

일행이 있어도,  

가끔씩 홀로일 때가 

‘여행자의 객수(客愁)’를 

경험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아닐까.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 중 하나가 소외감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괜찮치 않게 느껴질 때. 모두가 ‘우리’라는 울타리로 묶여 있는 것 같은데, 나만 그 ‘우리’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인간은 깊은 소외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가면’을 쓰기도 한다. 실제로 진정으로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대답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혹시 눈에 띄거나 중뿔난 사람처럼 보일까봐 그저 ‘무난한 길’을 선택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 김치찌개나 짜장면 같은 ‘대표 메뉴’를 고르니 나는 분명 다른 것이 먹고 싶은데도 ‘모두가 고르는 그 메뉴’를 선택하기도 하고, 단체나 조직에 속해 있을 때는 어떻게든 그 모임의 성격에 맞게 ‘나다움’을 배제하거나 은폐하기도 한다. 인간은 ‘어떻게든 튀고 싶은 욕망’과 ‘절대로 튀고 싶지 않은 욕망’ 사이에 끼어 있는 가련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탁월해 보이고 싶고 특출나 보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저 사람은 너무 특이해, 괴짜야’라는 식의 평판을 들을까봐 ‘자기다움’을 한껏 깎아내리고 숨기고 움츠러들기도 한다. 


여행을 떠났을 때 가장 깊은 ‘객수(客愁)’를 느끼는 순간이 바로 이런 ‘소외감’을 느낄 때다. 여행자나 외국인에게 꼭 눈에 띄는 차별을 하지 않아도, 우리 이방인은 언제든지 ‘외로울 준비’가 되어 있다. 여행자는 작은 친절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작은 소외에는 더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사소한 친절에도 정말 고맙고, 작은 차별이라도 결코 잊지 못한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곳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젖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나는 이방인이다’라는 느낌이 여행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방인이기에 소외감을 느끼지만, 바로 그 소외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뜻밖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작년에 프랑스 남부 도시 몽펠리에에서 나는 그런 이방인의 양가감정을 흠뻑 느꼈다. 8월의 몽펠리에에는 해마다 축제가 열리는데, 온갖 음식을 파는 사람들, 공연을 하는 사람들, 옷가지나 액세서리를 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인 채로 이 모든 광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일행은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술을 한잔 하자’며 작은 와인 잔을 받아들었고, 10유로에 향기로운 그 지방 와인을 넉 잔이나 듬뿍 따라주는 그곳 인심에 감동했다. 하지만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한 잔 왈칵 마시니 더욱더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온몸을 감싸며 한층 더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I’m an Englishman in New York.(나는 뉴욕의 영국인)」이라는 노래 가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원래 좋아하던 노래이지만 외국에서 이토록 외로울 때 들으니 더욱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어떤 가수가 무척이나 구성진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중간중간 이런 가사가 들려 마음이 더욱 쓰라렸다. 당신은 나의 악센트에서 내가 영국인임을 구별해낼 수 있겠지요.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요, 홍차를 마시지요. 영어도 통하는 미국에서 느끼는 영국인의 소외감이 이 정도인데, 프랑스어를 모르는 한국인은 프랑스에서 얼마나 커다란 소외감을 느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다음 가사를 누군가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누군가 당신에게 뭐라 하든, 당신은 그저 당신 자신이 되면 돼요. 정말 멋진 그 가사가 그날따라 더욱 감성을 자극해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나는 왜 내 자신이 되지 못하는 걸까. ‘프랑스어를 좀 공부할 걸,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좀 더 많이 할걸’ 하는 후회를 늘 떨쳐버리지 못하며, 여행할 때마다 더욱 깊은 ‘영혼의 허기’를 느끼는 나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이 부분을 누군가가 아름다운 화음을 넣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 순간 레게머리를 한 아리따운 흑인 여성이 그 노래를 원곡자인 스팅 못지않게, 정말 멋들어지게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무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석에서 그냥 흥을 돋우며 즉흥에서 화음을 만들어 부르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잘 걸지 않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화음과 마치 ‘관객석에서도 무대 위에 있는 것 같은’ 멋진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먼저 말을 걸고 말았다. 당신의 목소리가 무척 아름답다고.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지금 이 순간 이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인 것 같다’는 말을 삼켰다. 그러자 그녀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실 자신도 유명하지는 않지만 가수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한 작은 나라(안타깝게도 그 작은 나라 이름을 내가 잊어버리고 말았다)에서 가수의 꿈을 안고 프랑스로 왔다고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생계도 팍팍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무척 고생스러운 삶일 텐데, 그녀는 한없이 밝고 건강해 보였다. 그녀도 나처럼 철저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서툰 영어로 수다를 떨며 그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부르며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이미 ‘누가 뭐라든, 나는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라는 세계 속에 있었다. 그녀는 나처럼 이방인이었지만, 그 이방인의 슬픔을 극복해 점점 더 ‘나다운 세계’를 향해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었다. ‘나’에 대한 자존감이나 정체성은 그냥 나 혼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처절한 소외감을 겪어보기도 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해보기도 하면서, 자신의 바닥을 경험해보고, 그런 상황에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체험해볼 때 비로소 나다움이 만들어진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박완서 소설의 제목처럼, 인간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가장 밑바닥의 슬픔, 사랑, 인내를 경험하고서야 진정 ‘나다운 것’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여울|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KBS <정여울의 도서관> 및 EBS <클래스e>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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