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셰프 에릭 리퍼트의 일주일간의 한국 사찰음식 배우기

불자 셰프 에릭 리퍼트의 일주일간의 한국 사찰음식 배우기

“한국 사찰음식,
인류 생존의 열쇠를
쥐고 있어요”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자리한 유명 레스토랑 ‘르버나딘’의 공동 운영자이자 불자인 셰프 에릭 리퍼트가 지난 8월 5일부터 11일까지 한국의 사찰음식과 선불교를 배우기 위해 통도사, 백양사, 진관사를 방문했다. 본지에서는 티베트 불교 수행자이기도 한 에릭 리퍼트가 경험한 일주일간의 한국 사찰음식 배우기를 동행 취재해 소개한다.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에 위치한 르버나딘(Le Bernardin)은 품격 있는 프랑스식 생선요리 전문점이다. 이 레스토랑의 공동 운영자이자 셰프인 에릭 리퍼트(Eric Ripert)가 한국의 사찰음식과 선불교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다. 르버나딘은 미슐랭이 별 세 개를 준 뉴욕의 7개 식당 가운데 하나이며 2013년에는 저갯(Zagat) 조사에서 뉴욕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뽑히기도 했다. 1994년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에릭이 르버나딘의 셰프가 된 이후 『뉴욕타임스』에서는 무려 9개월에 걸쳐 10여 번의 심사를 나온 끝에 르버나딘에 최고점수인 별 네 개를 주었다. 그때부터 에릭의 명성이 사방에 알려지게 되었다.


에릭 리퍼트는 “사찰음식은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깨달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해준다는데 의미가 있다”며, “인류의 지속 가능한 문화 향유와 생존을 위해서도 사찰음식이 더욱 보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베트 불교 수행자이기도 한 그는 매일 불자의 예경의식과 명상을 수행한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의 법회에 여러 번 참석하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졸기도 하고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작년에 쫑카파의 논서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전혀 졸리지 않고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와서 참으로 기쁨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신실한 불자다.

그는 사찰음식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사찰음식은 건강하고 주변에서 직접 가꾼 유기농 채소를 사용하며, 채식이기에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환경보존에도 좋은 음식입니다. 특히 음식을 하는 사람이 정성스럽게 자비로운 공양을 올리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고, 그 음식이 먹는 사람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맑혀 깨달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해준다는 데 사찰음식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고 말하는 에릭은 “사찰음식 스타일의 식단이 얼마나 보급되느냐에 따라 인류가 앞으로 지속 가능한 문화를 향유하며 계속 생존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달려 있다”며 현재 지구촌 문화에 대해 비장하게 진단한다. 그래서 이 한여름에 휴가도 포기하고 이곳 한국에 와서 사찰음식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셰프’는 나의 직업이 아니라 열정이고 삶의 방식

어머니, 외할머니, 친할머니 모두 각각 다른 전통의 요리를 해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는 에릭은 ‘셰프’가 천직 이상의 무엇, 즉 자신을 지탱시켜주는 열정(passion)이며, 삶의 방식(lifestyle)이라고 말한다. 

백양사 천진암의 정관 스님과 함께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2014년 에릭이 <아베크 에릭(Avec Eric)>이라는 미국 공영방송 요리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왔을 때 정관 스님과 사찰음식에 대해 촬영한 에릭은 그해 8월 정관 스님을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해 음식과 레스토랑을 다루는 주요 매체의 기자들에게 사찰음식을 선보였다. 이날 기자들은 한눈에 눈앞에 차려진 음식에 반했고, 맛을 본 후엔 더욱 매료되었다. 


에릭은 통도사에 머물며 원상 스님에게 한국의 사찰음식을 배웠다. 스님과는 이번이 첫 만남이었지만 불연으로 연결된듯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정성스레 수삼채소말이를 만들어냈다. 

수삼채소말이. 수삼을 돌려 깎아 얇게 뜬 후, 거기에 버섯 등 채소들을 양념하여 속을 넣고 삶은 미나리로 묶어 낸다.


사찰음식에서도 불교에서도 제자

천진암에서의 3일간 에릭과 정관 스님이 보여준 호흡은 환상적이었다. 어떤 말들은 통역을 하기도 전에 서로 알아차렸다. 천진암 야외에 설치된 가마솥에서 한낮의 태양도 불사하고 장작으로 불을 때서 곤드레밥을 짓고 방아잎장떡을 구울 때 에릭은 자청해서 불쏘시개를 넣고 풀무를 돌려 불을 지폈고, 정관 스님과 나란히 서서 방아잎과 감자를 곱게 채 썰어 장떡 구울 준비를 했다. 채마밭에서는 채반을 들고 스님과 함께 방아잎과 곤드레, 깻잎과 고추를 땄다. 방아잎을 따서는 씹어서 맛을 보고 ‘향긋하다, 서양의 아니스 같다’고 말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곤 했다.   


저도 스님이 되어 수행하고 싶어요

놀라운 직관력과 화통한 성품의 정관 스님을 에릭은 티베트의 다키니에 비유했다. 보통 우리나라에선 범종의 천녀로 묘사되곤 하는 다키니는 실은 밀교의 수행법을 직접 전수하고 수행자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틸로빠나 밀라래빠가 모두 다키니로부터 밀법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람으로 태어난 다키니들은 밀교 수행자들의 도반이 되기도 하고 불모(佛母)가 되어 불교의 진리를 전수한다고 한다. 

가끔씩 진지하게 머리 깎고 수행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리되면 상처받고 힘들어할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곤 한다는 에릭에겐 아내 산드라와 아들 에이드리언이 있다.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꼭 오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불교는 무엇인가요

티베트 불교 수행자로서 에릭은 선불교가 궁금했다. 어디를 가든 스님을 만나면 꼭 두 가지 질문을 했다. 하나는 ‘선불교가 무엇인가요?’였고 또 다른 하나는 생선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보니 생명을 죽여야 하고 그래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를 자꾸 어기게 되는 게 마음에 걸리니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천진암 정관 스님, 백양사 원일 스님, 진관사 도운 스님, 통도사 원상 스님, 도안 스님, 수안 스님의 설명이 모두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거듭하며 에릭은 조금씩 혼돈의 구름을 걷어내고 나름의 이해를 터득한 것으로 보였다. 선불교의 경우 티베트 불교의 ‘릭파(rigpa)’와 깨달음의 비교, 오체투지와 절 등을 비교해 가르침의 굵은 둥치는 같지만 세부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살생의 경우 물고기는 자연사를 하든 아니면 인위적으로 죽음을 당하든 좀 더 높은 차원의 생명으로 진화할 운명이다. 그에게 좋은 곳으로 가서 더 훌륭한 삶으로 태어나라고 기도해주며 죽인다면 실은 그를 위한 일을 해주는 것이란 설명도 있었다. 또 살생이라는 개념이 어찌 물고기에만 국한되겠는가. 미세한 차원으로 가자면 우리가 한 번 호흡을 들이쉬는데 죽어가는 미생물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살생이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면 일 년에 한두 번 천도재를 해주라는 조언도 있었다. 


마음을 그려주세요

수안 스님과 만났을 때는 예술가적 기질이 같아서였을까, 에릭은 더욱 신선하고 직관적인 질문과 답을 하고 있었다. 수안 스님의 복장이 다른 스님과 다른 것이 눈에 띄였는지 에릭은 ‘그래도 스님인지, 사찰 생활방식을 유지하는지’를 물었다. 수안 스님은 ‘외관적으로 완벽한 수행자 생활을 하지 않는다 해도 무엇을 하든 내 몸의 세포 한 개는 늘 돌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에릭을 위해 그림을 하나 그려주겠다는 스님에게 에릭은 ‘마음을 그려달라’고 말했다. 스님은 웃는 얼굴을 그리고 그 주변에 푸른색으로 넓은 광배를 그렸다. 에릭은 푸른색이 본인이 좋아하는 색인데 어찌 아셨나 모르겠다며 흐뭇해했다. 얼굴 아래에 작은 발우를 그린 스님은 말했다. “이 발우는 지금 비어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만든 최고의 요리를 이 발우 안에 담으세요.” 


통도사에서는 가마솥에 장작을 때서 부처님 마지와 스님들 공양을 짓는다.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끓는 물에 쌀을 넣고 물을 맞춘 후, 스테인리스 삽으로 일정 시간에 두어 번 쌀을 휘젓는다. 그동안 장작불의 화기를 조절하고 적당히 뜸을 들여 밥을 지으면 마지막에는 완벽한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름달 모양의 구수한 누룽지가 솥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통도사 공양간에 뜬 보름달 누룽지

통도사에서는 이례적으로 가마솥에 장작을 때서 부처님 마지(부처님에게 올리는 밥)와 스님들 공양을 짓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에릭에게 보여주었다. 세 분의 스님이 한 조가 되어 밑에서 때는 장작의 화기와 위에서 조절하는 물의 양, 뜸 들이기와 완성된 밥을 푸는 것이 모두 절도 있게 하나의 의례가 되어 있었다. 먼저 물을 끓이고, 끓는 물에 불린 쌀을 넣고 물을 맞춘 후, 이후 1분 20~40초 간격으로 두 번 쌀을 휘젓는데, 도구는 스테인리스 삽이다. 그동안 장작불의 세기나 장작의 위치도 알맞게 바꾸어준다. 이후 40분 정도 뜸을 들인다. 솥뚜껑은 열지 않고 오직 냄새로 밥이 어느 정도 익었는지 안다고 한다. 밥을 다 지은 후 가마솥에서 누룽지를 떠냈다. 솥바닥 모양에 맞추어 노릇한 누룽지를 떼어내어 스님이 들고 서자 그 지름이 스님의 가슴보다도 컸다. 완벽한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름달 모양의 누룽지를 보며 모두 환희심에 박수를 쳤다.


삼인삼색의 사찰음식

세 곳 사찰에서 사찰음식을 경험하며 사찰음식이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수 있고 창의성이 가미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에릭의 소감에 의하면 백양사 천진암의 정관 스님은 전원풍의 소박한 전통 사찰음식(rustic traditional), 진관사의 도운 스님은 세련된 전통 사찰음식(sophisticated traditional), 그리고 통도사 자연음식연구소의 원상 스님은 ‘자, 이제 창조해볼까요(Let’s create)’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르버나딘의 메뉴에 한국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고추장과 김치를 응용한 요리가 있다고 말하는 에릭은 이번 가을 메뉴에는 흑임자죽에서 영감을 받아 검은깨를 사용한 리소토를 개발해보려고 구상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에릭 리퍼트와 함께한 일주일은 음식과 수행이 잘 어우러진 행복한 나날이었다. 에릭과 그의 대행사 대표인 나디아 조의 유머 감각, 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팀의 열성과 각 절 스님들의 수행의 향기가 함께 어우러져 수행자의 조화로운 식단인 사찰음식의 하모니가 자연 속에 펼쳐졌다. 한국 사찰음식이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전하고자 하는 에릭에게 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의 불교 수행도 그의 음식과 함께 잘 익어가기를 바란다. 



취재·정리|연천(자유기고가), 사진 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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