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수행 방법|참선을 말하다

참선 수행 방법

김방룡
충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참선(參禪)’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선법(禪法)을 참구하는 것으로 스스로 좌선하거나 평소 자기가 존경하는 선지식에게 가서 선을 배우고 닦는[參學] 것’을 말한다. 선(禪)은 마음을 고요히 해 번뇌의 근원을 다스리고, 나아가 본래의 자성을 깨닫는 데 목적을 둔다. 불교의 기원지인 인도에서부터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선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실천되었으나, 공통된 본질은 ‘깨달음의 직접적 체험’에 있다.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통해 실상을 확인하는 길이 바로 선 수행이다.


인도 불교의 명상 전통과 선의 기원

인도의 선(禪)은 고대 인도의 명상 사유법인 요가(Yoga)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가라는 말의 의미는 ‘말이 제멋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말고삐를 말뚝에 꼭 묶어두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산란한 마음을 어떤 하나의 대상에 연결시켜서 사유하고 명상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안하게 하는 정신 통일 수행법이다. 이 요가가 후에 붓다의 깊은 사유와 정각(正覺)을 통해 불교의 수행법인 선정(禪定)으로 체계화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초기부터 선 수행을 중시했는데, 그 대표적인 방법이 사마타(止, 심일경성으로 마음을 집중시켜 번뇌를 가라앉히는 수행)와 위빠사나(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 수행)이다.     


중국 남종선의 정착과 선 수행법의 변화   

달마 대사를 시조로 한 중국의 선종은 사조 도신에 이르러 정착되었으며, ‘교외별전(敎外別傳)・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리고 육조 혜능에 이르러 선 수행은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점차적인 수행법이 아닌 본래성불(本來成佛)에 입각한 즉각적인 깨달음의 방법으로 그 의미가 전환된다. 이를 ‘육조 혁명’이라 말하기도 한다. 혜능은 점수(漸修)를 통한 성불의 전통을 부정하고 본래 부처임을 돈오(頓悟)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혜능 이전의 선 수행법은 먼저 선정을 닦아 지혜가 나타나는 선정발혜(先定發慧) 또는 선정이 원인이 되어 지혜가 나타나는 인정발혜(因定發慧)를 말한다. 그러나 남종선의 입장은 돈오견성으로 그 근거는 자심(自心)의 본질인 자성(自性)이다. 자성은 불성(佛性) 혹은 진여본성(眞如本性) 등의 의미와 통한다. 깨달음의 가능성이 자성에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단경』에서는 이를 직심(直心)을 통해 말하고 있다. 혜능은 『단경』에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이고, 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다. 자성이 자각해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만 일체의 모든 경계에 진여 자성은 더럽혀지지 않고 언제나 청정하며 자유자재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선 수행이란 일상생활에서 직심을 행하는 것이 되며, 이를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모든 행위의 주체・내용・방법・원인 등이 진여본성에 완전무결하게 다 갖추었기 때문에 바깥에서 구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혜능은 좌선에 대해서도 “밖으로 일체 선악 경계에 심념(心念)이 일어나지 않음이 좌(坐)가 되고, 안으로 자성이 동하지 않음이 선(禪)이다”라고 해 좌선이 형식에 있지 않고 그 본래적 의미의 깨달음에 있음을 말한다. 


조사선의 선 수행법

당나라 무종의 회창법난을 계기로 혜능의 남종선은 위앙종・임제종・조동종・운문종・법안종의 5가로 분화되면서, 중국의 선을 대표하게 된다. 이 시기를 ‘선의 황금시대’라고 말하고, 이들의 선을 ‘조사선’이라 부른다. 조사선의 정신은 ‘본래성불(本來成佛)’과 ‘무수무증(無修無證)’에 있다. 이러한 조사선 정신에 비추어보면 정형화된 선 수행법이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선 수행에 특별한 방법이 있다’라거나 혹은 ‘어떤 수행법을 통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라고 말한다면 선의 본질과 동떨어지게 된다.   

『단경』에서 혜능은 “스스로 깨달을 수 없으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견성토록 해야 한다. 만약 스스로 깨친 이라면 밖으로 선지식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 만약 밖으로 선지식을 구하여 해탈 얻기를 바란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자기 마음속의 선지식’을 알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깨달음이란 밖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며, 선지식 또한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수무증의 조사선의 경지에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혜능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무념(無念)과 무상(無相)과 무주(無住)의 삼무이다. 『단경』에서 혜능은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위로부터 전하여 온 이래로 돈(頓)·점(漸) 모두 무념(無念)으로 종(宗)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으며, 무주(無住)로 본(本)을 삼음을 세웠다”라고 말한다. 무념이란 ‘생각함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무상이란 ‘상(相)에 있어서 상을 떠난 것’을 말하며, 무주란 ‘사람의 본성이 됨을 말하는데, 염념(念念)에 머물지 않고 전념(前念)·금념(今念)·후념(後念)이 염념에 상속(相續)해 단절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조사선의 수행법은 ‘돈오’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일체법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돈오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막히게 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방법은 존재하지 않고 깨달은 선지식(스승)과 깨닫지 못한 학인(제자)만이 존재하게 된다. 결국 학인이 선지식을 만나 기연(機緣)을 통해 단박에 깨닫게 되는 전 과정이 선 수행법이 되는 것이다. 이를 도식화하자면 학인이 발심과 더불어 선지식을 찾아 참알(參謁)하고,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참구 과정이 이어진다. 그리고 선지식의 깨달음에 대한 감변과 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선지식의 지시’를 제접(提接)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선지식과 학인들의 참알을 통한 제접의 과정이 이후 ‘공안(公案)’으로 정형화된 것이다. 


간화선의 선 수행법 

문자선・간화선・묵조선・염불선 등 선 수행법에 따른 다양한 선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선 모두가 조사선의 변용 내지 변주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조사선이 시절 인연에 따라 문자선으로 변용되었고, 문자선에 대한 반성에서 간화선과 묵조선이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선사상과 정토사상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염불선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중 한국의 선승들의 주된 수행법이 간화선이다.    

‘간화선’이란 용어는 ‘화두[話]를 간(看)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선’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간(看)’이란 ‘지켜보다’, ‘주시하다’, ‘살펴보다’ 등의 의미라 할 수 있고, ‘화두(話頭)’란 역대 조사들의 선문답, 즉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수행자의 내면에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간화선은 남송대 대혜 종고에 의해 주창되었는데, 이후 몽산 덕이에 이르러 그 수행 단계가 정형화된다. 이러한 간화선의 수행 단계는 화두결택, 회광자간(廻光自看), 삼 과정(동정일여・몽중일여・오매일여) 투과, 오후(悟後) 종사 친견, 오후보림 등의 과정으로 설명된다. 

간화선 수행법의 특징은 ‘화두’를 가지고 ‘분별 망상’을 깨부수는 것이다. 화두에 대한 의정(疑情)을 통해 의단(疑團)을 형성하고 이후 의단을 삼매화해 지속함으로써 분지일발(噴地一發)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간화선 수행의 관건은 ‘의정의 의단화’라 할 수 있다. 사구(死句)가 아닌 활구(活句)를 참구할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의정’을 통해 ‘의단’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분별 의식이 작동하게 되어 있다. 즉 ‘분별 의식을 가지고 분별 의식을 깨부수는 것’이 간화선의 묘미이다. 

간화선 수행의 또 다른 특징은 일상생활을 떠나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대혜가 조동종의 묵조선을 비판하고 있는 핵심적인 쟁점 가운데 하나가 고요한 곳을 찾아 적정 속에서 지관타좌(只管打坐)하는 것이었다. 이는 깨닫지 못한 상태에 안주하는 것이고, 또 일상생활을 등지는 것이어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마조가 앉아 있는 선을 일으켜 세웠던 것처럼 대혜는 일상의 시끄러운 곳에서 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혜는 곳곳에서 고요한 곳[靜處]과 시끄러운 곳[鬧處]을 가리지 않고 선을 해야 하며, 만약 고요한 곳은 옳고 시끄러운 곳이 그르다는 견해를 가지면 세간상(世間相)을 무수고서 실상(實相)을 구하는 것이 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점에서 간화선은 혜능의 일상삼매나 마조의 평상심시도의 정신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조사선과 간화선의 의의

오늘날 선 수행은 불교 교단 내부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서구에서는 명상과 마음챙김(mindfulness)의 형태로 널리 보급되어 심리 치료와 교육, 기업 경영에까지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직장인과 청소년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 템플스테이와 같은 문화 체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선 수행이 단지 출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대인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선과 간화선 수행법은 한국 불교 전통 속에서 이어져 내려온 가장 핵심적인 참선 수행법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근원적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심신의 평안을 추구하는 서구의 명상이나 마음챙김과는 차이가 있다.  



김방룡|전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보조지눌과 태고보우의 선사상을 비교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중국 북경대, 절강대, 연변대 등에서 방문 연구 학자를 지냈다. 한국선학회장과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보조지눌의 사상과 영향』을 비롯해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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