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맡길 것 없이,
내맡길 뿐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내맡기고 흘러갈 뿐
『사십이장경』은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치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나뭇가지와 같다. 양쪽 기슭에 가 닿지도 않고, 누가 건져 가지도 않고, 소용돌이에 휩쓸리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다면, 이 나뭇가지는 마침내 저 드넓은 바다에 다다를 것이다. 우리들도 이와 같아서 탐욕에 빠지거나 잘못된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정진에 힘쓴다면 반드시 뜻을 이룰 것이다.”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나뭇가지! 내가 나뭇가지가 될 것도 없이, 본래 삶 자체가 그러하지 않은가! 나뭇가지는 억지로 물의 기슭, 마른 땅으로 가려고 애쓰지 않고, 빨리 가려고 애쓰거나 늦게 가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양 갈래 길이 나오더라도 어느 한 길을 고집하지 않고, 다만 흐름을 타고 완전히 온 존재를 그 흐름에 맡길 뿐이다.
그렇게 완전히 내맡기고 흐르기 때문에 흐르면서도 그 어떤 집착도 결박도 멈춤도 없고, 자연스럽게 완전한 놓음을 순간순간 행함 없이 행한다. 그렇듯 흐름에 들 때 비로소 저 드넓은 바다에 다다른다.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내던지고, 어떻게 살려고 애쓰는 흔적을 지워버리고, 삶의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빨리 가려고도 늦게 가려고도 애쓰지 않고, 분별없이 다만 삶의 큰 물줄기에 온 존재를 내맡긴 채 다만 흐르기만 할 수 있다면 그는 반드시 큰 자성의 바다에 다다를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삶이라는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완전히 나뭇가지처럼 나를 버리고 내맡겨보라. 아니, 내가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저절로 내맡겨져 있다. 내맡김은 본성이다.
좋고 싫다는 느낌도 놓아버리고,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그저 다 내맡기고 다만 흐름을 타보라. 그렇게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는 것, 그래서 흐름을 끊지 않고, 인생이란 강가의 어떤 기슭에도 정박하지 않고, 어떤 좋은 인연이나 상황이나 소유에도 머물지 않고, 다만 흘러가는 것, 그런 노력 없는 쉼의 자연스러움 그것이 바로 정진이요 수행이고 명상이다.
어쩔 수 없이 언어로 표현하다 보니 ‘내가’, ‘맡기고 흐르는’, ‘수행’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그런 허다한 말이 필요 없다.
그렇게 완전히 삶에 힘을 빼고, 그저 내맡기고 흐름에 드는 것, 그래서 이미 지나온 과거나 아직 다다르지 않은 미래에 무엇이 오게 될지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다만 흐르기만 할 때, 그때 우리는 저 자성의 대양을 만날 것이다. 이 또한 사실은 언젠가 대양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언제나 자성의 바다 위에 있었음을 문득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애쓸 것 없는 공부
현실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짜맞추기 위해 애써야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행하고, 노력하고, 공부하고, 일해야만 한다. 그것이 곧 성공적인 삶이며, 남들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이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전략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참된 진실은 그와 반대다. 모든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해야 할 것은 없다. 저절로 되어질 뿐.
애쓰지 않고 내맡긴 채 그저 따라 힘을 빼고 흐르기만 해도 모든 것은 저절로 완전하게 주어진다. 개체적인 자아로서인 ‘나’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 바로 그때에 정확하게 그 일은 저절로 일어난다. 이 길과 저 길 중에 더 나은 길을 애써서 결정하지 않더라도, 결정해야 할 때가 되면 저절로 결정이 내려진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때가 되면 저절로 결정이 내려진다.
내가 한다고 여기지만 정말로 내가 하는 것이 분명한가? ‘나’만 내세우지 않고, 내 고집만 집착하지 않으며, 내 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삶이 원하는 대로’ 완전하게 운행되고 있다.
그저 힘을 빼고 함이 없이 할 뿐, 더 이상 할 일은 없다. 할 일이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 누구보다 매 순간 최선으로 행위를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것이며,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다.
무엇이든 눈앞에 주어진 일에 순수한 최선을 다한다. 인연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집착이 없으니, 최선을 다하더라도 결과는 온전히 내맡길 뿐,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좋다.
이렇게 ‘집착 없이 행하면’, ‘하되 함이 없이 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최선을 다해서 행동하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고요하다. 하는 바 없이 모든 것을 다 처리한다. 저절로 모든 것은 되어지고 있다. 내가 고민할 것은 없다.
‘나’도 없고, 내가 반드시 해야 할 것도 없다. 다만 인연 따라 잘 반응하며 산다. 가볍고 즐겁게, 많은 생각 없이, 욕심 없이, 집착 없이, 텅 빈 마음으로 살지만, 매 순간을 100% 연소하며 산다. 온전히 매 순간의 현재를 오롯이 허용하며 산다.
삶의 아름다움은 늘 눈앞에 드러나 있다. 내가 할 것이 없으니, 법계가 알아서 모든 것을 저절로 운행시킨다. 물론 그런 ‘법계’, ‘불성’, ‘참나’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따로 없지만. 따로 없으면서도, 이렇게 묘하게 깨어서 모든 것을 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공적영지(空寂靈知)! 삶은 완전한 이완, 고요, 텅 빔, 무아, 무집착, 무위로써 저절로 흘러간다. 모든 것이 다 있는데, 그 어떤 것도 없다. 그 어떤 것도 없지만, 완전히 없지는 않으니 묘하게 있고, 소소영령하게 안다. 이것은 개념이 아니라, 당연한 삶이다.
아상, 에고만 없으면, 분별에만 끌려가지 않으면, 추구심이 문득 끊어지면, 모든 것은 완전하고, 있는 그대로다. 여기 무슨 문제가 있는가?
법상 스님|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해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통해 16만 명의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고,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상주 대원정사 주지, 목탁소리 지도법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육조단경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도표로 읽는 불교교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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