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으로 나라의 기둥을 세운 사람|대원 장경호 거사 50주기 추모

철강으로 나라의 

기둥을 세운 사람


권대욱

전 한보철강 건설부문 대표


1960년대 동국제강 부산제강소 상량식에서의 대원 장경호 거사



나는 산업계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수많은 기업인을 보아왔다. 그러나 ‘산업을 세운 사람’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단연 동국제강 창업주 장경호 회장이다. 한 사람의 경영자가 어떤 방식으로 한 시대를 견인하는지를, 그분의 행보를 통해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민간 철강의 시작, 동국제강의 탄생

1954년, 전후 재건도 채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 철강사업을 시작한 장경호 회장의 결단은 그 자체로 비범했다. 당시 철강은 국가 차원의 통제산업이거나 외국 의존도가 높았고, 민간이 직접 제강소를 짓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철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동국제강을 설립했고, 그것이 한국 민간 철강산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국가 산업을 떠받친 조력자

동국제강은 철근, 형강, 봉강 등 건축과 인프라에 필수적인 강재를 생산하며 한국의 산업화와 도시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1960~1980년대, 고속도로 건설·조선업 성장·도시 고도화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장 회장이 공급한 철강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경제의 뼈대가 되었다. 그의 기업은 단순한 영리 추구가 아니라 국가 기반을 떠받드는 공공성 있는 민간 비즈니스였다.


윤리와 신뢰 최우선의 경영 철학

나는 실무에 몸담으며 종종 “동국제강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경호 회장은 늘 신용을 자산으로 삼는 경영을 실천했다.

외상 거래보다는 현금 흐름 중심의 내실 경영, 공급처와의 장기적 신뢰 관계, 투기성 사업에 대한 철저한 경계.

이런 원칙이 위기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조직을 만들었다.


공기업 시대 속 민간의 자존심을 지키다

1970년대 이후, 정부 주도의 포스코 등 공기업이 철강산업의 중심으로 올라서던 때에도, 장 회장은 기민한 민간 전략과 품질 중심의 경영으로 시장 내 입지를 지켰다. 

특히 포스코가 집중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선점하거나, 고객 맞춤형 유연 생산 체계를 구축해 동국제강만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나는 한보에 있을 때, 이 유연한 시장 대응 방식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후계와 지속 가능성까지 준비한 기업가

내가 특히 인상 깊게 여긴 것은, 장 회장이 단순한 창업자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했다는 점이다.

그의 손자인 장세주 회장은 내 중앙고 후배이기도 하다. 그는 단지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경영자로서 기업의 중심에 섰다.

장경호 회장은 가족에게 경영을 넘기되, 전문성과 책임 경영을 강조하며 기업의 공공성과 연속성을 중시했다.

불심(佛心)으로 다져진 기업가 정신 – 대원 장경호 거사의 경영 수행

대원 장경호 거사의 기업가 정신은 단순한 근면과 검소의 윤리로만 요약되지 않는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의 밑바탕에는 깊고도 굳센 불심(佛心)이 자리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기업가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내면에는 철저한 수행자이자 회향자의 자세가 깃들어 있었다.


기도와 염불로 시작하는 하루

대원 거사는 매일 아침, 일과보다 먼저 법당 앞에 앉았다. 손에는 염주를 쥐고, 마음은 청정하게 다듬어졌다. 이른 새벽의 기도는 그에게 하루의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이었다. 직원들과의 관계, 중요한 투자 결정, 사람을 쓰는 문제까지 그는 늘 먼저 마음의 경계를 닦고 나서 움직였다. 

이런 태도는 경영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대원 거사의 판단은 조급하거나 감정적이지 않았다. ‘냉철함’ 이전에 ‘정심(正心)’이 있었다. 그는 “마음이 어지러우면 사람도 일도 흐트러진다”고 말하곤 했다.


불교의 사성제와 팔정도를 닮은 경영 원칙

그의 경영 철학은 불교의 교리에 자연스럽게 닿아 있었다. 고(苦)를 직시하되, 집착하지 않고, 도(道)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 마치 사성제의 구조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극복의 길을 모색하는 태도였다.

예컨대 위기 속에서도 경쟁사를 비방하거나 탓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위기의 원인을 ‘밖’에서 찾기보다, 항상 ‘내 안’과 ‘내 조직’에서 먼저 돌아보았다. 이는 팔정도의 ‘정견’과 ‘정사유’를 경영 판단에 끌어온 실천이자, 그가 보여준 불자적 통찰이었다.


보살행과 직원 경영

장경호 거사에게 직원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업을 함께 짓는 동반 수행자였다. 그는 직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고, 직원의 성장을 자신의 복으로 여겼다.

무재칠시 중 ‘언시(言施)’와 ‘심시(心施)’를 실천하며, 인격을 존중하는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사무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말단 직원의 고충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었다.

특히 직원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장례와 질병 등 위기 때는 직접 찾아가 돕는 등, 그의 보살행은 조용하면서도 실천적이었다.


무소유의 청빈함과 자비의 분배

장 회장은 자신에게는 검소했지만, 타인에게는 후했다. 회사의 이익이 나면 그것은 온전히 사회와 함께 나누는 공덕의 기회라고 여겼다. 경영인으로서는 이례적일 만큼 사회복지, 교육, 불교계 기부 활동에 막대한 자원을 회향해왔다.

특히 불교계 교육기관에 대한 후원은 단발성이 아닌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이었다. 그는 ‘인재 양성이야말로 불법을 세우는 가장 큰 보시’라고 말하며, 물질의 분배를 넘어 지혜의 회향까지 실현했다.


고요하고 단단한 불자 경영인의 모습

대원 거사의 경영은 때로는 굳건했고, 때로는 유연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흔들림 없는 ‘자기 수양’이 있었다. 그는 사업 실패보다도, 내 마음이 불안정할 때를 더 두려워했다. 늘 경영의 기준은 성과보다 ‘청정함’이었다.

회사 전체를 하나의 ‘도량’이라 여기고, 공장을 법당처럼 여겼다. 거기서 불심으로 지탱되는 철강산업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기업을 통해 사회에 업(業)을 지으면서도, 그 업이 곧 도(道)가 되기를 바랐다.

마침내, 세상을 위한 불자의 삶

대원 장경호 거사의 삶을 돌아보면, 그것은 한 명의 기업인이 아니라, 한 명의 위대한 재가불자의 삶이었다. 그는 불법을 단상에서 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장 속에서 실천하고 증명한 불심의 지도자였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기업은 수행터이고, 돈은 업을 짓는 연장이다. 바르게 쓰면 복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독을 복으로 바꾸는 삶을 살았다. 장경호 대원 거사는 떠났지만, 그가 뿌린 불심의 씨앗은 기업과 사회 속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다.

나는 불자로서 장경호 회장의 삶에서 불심(佛心)의 실천을 보았다. 그는 경영을 수행의 연장으로 여겼고,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며, 불교계에 대한 기부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사업 철학은 단순한 경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신앙이 일치된 모범이었다. 불자 기업가의 진면목을 보인 것이다. 

나는 한보철강의 경영자였고, 한 명의 산업인으로서 오늘의 대한민국 철강산업이 있기까지 장경호 회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민간 철강의 뿌리를 세운 선구자이며, 공익성과 영속성, 신뢰와 도덕성을 아우른 모범 기업가였다. 그와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한국 철강산업도, 나 같은 후배 철강인도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도 동국제강의 흔들림 없는 기업 정신 속에서 그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권대욱|한보 유원 극동건설 사장,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휴넷 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작가로 활동하며 유튜브 채널 ‘권대욱tv’ 대표, 중앙고 동문회장,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