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통을 껴안으면서 자비와 사랑을 더불어 나누면…|나의 불교 이야기

나의 고통을 껴안으면서 

자비와 사랑을 더불어 나누면…


남혜경

라이프 코치


매주 목요일에는 동네 합창단원이 함께 모여 노래 부르기를 연습하는데 한 회원을 따라 팔순의 시어머니가 함께 오셨다.

“어머님이 인지장애가 조금 있는데 혼자 계시면 불안해하셔요. 노래 부르러 간다니까 좋다고 해서 함께 왔습니다.”

착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다. 선한 인상으로 곱게 늙은 팔순의 시어머니는 며느리 옆에 얌전하게 앉아서 악보를 열심히 보며 소리 내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쉬는 시간에 “어떠셔요?”라고 여쭈니 “재미있어요. 즐거워요”라고 대답하신다.

고부가 사이좋게 나가는 모습을 본 나는 흐뭇하면서도 마음이 조금 아려왔다. 대학생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나이 서른이 되기도 전 둘째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또 직장 다니고 아이들 키우느라 제 앞가림에만 바빴던 시절에 우리와 함께 사셨던 시부모님을 차례로 여읜 지가 30년이 다 되어간다.

이 나이가 되어 돌이켜보니 철이 없어서, 먹고사느라 바빠서 사람 노릇 못한 일만 거듭거듭 생각난다. 노노부양(老老扶養)으로 예순 넘은 지인들이 요양원으로 혹은 부모님 댁으로 매일같이 모시고 다니느라 바쁘다는 얘기를 들으면, 내 팔자가 상팔자라 모두 일찍 가셨나 싶다가도 불효가 사무친다.

나이 예순 중반의 친구들이 만나면 잘 늙어가는 일, 건강을 지키는 일이 대화의 주제가 되다가 사이사이 어른을 돌보는 고단함도 끼어든다. 거기에는 노부모를 돌보는 수고로움도 있지만, 죽음에 점점 가까워지는 부모님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마지막에는 결국 우리도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는 두려움과 불안도 있다.

60대 시니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늙어갈까. 일상의 번잡함이나 가족 부양의 책임이 줄어 평화롭고 한가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는 안도감 한편으로 이제 새로운 탄생이나 역할에 따르는 기쁨보다 갑작스럽게 겪어야 할 상실과 슬픈 시간이 더 많으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연로한 부모님이 가시는 일은 코앞에 닥쳐 있고, 가끔은 동년배 친구나 지인의 부고를 갑작스럽게 마주하기도 한다. 더하여 배우자와 사별을 각오하기도 하고, 본인의 위중한 질병을 극복하기도 해야 한다.

인생의 진짜 숙제를 남겨놓은 그들은 코치인 나에게 이런 마음을 하소연한다.

- 삶이 공허해지고, 그다지 집착할 게 없다.

- 남은 생이 기대된다기보다 불안하다.

- 삶의 문제나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자존감과 용기가 부족해진다.

불자 모임에서 만난 현자(가명) 씨. 60대 후반으로 암 투병을 하는 남편이 있다. 코칭 대화를 청해온 그녀는 “남편을 간병하느라 힘든 것보다 그가 떠난 후의 내 상실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말한다.

“남편이 두 번의 수술 후 이제 삶의 끝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고 보니 삶의 허무랄까 공허함이 지금부터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아요.”

-남편과의 사별 이후의 삶을 그려볼 때 허무하고 공허할 것 같다는 말씀인가요?

“남편이 나보다 먼저 떠날 건 확실해 보여요. 혼자 어떻게 일상을 보낼지에 대한 불안보다 나도 머지않아 그 길을 따라갈 것 같다는 느낌, 죽어가고 있다는 절망감이 들 때가 많아요”

- 살아 있는 것과 죽어간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요?

“살아 있다는 건 하루하루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내일을 기다리는 건데, 죽어간다는 건 오늘 뭘 해도 딱히 의미가 없고 즐겁지도 않고 하면 뭐하나 이런 느낌이랄까요?”

60대 중반의 나도 코치이기 이전에 동년배로서 그들의 이슈(코칭에서 대화하고자 하는 주제)에 깊이 공감하고 결국 나의 이슈이기도 해서 셀프 코칭도 함께하게 된다.


사라질 모든 것에 지금 마음을 두는 사념처


붓다는,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 인간관계의 집착,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갈애 등이 고성제(苦聖蹄)로 사성제의 첫 번째라고 말씀하셨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건 그 고통과 상실을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여러 고통과 상실의 위험을 피하려 하고 여전히 편안함과 즐거움만을 누리려 하는 데서 노년에는 더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건강하지 못함, 재물을 많이 갖지 못함, 남들이 우러러보지 않는 것, 이 모두가 나를 힘들게 한다. 즉 자신이 원치 않았던 현재 상황을 혐오하고 그 반대를 갈망하면서 자신을 괴롭힌다. 

나 역시 현재 상황에 불만이 생기면 과거에 더 준비하지 못하고 쟁여두지 못함을 후회하면서 자신의 모자람을 탓하고 고통에 사로잡힌다. 그러면서 더 빈한해질 것이 두렵고 사랑하는 이들과 오래 하지 못할까 불안하다.

이런 후회와 불안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는 없지만 그럴 때면 사념처(四念處)를 생각하며 수행하려 한다. 먹고, 자고, 움직이고, 머무르고, 말하고, 사랑하고, 이 모두를 행할 때 마음을 거기에 두는 것부터 시작한다. 즐거움과 괴로움, 탐욕과 분노에 대한 알아차림은 이른 아침과 밤의 명상으로 이어진다. 

언젠가는 이별할 정다운 이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껏 사랑하고 즐기며 지금에 머무르는 마음이 인생의 고를 이해하고 조금씩 멸하게 하는 첫걸음인 것 같다.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나눈 현자 씨와의 코칭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면 순간순간 존재감을 느끼는 일을 찾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코치님과 대화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게 있네요. 얼마 전에 불자 모임에서 밥 차려주기 봉사를 했는데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어요. 누군가에게 자비의 마음으로 하는 노동을 통해서 조금은 더 편안하고 다정한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옮겨올 거 같습니다.”

그녀와의 대화를 마치면서 나에게도 깨달음이 하나 왔다.

자비와 사랑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손 내밀면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는 것. 시어머니를 합창 모임에 데려온 며느리의 다정함에서 그걸 보았고 나는 충분히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뒤돌아보며 후회만 하지 말고 그 아픔을 기억하면서 이제 앞으로 나아가며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언젠가는 모두 부서지고 사라질 존재이지만 상실의 과정을 살아가면서 귀함과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다.

나의 고통을 껴안으면서 자비와 사랑을 더불어 나누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멸성제(滅性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지 않을까.  


남혜경|오랜 기간 글을 쓰고 다듬는, 대중매체의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다. 10여 년 전부터 라이프 코치로 일하고 있으며, 주로 50~60대의 시니어 라이프 코칭을 한다. 지은 책으로, 불교철학으로 교감하는 코칭 스토리를 엮은 『오십에 하는 나 공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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