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마음과 두뇌를
변화시키는가?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 대학교 철학과 교수

들어가는 말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따르는 과학과 인간 영혼의 존재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다루는 종교의 관계는 항상 조화적 협동 관계는 아니다. 지성(Reason)과 신앙(Faith)을 아우르는 서양 중세 철학의 거장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입장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둘이 반드시 적대적인 관계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조화로운 협업 관계를 형성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과학은 자주 종교와 긴장, 대립 관계를 형성해왔다.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의 지동설과 새로운 물리학은 전통적 질서를 강조하는 교회와 갈등을 일으켜 그를 종교 재판에 서게 만들었고,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아직도 기독교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20세기에 이르러 과학과 종교는 개방적 공존 관계를 모색하고 상호 대화하면서 종교성과 과학성의 의미를 깊이 있게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 양자의 조화적 관계는 충분히 완성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2005년에 한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티베트 불교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달라이 라마(14대 Dalai Lama, Tenzin Gyatso, 1935~ )가 미국신경학회(The Society for Neuroscience) 정례 학술 발표회에서 ‘뇌의 가소성(Plasticity, 구조적 기능적 변형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현대 과학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신경과학자들이 정례 학술회의에서 그것도 서양 종교 지도자도 아닌 불교 지도자를 초청해 기조연설을 들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물론 달라이 라마가 신경과학 논문을 발표한 것은 아니다. 그는 불교의 명상 전통과 수행 방법의 물리적 과정이 신경과학 연구를 통해 밝혀질 수 있고 이들이 특별히 두뇌 기능 증진과 그 변화 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신경과학이 궁극적으로 불교가 추구하는 이상, 즉 인간의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노력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피력한 것이다.
구체적인 과학적 가치와는 별도로 달라이 라마의 이러한 강연은 학문 간 소통 그리고 종교와 과학의 대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하겠다. 바야흐로 21세기는 학문 간 통합과 융합의 시대인데 그 통합과 융합의 첫 단추를 인간 마음의 깨어 있음에 집중하는 불교와 두뇌 변화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의 연결로 시작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도전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것으로 보인다. 융합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건이 바로 이 달라이 라마의 연설이었다.
현재 우리가 과학이라고 하는 지적 활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기반은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서양에서 나타나는 학문적 혁신에 기반을 둔다. 혹자는 이를 정치적 혁명과 비견되는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라고 하는데 그 혁명적 생각은 아직도 과학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혁명적 생각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근대 과학은 지적인 활동을 방법론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즉 과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마음대로 아무 규제 없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법에 따라 일정한 한도 내에서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 과학은 과학적 방법론(scientific methodology)에서 시작된 것이다. 특별히 근대 과학자들은 관찰과 실험 그리고 수학적 공식화 과정에 집중하는데 이런 방법을 통해 과학자들은 과학적 활동을 규정하고 동시에 그 성공적 응용을 보장하려 했다. 과학이 현재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는 바로 이 방법에 대한 성찰과 그 성공적 사용 때문이 아닌가 한다. 둘째로 과학은 전문화된 분과학(分科學)이다. 즉 과학이란 주어진 문제를 잘게 나누어 세분화하고 전문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문제를 작고 깊게 분석하고 실용적이며 기능적인 결과를 통해 자연을 통제하고 인간의 물질적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근대 과학에서 처음 나타났고 이것이 현재까지 과학적 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학이 공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도 바로 이 분과학적 성격과 분석적 전문화 성향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그리고 21세기 초에 이르러 이러한 과학의 전통적 입장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학이 특정한 방법이나 접근법에 대한 집중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스럽고 창의적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즉 실험적 방법이나 정량적 접근법이 여전히 과학에서는 중요하지만 이와는 다른 다양한 방식의 연구와 탐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와 더불어 나타난 새로운 과학의 경향이 통합과 융합이다. 과학이 세분화하고 전문화된 지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주어진 문제를 단순한 부분으로 나누어서 연구하지 않고 그 복합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현상을 전체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시도가 나타난 것이다. 이 세상은 궁극적으로는 원자와 분자의 대규모의 결합을 통해 나타난 것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자본주의, 환경, 노동 등등의 인문적 사회 현상은 단순한 원자나 분자의 결합으로만 설명되기 어려운 측면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거시적 인간 활동의 문제를 원자나 분자로 분해해서 다루기보다는 그 복합성을 그대로 놓고 과학의 예리한 분석과 인문학의 폭넓은 시각을 결합해 좁게 나뉜 학문적 구획선을 넘어서 해결하려는 시도가 학제적 융합의 노력인 것이다. 이러한 융합의 연장선에서 달라이 라마의 강연은 의미를 갖게 된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공은 과학자들 편에 있다. 이 창의적 학제성(interdisciplinary, 다양한 학문적 입장을 연결하고 고려하는 방법론) 혹은 융합(convergence, 다양한 학문 성과를 통합하고 연합하는 방법론)의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명상의 놀라운 두뇌 변형 가능성에 관해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하고 그 물리적 과정과 정신적 의미를 잘 조사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정신성, 특히 종교적 수행의 의미에 관해서도 병행적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융합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양자의 균형 잡히고 상호적인 협업적 대화 관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이런 과학에 관한 융합과 통합 주장이 순수 기초과학은 하지 말고 융합과학 혹은 응용과학만을 하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융합의 의미가 인문학이 과학 발전을 위한 촉매제나 실용적 연구를 위한 보조자 역할만 해야 한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종교의 대화를 통해 인간 삶의 풍요로움과 융성에 대해 균형 잡힌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 융합의 궁극적 취지가 아닌가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이러한 융합의 전체적인 맥락 아래서 불교적 명상이 신경과학에서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를 조망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며 또 그 제약점들을 비판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불교 명상은 현재 신경과학계와 대중적인 호응 측면에서 볼 때, 매우 놀라운 수준의 지명도와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경우 명상에 관해서 다수의 신경과학 논문이 발표되고 있고 여러 대중매체들이 그 놀라운 효능에 관해 기사화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채식주의(vegetarianism)나 요가(yoga)와 더불어 건강한 생활 방식 중에 한 가지로 인식되고 있다. 한마디로 명상(즉 자기 집중적인 심리적, 신체적 활성화 과정)은 현재 동양에서뿐만 아니라 서양 사회에서 매우 인기 있는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명상은 한때 그 내용을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수행법에서 이제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입증된 정신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적 변화와 호응은 맹신적 관심이 되기 쉽다. 명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는 명상에 관한 융합적 신경과학이나 명상 기법을 이용한 대중적 정신 단련법이나 치료법은 그 원래 의도와 상관없이 황제 다이어트(Atkins Diet)나 지중해식 식단(Mediterranean Diet) 같은 제한적 효과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동시에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수단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명상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글은 불교적 명상, 특히 마음지킴 명상(비파사나 명상)에 관한 신경과학의 연구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명상에 관한 신경과학 연구와 그 역사적 배경을 간단히 소개하고, 다음으로 현재 (주로 2000년 이후) 신경과학에서 진행되는 연구를 대략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드러나는 명상 모습을 설명하고, 명상의 신경과학적 연구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논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명상의 과학적 연구에 대한 전망과 그 의의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명상에 관한 과학적 연구: 역사적 배경
미국마음지킴연구협회(American Mindfulness Research Association)의 통계에 따르면 1980년에 마음지킴 명상(혹은 비파사나 명상법)에 관한 연구 논문은 오직 3편밖에 출판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에는 535편이나 출판되었다. 이러한 놀라운 증가는 마음지킴(비파사나) 명상뿐만 아니라 불교적 명상(자비 명상, 초월 명상 등의 명상법) 전체에 관한 미국 학회의 관심을 반영한다. 단순히 출판된 논문의 양만 고려한다면 명상에 관한 연구는 178배나 증가한 셈이다. 정말 놀라운 변화이다.
특별히 이런 변화가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서양 사회의 전체적인 시각 변화 때문이다. 수세기 동안 서양 사회에서는 과학의 특별한 영향력 때문에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동양적 사고나 종교에 관해 회의적인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서양 의학에서 동양 의학은 완전한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침술의 효능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여전히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술적인 요소를 지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침술이 심리적 안정을 주는 위약 효과(Placebo Effect, 플라시보 효과 : 한 약물이나 치료법이 신체에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에 정신적 안정감이나 희망을 일으킴으로써 병의 증세가 약화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효과)를 일으키는 보조 치료 방편으로 생각한다. 물론 침술의 생물학적 효과는 부분적으로 밝혀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침술에 관한 회의적 시각은 대부분의 서양인들의 마음에 존재한다. 명상도 이런 상황에서 예외적이지 않다. 명상이 종교적인 수행 과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것이 정신적 신체적 변화를 수행자들에게 일으킨다는 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해왔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호전된 것은 대체 의학(서양 의학의 기본적인 원칙을 따르지 않는 치료와 치유 방법)을 연구하는 의학자들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의 대체 의학 연구자들은 명상이나 침술 같은 것이 마술적인 치료법이 아니라는 점을 힘겹게 주장해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서양 학자들은 명상의 효능을 주장해왔다. 1970년대 하버드 의과 대학의 심장학 권위자인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 박사는 명상이 심장 박동, 혈압, 호흡 등과 같은 기본적인 생물학적 기능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을 서양 의학 입장에서 주장했다. 물론 벤슨 박사 이전에도 동양적 의학 전통이나 종교적 전통에 대한 연구는 많았다. 그러나 벤슨 박사의 경우처럼 명상을 서양 과학(서양 의학) 입장에서 깊이 있게 다룬 적은 없었다. 그는 명상의 의학적 효과뿐만 아니라 그 원리 또한 깊이 논의하고 있다. 그는 명상을 이완된 상태의 자기반성과 의식적 집중으로 이해하며 이런 과정이 많은 생물학적 변화를 신체에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1975년에 출간된 그의 『이완 반응(The Relaxation Response)』이라는 책은 그 연구를 집대성한 저술로 이후의 명상을 기반으로 하는 스트레스 완화나 심리 치료의 길을 여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명상의 효능에 관한 과학적인 해명뿐만 아니라 명상 과정의 설명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명상은 정신적, 신체적 이완과 그와 함께 나타나는 긍정적 변화 가능성을 여는 과정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외부 자극이나 내부 변화에 대해 너무 빠르게 자동적으로 반응하는데 이런 기계적 반응은 우리를 일정한 틀에 고착화시키고 속박시킨다. 명상은 이처럼 깨달음과 변화 기회를 상실한 채 기계처럼 사는 인간이 당면하게 되는 많은 문제들에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벤슨 박사의 선구적 연구와 다른 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명상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1993년 미국국립보건연구원(National Institut of Health, NIH)에 속한 대체 의학 연구소는 명상 연구에 드디어 공식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공식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명상 연구의 과학적 가치를 공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명상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매우 활발한 편이다. 미국에서 출판된 심리학 학술지나 의학 학술지에서는 연간 1,200편 이상의 연구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며 특별히 마음지킴(비파사나) 명상의 경우, 500편 이상의 논문이 발표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심리 치료에 있어서 40% 정도가 이 명상법을 차용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동양 전통이 서양 과학의 엄밀한 검토와 대중의 관심을 받은 적은 동양 의학 외에는 없다.
석봉래|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버니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니액 교수상, 찰스 푸 재단 철학 논문상, 그리고 린백 재단 우수 강의 교수상을 수상했다. 한국학중앙연구소, AI사회연구소에서 국제 자문 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공지능의 미래와 지혜의 알고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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