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꽃과 별 그리고 바람
그림/글 이호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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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홉스골 호수 밤하늘, 75×47cm, 한지에 수묵 채색, 2025년 |
하늘이시여!
여기 한반도에서 온 스물네 명의 영성순례단이 겸손한 마음으로 아뢰고 바라나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늘께서는 빛과 어둠, 불과 물, 비와 바람, 구름과 안개, 강과 바다, 꽃과 풀, 나무와 숲, 들과 산으로 현현해 생명을 품으셨고, 뭇 생명들이 지금 여기까지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 몽골영성생태순례단 일동
한여름 일행은 몽골 홉스골 호수 앞에서 천제(天祭)를 지내고 고천문(告天文)을 읽었다. 그다음 호수를 바라보며 올린 백팔배 기도는 절실하고도 엄숙했다.
홉스골 호수는 ‘몽골의 푸른 진주’ 또는 ‘어머니의 바다’로 불린다. 면적은 제주도의 약 1.5배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호수 중의 하나다. 호수 위 낙엽송 숲에 위치한 게르(몽골의 이동집)에 숙박하기로 하고 모두 무쇠 난로에 장작불을 지폈다.
마침내 어둠이 깔리자 별을 보기 위해 호숫가에 이르니 가이없는 은하의 세계가 펼쳐진다. 별은 하늘에서 돋아나 호수에 떨어지고 모두의 가슴속으로 들어와 반짝인다. 실은 우주의 모든 원소는 별의 존재가 아니던가. 누군가의 선창으로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아침 이슬 내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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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돌 유적지에서, 74×141cm, 한지에 수묵 채색, 2025년 |
그 밤이 지나 이슬을 밟으며 해돋이의 호수에 몸을 담그며 새날을 맞이했다.
돌아보니 열흘간의 몽골 그림 순례는 전생의 일처럼 아득한 그리움이다. 일찍이 동아프리카 탄자니아(2000년), 인도(2003년)의 만남과 전시가 있었고, 기다려온 몽골은 ‘몽골생태영성순례’(이병철 단장)의 인연으로 닿았다.
새삼스레 떠올리는 문명과 자연의 조화와 상생, 야성과 야생의 회복이 절박한 시대를 떠올리며.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고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음을 절감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살기로 주거지 밀집과 교통의 마비는 심각했다.
이 도시를 벗어나 이정표 없는 초원을 달리며 마주한 낙타와 수많은 가축(말, 소, 야크, 양, 염소)은 시대를 떠나 경이로웠다. 또한 말 타고 내달리는 아이들은 여전히 기마족의 후예로 느껴졌다.
사막과 더불어 드러나는 산세는 설악, 월출산을 연상시키고 어느 곳은 마치 금강산의 부분을 옮겨놓은 풍광이다. 해서 대초원의 선입감이 무색해졌다. 협곡도 즐비하고 8,000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호르고 분화구는 한동안 세상이 꺼지는 충격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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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돌과 야생화, 37×48cm, 한지에 수묵 채색, 2025년 |
곳곳에 성황당 같은 어워의 돌무더기와 오색 깃발은 신성해 보였다. 말똥이 지천인 초원에 피어난 꽃들과 화산석에 피어난 야생화는 비바람 속에서도 빛과 향기를 나누고 있었으니…
한편 므릉의 ‘오시깅 으브로(Uushigin Uver) 사슴돌 유적지’의 만남은 특별했다. 녹비(鹿碑)는 돌에 사슴을 새긴 비석들인데 사슴들이 하늘로 뛰어오르는 모습이다.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상징이고 때론 인물상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대초원의 돌무더기는 귀족들의 무덤으로 고대 유목민들의 장례 문화를 엿보게 한다.
다음 여정을 향해 가는 길. 며칠간의 비가 개여 노을이 물들고 초승달이 뜬 차창에서 길손은 대초원에서 만난 꽃과 별과 바람을 떠올렸다. 그 시간과 화첩에 담은 몽골의 시절 인연에 두 손 모으며.
이호신|화가. 자연생태와 문화유산을 생활산수로 그리고 있다. 개인전 29회를 개최했고, 여러 화문집을 냈으며, 영국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이화여대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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