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존재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보살 정신|선(禪) 수행자 노먼 피셔 기념 강연

싫은 존재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보살 정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대화하는 환경 속에 놓이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라며 강연에 참석한 우리들도 이를 경험해보길 바란다는 유쾌한 농담으로 입을 연 노먼 피셔는 자신의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미국의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난 노먼 피셔 법사는 7세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선량한 사람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함께 지내온 사람들이 한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일으켰고 죽음에 대한 이런 고민들이 불교 수행의 시작이었죠.”

종교와 문학,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 시절 우연히 접한 선불교 관련 책에서 선(禪)이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수행하던 일본 선승 스즈키 순류를 만났고, 대학을 졸업한 후 그를 따라 버클리 인근의 작고 아담한 선 센터에서 정진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 주지 소임을 맡은 후에는 절에서 수행한 방법들이 실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러다 2000년 에브리데이 젠 재단을 설립해, ‘세상을 바꾸고 세상에 의해서 바꾸어지기(To Change the world and To be Changed by the world)’라는 사명을 통해 선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나누고자 했습니다.”

에브리데이 젠은 침묵, 명상, 전통적인 수행 등의 과정을 통해 배움을 나누며, 다양한 도시에서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다. 에브리데이 젠의 법사에게는 별도의 경제적 혜택이 주어지지 않기에 공동체 활동 외에도 개인 생활 유지를 위해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현재 에브리데이 젠 공동체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호스피스 교육, 교도소에 복역 중인 사람들에 대한 상담, 노인 요양 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뿐 아니라 변호사와의 협업, 구글 명상 프로그램 제작 등 폭넓은 분야와 맞닿아 있지요.”

그는 유대교 명상 센터 책임자이자 25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예술가 공동체와 작업하고, 선의 가르침을 예술 영역에 접목하는 게 그의 주된 관심사다.

“처음 에브리데이 젠을 시작할 때, 공동체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16년간 공동체를 이끌어오면서 많은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의 삶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를 저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스승이기도 한 스즈키 순류 선사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고 수행하라.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가르침을 남겼고 그 또한 늘 사람들에게 스승의 얘기를 전한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선 수행을 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비자처럼 생각하는 것을 멈출 때 자신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삶의 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고 균형 잡힌 관점을 갖게 될 것입니다. (…) 균형 잡힌 관점은 불교의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성찰할 때 가능하며, 명상 수행을 통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바라보고, 타인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그러한 이해는 사람들을 더욱 자비롭게 대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선의 가르침은 절, 염불 등 어떠한 형식에 갇힌 수행만을 통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핵심은 매일 우리의 삶을 마주하는 것이고 에브리데이 젠이란 이름 또한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어 그는 중국의 선 스승인 조주와 그의 스승 남전 스님 이야기 속 ‘도’와 ‘평상심’에 대한 대화를 인용해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평상심을 수행한다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의 거대함을 알아차릴 만큼 매 순간 깨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적인 삶에 매일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설령 우리의 삶이 힘들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며, 그 감사한 마음에는 자유로움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 사회의 현황에 관해서도 조언했다.

“사람들 간의 분열, 정치적인 불확실함, 경제적인 고난 등의 문제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현재의 상황은 모든 이들이 함께 겪고 있기에, 함께 이 고통을 나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울어주는 것, 그것이 에브리데이 젠의 수행이다. 하지만 그는 에브리데이 젠을 통해 단지 평정심을 위한,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국한된 수행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보살피는 것을 통해 정의롭고 자비로운 사회가 구현되길 바란다.

“반야바라밀을 수행하게 된다면, 삶의 모든 것들이 왔다 감을 알기에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삶의 가벼움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 것이며, 용기를 줄 것입니다.”

지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진정한 자비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도우려는 에너지도 있을 것이며,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우려는 정신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선 수행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고 세상을 맑고 온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이 있음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함께라면 이 모든 일은 가능하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우리들이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어려움들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한 참가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생이 허무하게만 느껴지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허무함 때문일지, 즐거움과 행복이라는 감정이 가식은 아닐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는 우리의 몸이 점차 노쇠하고 죽음에 직면하리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막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심초사하고 걱정하던 것들에 대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떻겠나’라는 담담한 마음을 갖게 되고 때론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해방이자 경이로운 것이죠”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기보다 쉽게 나이 들어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를 위한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했다.

또 한국의 청년 실업에 대한 질문에는 “만약 나라면 적은 돈을 가지고도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또 모두가 갇혀 있는 이 삶의 사슬에서 벗어난 것을 아주 기뻐하겠죠. 모든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곳에서 달아나고, 급속도로 변해버리는 환경에서도 벗어나는 것입니다”라며 사회가 만들어낸 잣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길 조언했다.

강의 중 강조한 ‘선 수행은 보살행’이라는 내용에 대한 질문에는 ‘에너자이저’라는 건전지 광고에 등장하는 토끼에 빗대어 설명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북을 치는 토끼의 꾸준함이 수행에 필요한 자세라는 것이다.

“광고 속 토끼는 즐겁거나 울거나 힘들어도 계속 같은 행위를 반복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또한 삶의 마지막에 도달하더라도 ‘이번 생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서라도’라며 꾸준히 수행을 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을 향한 열정적이고 꾸준한 수행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또한 이끌어나가며,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정신으로 수행하는 것이 바로 보살행이며, 진정한 선 수행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의미에 악의 존재도 포함할까? 그는 힘들겠지만 악의 존재도 사랑해야 한다고 답했다. 싫은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렵더라도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이는 미움으로 인해 삶이 왜곡되며, 내면은 더욱 고통받기 때문에 악의 존재 또한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보살 정신이다. 미움은 그저 더 큰 미움을 낳을 뿐이다.

○ 노먼 피셔(Norman Fischer)
서양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큰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에서 오랫동안 선 수행을 지도해왔다. ‘에브리데이 젠(Everyday Zen)’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그는 비즈니스, 법률, 테크놀로지, 호스피스 프로젝트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선불교를 적용해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고 있다. 구글의 명상 프로그램인 ‘Search Inside Yourself’를 자문하고, 2014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하기도 한 노먼 피셔는 일상의 삶에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선의 정신을 되살리며 서양에서 존경받는 불교 스승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글은 다르마 프렌즈(미산 스님 외) 주최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진행된 세계적 선(禪) 수행자 노먼 피셔(Norman Fischer) 법사의 ‘선 스승 노먼 피셔에게 듣는 자비 세상 이야기 - 내가 세상입니다. 세상이 나입니다’ 강연을 취재해 정리한 것이다.


취재·정리│이경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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