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을 쓸며
수국의 향기를,
스승의 숨결을
유진 스님 편
함영 작가

수정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삼마 아라항”
“명상은 여러분들의 마음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명상은 여러분들에게 지혜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명상은 현재와 미래에 행복을 주고 궁극적인 행복인 해탈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을 명상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팔리어로 예불을 끝낸 큰스님은 명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공덕인지를 설명한 후 이 같은 말씀으로써 우리를 명상의 세계로 안내하곤 했다. 명상할 때의 자세를 상세히 일러주신 후 거듭 당부하시는 건,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 그러한 “나의 편안함이 남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수행은 시작된다”는 말씀과 함께 마음을 순수하고 깨끗한 수정처럼 만들어보라는 큰스님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이 우리의 공간도 몸도 거품처럼 가볍고 깨끗해져 텅 비어진다. 그러한 상태 속에서 상상으로 떠올린 밝고 부드러운 수정구슬. 그것을 코와 눈, 머리 중앙, 입천장, 목 등으로 차례차례 옮겨가며 그때마다 “삼마 아라항(sammā arahaṃ, 올바르게 수행하여 해탈에 이른 자)”을 암송하는 이른바 ‘담마까야(법신, 法身) 명상’을 큰스님은 예불 때마다 챙겨하셨다.
큰스님의 음성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처럼 이른 새벽의 법당을 부드럽고 포근하게 채웠고, 그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나’라는 에고는 자연스레 고요히 가라앉고 맑혀져 바람으로, 허공으로 혹은 그 무엇도 아닌 순수함과 평온함 자체로 존재했다.
부산 태종대에 위치한 태종사 요사채 입구에는 담마까야와 맑고 순수한 마음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한 도성 큰스님의 지론을 상징하듯 커다란 수정구슬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해인사의 자비보살로 통한 큰스님의 은사인 지월 스님의 상이 모셔져 있다.
해인사와 대흥사의 주지를 역임한 바 있는 조계종 원로이면서도 큰스님은 1972년 은사스님 허락 하에 남방불교의 비구계와 가사를 받은 이래 평생 동안을 매일 새벽과 저녁이면 장소불문하고 팔리어로 예불하고 계율을 지키며 정진했다. 근본불교수행의 전통을 국내에 다시 뿌리내리게 하고 위빠사나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한 장본인인 만큼 그는 남방불교 국가로부터 ‘삼붇다 사사나 조띠까(부처님의 가르침을 밝히는 등불)’라는 칭호를 받고 승왕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가 주석했던 태종사는 국내외 관련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내 테라바다 불교의 산실이다.
“큰스님 곁에서 일 년 남짓 시봉한 것이 전부지만, 요사채를 드나드실 때마다 지월 스님 상에 인사를 하셨던 모습과 도량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생명을 대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곤 했어요. 한번은 상사화가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피었는데, 큰스님께서 나무막대기 3개를 구해 오셔서 삼각형 모양으로 꽃 둘레에 치고 끈으로 묶으셨죠. 작업을 하시는 중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꽃이 참 좋지요”라며 인사를 건네셨어요. 그 후 그 꽃은 꽃잎이 질 때까지 사람들 발에 치이는 일없이 안전하게 보존되었고, 그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이 상당했죠. 큰스님께서는 꽃나무들이 꽃을 피우면 울력을 하시다가도 가깝건 멀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곤 하셨어요. 그때마다 사람들 얼굴에는 조용히 미소가 번졌죠.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깨끗한 마음에 놓아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시 큰스님께 배운 한 부분인 것 같아요.”

평생 동안 근본 불교 수행을 하며 대중화에 힘쓴 도성 큰스님
큰스님의 일상 자체가 수행이자 가르침
돌이켜보면 큰스님의 소소한 일상 자체가 수행이고 가르침이었다. 하물며 꽃 한 송이에도 정성을 다한 그는 누구에게든 자비와 평등심으로 대했다. 절의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큰스님은 일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태종사는 지역적 특성상 화목보일러로 난방을 해결하는데, 산지 잡목을 정리해 땔감으로 만드는 일은 큰스님의 일상 중 하나였다.
“그것들을 정리하는 큰스님만의 방법이 있었어요. 보통은 마구잡이로 잡목들을 묶어 불 떼는 공간에 맞게 전기톱으로 자르는데, 큰스님은 줄기가 굵은 쪽과 잔가지가 많은 쪽을 구분해 한쪽 끝을 맞춰 하나씩 손보며 차곡차곡 쌓으셨어요. 그러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지만 모두가 사용하기 편했죠. 우선 들기가 좋고, 누가 불을 떼도 보일러에 넣기 무척 수월하죠. 부피가 작은 쪽을 보일러 쪽으로 향해놓고 막대기로 밀어 넣기만 하면 되니까요. 또 여러 곳에서 나무를 받아왔는데, 군데군데 못 박힌 널빤지가 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큰스님은 전기톱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못을 일일이 뽑은 뒤 나무크기에 맞춰 쌓아두셨죠. 시간과 수고로움으로 치면 큰스님 방식이 불합리해보이지만, 실상은 일의 결과를 숙고한 안목과 배려가 깃든 것을 이해하게 돼요. 당신이 수고로운 대신 누구든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요.”
유진 스님이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 큰스님 책장에 꽂혀있던 엄청난 양의 초기불교경전들 또한 스님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경전의 어느 한 구절도 타당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재밌고 공감되는 것이 많아 구절구절마다 “진짜 맞는 말이다!” “진짜 대단하다!” 감탄하며 탐독했다. 이후 대학교에 입학해 <니까야>를 미친 듯이 팠고, 그 후로 접한 대승경전들 또한 찬탄을 하며 읽었다. 특히 <소품반야경>의 무소처(無所處)에 대한 내용은 화엄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큰스님과 함께했던 길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보고 듣고 묻고 따라했던 것들과 경전의 내용들, 자연과 현상의 관찰을 통한 체험적 경험들. 그리고 마음챙김! 이러한 것을 굳이 ‘수행’이라고 이름하는 자체가 도통 이해되지 않을 만큼 유진 스님에게 수행은 그저 일상일 뿐이다. 오늘도 스님은 그러한 일상을 챙긴다. 큰스님이 떠난 자리에서, 생전에 그가 그랬듯 도량 구석구석을 돌며 청소하고 잡목을 정리하고 예불을 챙기고, 틈틈이 종무소 업무까지 보느라 늦은 저녁까지 분주하다. 이제 곧 수국의 계절이라, 요즘은 수국을 돌보는 일 또한 게을리 할 수 없다. 평소 꽃과 식물 가꾸는 것을 좋아하셨던 큰스님이 남긴 유산과도 같은 5천여 종의 수국이 앞 다퉈 만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스승의 손길과 숨결이 깃든 형형색색의 수국들이 조만간 도량 전체를 신비로운 빛깔로 수놓을 것이다.

비질 중에도 마음챙김이 습관화된 유진 스님(태종사 주지)
알아차림을 알아차림 하는 ‘각(覺)’
찻물을 안친다. 정한 법에 따라 다관에 찻잎을 넣고 차 한 잔을 우린다. 차를 음미하기 전 합장을 하고 잠시 축원과 기도를 한다. 그러한 행위 하나하나를 알아차리고, 행하는 전체를 알아차린다. 고요함 속에 받아들인 차 한 모금이 밤사이 굳어진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퍼져나간다. 그 느낌 또한 알아차리고, 그러한 알아차림 속에 두 번째 모금을 마신다. 차의 따끈함이 몸 안을 돌며 활기를 일으키고, 세 번째 모금 뒤에는 빈 잔의 향을 깊이 들이마신다. 이 모든 행위의 알아차림을 알아차림 하는 ‘각(覺)’, 그러한 깨어있음으로 스님은 하루를 시작한다.
유진 스님에게 차는 방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첫 모금의 차가 몸속에 들어와, 탁 치며 일으키는 깨어있음. 그 깨어있음의 순간을 고요히 알아차리는 것은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알아차림의 방법이 된다. 그래서 스님은 차 명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아차림을 경험하게하고 싶다. 도량이 정비되어 적당한 공간이 마련되면 차 명상 모임과 단계별 프로그램을 통해 그 바람을 실현해갈 계획이다.
“제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기승전‘알아차림’이라,(웃음) 가능하면 모든 행위에서 깨어있으면서 움직이려 해요.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있지만 처음엔 그 상태가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죠. 큰스님 시봉할 때 제가 지내던 방에 흔들의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취침 전 그 의자에 앉아 클래식을 듣고 있었어요. 그때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소위 ‘메타인지’의 상태를 생생히 겅험했죠. 음악을 듣고 있고, 음악이 있고, 음악을 듣고 있는 놈이 있고, 또 음악을 듣고 있는 놈을 알고 있는 것이 있는. 그래서 다음날 큰스님께 여쭤봤더니 이렇게만 말씀하셨어요. ‘유진이가 유진이지’”
어떤 행위를 반복하게 되면, 몸은 계속 그 행동을 하고 있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그러한 동시에 주위의 것들을 살피고 정신은 또 다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 흘러가는 것 또한 보게 된다. 그러한 마음챙김이 예리해지면 이전과는 다른 생생함으로 사물과 현상이 다가온다.
“그런데 알아차림에서 중요한 것은 알아차리는 대상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졌다 흩어지고 생성되었다 소멸되는 것을 확인하는 거예요. 그러한 변화성을 보고 대상이 실체하지 않고 항상하지 않다는 이치를 깨닫는 거죠. 그것을 이해하게 되면 여러 시비들,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가 정리돼요. 불가에선 자신의 판단기준을 세우는 것을 멀리하는데, 알아차림에 익숙해지면 그 이유가 이해될 수밖에 없어요.”
유진 스님이 즐겨하는 일상 중 하나는 비질이다. 비질에는 요령이 있다. 먼지를 날리듯 마구잡이로 하는 게 아니라, 먼지를 쓸어낼 때 어느 선에서 손목을 틀어 멈춰야 한다. 그러한 행위 하나하나에 마음을 오롯이 두면, 마음이 몸의 행위를 조절해 망상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동시에 주변 사물과 사람들, 공간이 자연스레 인지되고 확장되어간다. 마치 레이더가 빙빙 돌듯 모든 미세한 것들까지 생생히 깨어있음으로 인지되는 ‘청풍(淸風)’의 상태…. 모를 일이다. 그 속에서 도량을 쓸다가 햇빛의 간지러운 웃음소리를 들을는지, 바위 속의 꽃들을 발견할는지, 혹은 물을 듬뿍 주어 고맙다는 수국들의 재잘거림을 들을는지.
“어떤 것을 얻으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고, 어떤 것을 받으려는 기대를 가지지 않고, 다만 편안하고 부드럽고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세요. ‘편안한 바른 마음가짐’이야말로 명상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 그리고 명상을 하시면서 빠른 시일 안에 어떠한 결과를 얻으려는 의도가 없어야 합니다. 꾸준히 하시다보면 저절로 얻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꾸준히 하시면 됩니다. 항상 지금 여기에서의 알아차림. 이것이 위빠사나의 핵심입니다.”
비질은 다만 비질이 아니기에, 도량을 쓸다가, 이러한 말씀으로써 우리를 명상의 세계로 안내하셨던 큰스님의 속삭임마저 생생히 알아차릴는지도….
함영|1998년부터 글을 지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빅이슈 코리아』에서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기획 및 출판 등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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