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불교|동남아시아 불교,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

태국 불교

황순일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드바라바티 문화, 불교의 법륜과 불상 중심으로 12~13세기까지 지속
태국의 불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주지’를 지칭하는 드바라바티(Dvāravatī)와 함께 시작된다. 현장은 드바라바티가 스리크세트라(Śrīkṣetra)의 동쪽 이사나푸라(Isānapura)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했다. 즉 오늘날의 미얀마와 캄보디아 사이의 차오프라야강 유역에 있는 태국에 고대 드바라바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의정도 유사하게 드바라바티의 위치를 언급하면서 베트남 북부 출신으로 드바라바티에서 출가한 대승등(大乘燈, Mahāyāna-pradīpa) 선사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당시 이곳이 불교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드바라바티가 하나의 독립된 왕국을 지칭하는지, 소도시의 연맹체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지칭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이 지역에서 ‘위대한 드바라바티 왕의 공덕’을 의미하는 Śrīdvāravatīśvarapuṇya란 명문이 새겨진 종교적인 동전들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드바라바티는 독자적인 세력과 문화를 가졌던 고대 왕국으로 추정된다.

드바라바티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름 1.5m 정도 크기의 법륜(dhammacakka)이 발견된다. 법륜은 부처님의 녹야원 첫 설법을 상징한다.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 앞에서 스스로 겸손했으며 자신이 열반에 들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행한 가르침에 의존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따라서 산치(Sanchi)와 바르후트(Bharhut) 등과 같은 인도 초기 불교의 유적지에서 신자들이 불상이 아니라 법륜을 향해 봉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고, 석주 위에 법륜을 높이 세우고 이를 향해 봉헌하는 신자들의 모습도 나타난다. 드바라바티 법륜은 산치와 바르후트의 부조에서 나타나는 법륜을 향한 불자들의 봉헌이 실제 행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드바라바티 법륜은 주로 나콘파톰 지역에서 발견되고, 몇몇 법륜에는 고대 인도 팔라와(Pallava) 문자로 쓰인 팔리어 금석문이 남아 있어서 인도 불교의 직접적인 영향을 보여준다. 드바라바티 불상은 5세기 인도 굽타(Gupta) 불상의 양식을 보여주면서 얼굴을 몬(Mon)족 특유의 모습으로 지역화하고 있다. 비록 드바라바티가 독립 왕국으로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8~9세기경에 사라졌지만, 드바라바티 문화는 불교의 법륜과 불상을 중심으로 12~13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힌두교 시바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크메르 왕국의 확장하면서 사라진 것이다. 다만, 드바라바티가 크메르 왕국에 흡수되기 전에 일부 드바라바티 불교는 북쪽으로 전해져서 태국 북부 람푼의 하리푼차이(Hariphunchai)에 자리 잡게 되었고 타이족의 남하와 함께 타이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드바라바티 불교와 크메르 힌두교의 색채 남아 있던
수코타이를 스리랑카계 테라와다 불교로 변화시킨 람캄행왕
중국 북부가 거란 만주 몽고에 의해 차례대로 장악되면서 한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자 중국 남부 윈난성의 난차오 왕국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달리(Dali) 지역에서 살고 있었던 타이족들이 위험을 느끼고 11세기경부터 점차 동남아시아 반도로 이동하게 된다. 이들은 북부 태국에 새로운 도시인 치앙마이(Chiang Mai)를 세우고 하리푼차이의 불교문화를 흡수하면서 계속해서 남하하게 된다. 당시 태국 중북부 지역은 크메르 제국의 영역이었다. 타이족은 제국의 황혼기에 제국의 변경에 자리 잡으면서 지역의 몬족들과 함께 독립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먼저 태국 중북부의 수코타이(Sukhothai)가 세워졌고 태국 중부 차오프라야강에 있는 섬에 아유타야(Ayutthaya)가 세워지게 된다.

수코타이를 동남아시아 중부 지역의 중심 국가로 발전시킨 왕은 람캄행이다. 그의 행적은 태국 짜끄리(Chakri) 왕가 4대 왕인 몽꿋(Mongkut)이 아직 왕자였던 1833년에 시삿차날리와 수코타이 답사에서 발견한 람캄행 비문에 남아 있다. 1292년에 만들어진 이 비문은 람캄행의 가계와 왕가 및 자신의 수도와 불교의 현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이상적인 불교 군주인 법왕(dhamma-raja)으로서 불교를 보호하고 진흥하는 왕으로 나타난다. 수코타이는 이 시기에 그 영역을 말레이반도 중부 나콘시탐마랏(Nakhon Si Thammarat)으로 확장했으며 이곳을 통해 벵골만 건너 스리랑카와 접촉하게 되었다. 그는 드바라바티 불교와 크메르 힌두교의 색채가 남아 있던 수코타이를 점차적으로 스리랑카계 테라와다(Theravada) 불교로 변화시키게 된다. 람캄행 비문이 직접적으로 불교가 스리랑카에서 전해졌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람캄행이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가장 높은 스님을 스리랑카로 나가는 관문인 나콘시탐마랏에서 모셔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분이 스리랑카계 숲속 불교 전통인 아란니까(Araññika)로 묘사되면서 스리랑카 불교와 수코타이 불교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비문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까티나(Kathina) 축제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안거(vasa)가 끝난 후에 시작되는 한 달간의 축제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찰을 방문해 계율을 수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보름마다 스님들의 법문이 행해지고 왕이 직접 가서 불교 신도가 되어 법문을 경청했다고 해 강성했던 수코타이 불교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아유타야에서 불교는 랑깐 네트워크 통해 불교의 경전과 의식,
복식과 수계 전통을 스리랑카 테라와다 불교로 통일하며 발전
수코타이는 불교 국가로서 한때 동남아시아를 호령했지만 결국 차오프라야강 하류에서 발전한 아유타야(Ayutthaya)에 흡수되게 된다. 과거 드바라바티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은 오랫동안 크메르 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제국의 황혼기인 120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독립의 길로 나가게 된다. 이 지역은 인종적 문화적으로 상당히 복잡하다. 차오프라야강의 동남쪽은 롭부리(Lopburi)를 중심으로 원주민인 크메르계 몬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드바라바티 불교문화와 함께 힌두교와 대승불교를 선호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차오프라야강의 서쪽은 수판부리(Suphanburi)를 중심으로 새롭게 남하하기 시작한 타이족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힌두 크메르 문화와 차별화하기 위해 나콘시탐마랏을 통해 들어온 스리랑카계 남방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즉 스리랑카계 남방불교를 통해 힌두교 대승불교 중심의 크메르 문화와 차별화하고 몬족과 타이족을 하나로 규합하며 독립국가의 길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아유타야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통(U Thong)은 차오프라야강 중하류 지역과 나콘시탐마랏을 연결하는 도시인 펫부리(Phetburi)에서 부유하고 강력한 해상 세력을 형성했던 중국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수판부리 군주의 딸, 롭부리의 공주와 각각 혼인하면서 이 지역의 모든 인종적 문화적 요소들을 흡수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대가 끊긴 왕조를 대신해 국민들의 추대로 라마티보디(Ramathibodi)란 타이틀로 차오프라야강 서쪽에서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흑사병의 유행으로 사람들이 죽어가자 수판부리를 떠나 차오프라야강의 한가운데 있는 동사노(Dong Sano) 섬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왕국의 수도를 건설하는데 이곳이 시암(Siam) 왕국의 수도인 아유타야이다. 그는 스리랑카계 남방불교를 크메르계 힌두교 대승불교와 구분되는 국가적 종교로 받아들이고 크메르 제국과 대립하면서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우통의 통치 아래 아유타야의 시암 왕국은 남방불교의 도덕적 정통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남하한 타이족의 뛰어난 농경문화와 중국계 화교들의 해상무역 능력을 통해 지역의 토착 몬족들을 규합하며 거대한 왕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유타야에서 불교는 랑깐(Lankan) 네트워크를 통해 불교의 경전과 의식과 복식과 수계 전통을 스리랑카 테라와다 불교로 통일하며 발전하게 된다. 아유타야가 미얀마의 꼼바웅(Kombaung) 왕가의 침입으로 멸망하면서 잠시 쇠퇴하게 되지만 탁신(Taksin)과 짜끄리 형제들의 활약으로 대부분의 국토를 회복하게 되었고 탁신 이후 짜끄리 왕가가 들어서면서 태국 사회에서 불교의 역할이 강화되게 된다. 그리고 4대 몽꿋이 시작한 불교 개혁이 담마윳띠까(Dhammayuttika)로 결실을 맺으면서 기존의 마하니까야(Mahanikaya)와 함께 양대 종단을 형성해 현재에 이르게 된다.


황순일|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초기 불교의 열반 개념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태국 출라롱콘대·일본 사이타마대·카자흐스탄 알파라비 국립대 객원교수, 동국대 서울캠퍼스 교무처장 및 동 불교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대 조직신학과에서 교환교수로 불교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테라와다불교의 동남아시아 전파』, 『초기 인도불교의 열반 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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