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인식 구조의 전환이다|재가자의 바라밀다

수행은 

인식 구조의 

전환이다


남시중 미국 변호사



불교는 ‘이해’보다 ‘봄(見)’을 고수한다

불교에서는 ‘이해한다’거나 ‘알게 된다’는 표현 대신, ‘본다(見)’고 말한다. 이 한 글자에 담긴 불교의 인식론적 깊이는, 서양 종교와 철학이 상상한 인식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불법은 언어와 개념의 중개를 거치지 않는 직관적 체험이다. 불교는 ‘이해’보다 ‘봄’을 고수한다. ‘지금 이 순간’의 체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철저한 ‘현상학적 태도’이며, 붓다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해 통찰과 초월에 이르는 수행을 ‘위빠사나(vipassanā)’라 불렀다. 그러나 일생을 바쳐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수행자조차도, 철저히 ‘보기만 한다’는 이 수행 태도— 즉 개입 없이 대상과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현상학적 관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단순한 결단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신체를 구성하는 생물학적 구조, DNA(디옥시리보핵산)라는 유전 정보 코드에 의해 설정된 생존 중심의 알고리즘과 연관된 문제다. 이 생명 알고리즘은 수행자가 해체하려고 하는 ‘나’라는 자의식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주체와 객체의 간극을 만들어내며, 있는 그대로의 ‘봄’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도록 진화해왔다.


‘나’란 자의식적 표상으로 독립된 실체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라는 자의식으로 고통받는다. 모든 체험의 무게가 ‘나’라는 중심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한다’, ‘내가 생각한다’, ‘내가 기뻐하고 괴로워한다’는 자각은 실은 뇌가 구성한 ‘가상 현실(simulated reality)’—혹은 뇌과학의 용어로 ‘세계 모델(world model)’—내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인식 현상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我想, ahaṃkāra)’란, 실체가 아닌 생각이고 감각이며,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약 200만 년에 걸친 진화 과정 속에서 생존을 위해 구성해낸 시뮬레이션상의 구심점이다. 다시 말해, ‘나’는 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알고리즘적 허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나’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가상 현실이 이토록 ‘리얼’하게 체험되는 이유는, 우리 몸의 모든 감각과 경험이 이 자의식 체계를 거쳐 하나의 정합된 의식 현상으로 통합되고, 다시 ‘의지’라는 또 하나의 환상적 알고리즘에 의해 조정되기 때문이다. ‘나’는 동물적 생존 욕구와 감각적 필요를 통합하고, 1인칭 시점에서 세계를 조망하는 뇌의 ‘컨트롤 센터’처럼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렇게 지각될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란 뇌와 몸이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생명 단위 안에서 임시로 구성된 자의식적 표상에 지나지 않으며, 독립된 실체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위빠사나는 뇌가 만든 ‘가상 현실’의 작동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인지적 전환’…

반복 수행만이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처럼 진화적으로 형성된 ‘나’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감각과 감정을 조직하고 해석하는 ‘필터’로 작동한다. 그 결과, 체험은 곧장 쾌락과 고통을 오가는 정서적 반응으로 전환되며, 이는 도파민과 스트레스 호르몬 같은 신경화학적 신호로 구현된다. 뇌는 생존을 위한 보상 체계를 통해 목표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도달 시 일시적 쾌감을 부여하지만, 곧 결핍으로 회귀시키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이처럼 뇌가 구축한 ‘가상 현실’이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며 욕망을 반복시키는 메커니즘이 바로 붓다가 말한 ‘고(苦)’의 본질이다.

이러한 순환은, 뇌가 구축한 ‘가상 현실’이 끊임없이 예측하는 모델이며, 실제 경험을 통해 그것을 지속적으로 재조정해나가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경전에 나타난 붓다는 이 조건화된 인식 구조를 꿰뚫어 보고, 그 전환 가능성을 분명히 통찰했다(이 가능성은, 뇌과학이 최근 밝혀낸 ‘뇌 가소성-neuroplasticity-’ 개념을 통해 확인된다). 그는 이를 전환하기 위한 실천적 방법론으로 위빠사나를 제시했다. 위빠사나는 단순한 정서적 안정이나 감각의 평온을 추구하는 ‘선정(samādhi)’이 아니라, 뇌가 만든 ‘가상 현실’의 작동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인지적 전환(cognitive transformation)’이다. 그것은 ‘나’라는 주체의 해체와 함께,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전체의 전복을 수반하는 수행이다. 반복되는 수행만이, 뇌가 구축한 이 가상 현실의 작동 알고리즘을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붓다는 ‘가상 현실’이 ‘나’를 조정하고 해체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실천적 체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불교 문학에서 ‘나’라는 환영은, 붓다가 깨달음을 앞두고 맞이한 마라(Māra)로 상징된다. 동물적 욕망과 집착을 부추기는 내면의 그림자이다. 기독교 신화에서 예수가 광야에서 마주한 사탄(Satan)의 유혹과 유사하다. 둘 다 ‘나’를 실체화하려는 충동이며 욕망의 뿌리이자 감각적 즐거움과 행복의 바탕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붓다가 “비구들이여, ‘나’ (자기 자신)를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이다”라고 선언한 이유이다(. 『법구경(Dhammapada) 제103게』).

『빠띠짜사무빳빠다경(緣起相應, Paṭiccasamuppāda Saṃyutta)』에서는 ‘무명(無明, avijjā)’에서 ‘노사(老死)’에 이르는 12연기의 연쇄 구조를 “꿰뚫어 보는 것” 자체를 위빠사나라고 정의한다. 즉 위빠사나는 기존의 존재론적 인식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하나의 ‘인지적 사건(cognitive event)’으로 향하는 수행이다. 다시 말해, 이는 뇌가 구축한 ‘가상 현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말 그대로 하나의 ‘구조적 전환’이다. 이 전환은 단순한 감각이나 정서의 층위를 넘어,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관여하는 고차원적 자기 인식 작용이며,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말한 ‘순수 이성(pure reason)’과 ‘실천 이성(practical reason)’이 통합적으로 작동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는 곧 깨달음과 도덕적 실천이 왜 분리될 수 없는지, 그리고 두 과정이 뇌의 인식 구조 차원에서도 하나의 통합된 사건으로 작용해야만 하는지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해준다.

『마하탄하상카야 숫따(大渴愛滅經, Mahātaṇhāsaṅkhaya Sutta)』에서 붓다는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있고…생이 생기며 노사도 생긴다”고 해, 12연기의 연쇄적 고리를 설한다. 또한 “무명이 소멸하면 행도 사라지고…생이 사라지면 노사(老死)도 사라진다”고 말함으로써,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연결망처럼 상호 의존하며 함께 생기고 함께 사라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연기(緣起)’는 팔리어 ‘paṭicca-sam-uppāda’의 번역어로, 이 가운데 ‘sam’은 ‘함께’를 뜻하는 접두사다. 이는 곧 연기가 단순한 원인-결과의 직선적 도식이 아니라, 얽혀 있는 다발 구조처럼 상호 조건적으로 작동하는 상관성의 패턴임을 드러낸다. 즉 연기란 우리 뇌가 구성한 ‘가상 현실’ 내부에서 작동하는 조건적 상호 작용의 메커니즘이며, 이 세계 모델이 어떻게 형성되고 반복되며 해체되는지를 보여주는 인식 구조의 설명이다.

수행자가 주목해야 할 핵심은, 현상계의 작동과 인간 실존의 고통—곧 고(苦)와 생로병사(生老病死)—이 하나의 인과적 연결망, 즉 다발처럼 얽혀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붓다의 통찰이다. 이는 단순한 현상 관찰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 상황(grenzsituation)’ 자체가 뇌가 구성한 ‘가상 현실’의 허구적 시뮬레이션이며, 동시에 그 인식 작동 방식임을 간파한 것이다. 나아가 붓다는, 이 ‘가상 현실’이 ‘나’를 조정하고 해체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자신의 실천적 체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 전환에 대한 통찰이 연기설의 핵심이고 그 실천이 위빠사나의 본령이다.  


• 위빠사나의 구체적 수행 방법론은 9월호 ‘재가자의 바라밀다’에서 이어집니다. 


남시중|시카고에 거주하며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저널리즘 석사(MSJ)를,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법학 박사(JD)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개를 위한 변명-보신탕과 동물 권리론에 대한 철학적 성찰』, 『벤처@실리콘 밸리』, 『Why Meditat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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