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행원 선사, 소통과 공감으로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다|세계의 선사로부터 배우는 불교

숭산행원 선사
소통과 공감으로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다

최용운
서강대학교 연구교수

(1927~2004)

한국 불교 세계화의 선봉에 서다
2024년은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 선사(이하 ‘숭산 선사’)가 입적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생존 당시에 이미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태국의 틱낫한, 캄보디아의 마하 거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로 영국의 유명 작가이자 민속학자인 로웬스타인(Tom Lowenstein)의 저서, 『부처의 비전(The Vision of the Buddha)』에 소개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법랍 57세, 세수 77세 동안 숭산 선사가 남긴 발자취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 짙게 남아 있다.

그는 1966년 도쿄 재일 홍법원 설립을 시작으로, 1969년 홍콩, 그리고 1972년 미국 프로비던스(Providence)에 홍법원을 설립하며 한국 불교 세계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이후 관음선종(The Kwan Um School of Zen) 창립으로 이어지며 세계 30여 개국에 120여 개 지부를 설립함으로써 5대양 6대주를 무대로 하며 한국 불교사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오늘날 한국 불교의 세계화가 국내 주요 종단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지만, 숭산 선사는 거의 반세기 전에 이미 홀로 이를 실천하며 한국 불교 세계화의 선봉에 서 있었다.

외국인 제자들과 함께한 숭산 선사(출처|현대불교)

섬김과 헌신의 자세
소위 ‘탈종교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불교는 다양한 도전과 변화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불교가 한국인들의 관심 밖으로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비단 불교만의 문제가 아닌, 종교계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무종교인의 비율이 수년째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한국 불교계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으며, 숭산 선사의 행보는 오늘날 한국 불교에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그는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 젊은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참선을 가르쳤고,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세탁소 기계수리공으로 일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 숭산 선사는 갓 출가한 승려가 아니라 이미 불교신문사 초대사장, 동국대학교 상무이사와 조계종 총무부장 등의 중책을 역임했던 스님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모두 내려놓고 섬김과 헌신의 자세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통과 공감의 정신
숭산 선사는 오늘날에 와서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소통과 공감의 가치를 일찍이 깨닫고 몸소 실천했던 인물이다. 미국에서 참선을 지도할 당시, 그는 선원에서 서양의 제자들과 열린 대화의 장을 자주 마련했으며, 거기에서 그들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논리적인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또한 멀리 있는 제자들은 서신을 통해 소통하며 수행을 지도했는데, 이 서신들은 훗날 단행본으로 출간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 전해지고 있다. 서신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선사의 세심한 답변과 함께 그들의 수행 상태를 일일이 점검하며 정성스럽게 지도하는 선사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뿐만 아니라 숭산 선사는 단계별 공안을 점검하는 과정을 ‘공안 인터뷰’라고 지칭하며 제자들의 수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했는데, 이러한 그의 제접법은 오늘날 입실 점검의 전통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한국의 수행 풍토에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숭산 선사는 청담 스님과 함께 한국 불교계 최초의 현대적 신문인 『대한불교』(현 『불교신문』) 창간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신문사 사장을 역임한 이후에도 편집인 겸 인쇄인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해나가며 장장 1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신문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불교신문사가 펴낸 『불교신문 50년사: 한 장의 불교신문, 한 사람의 포교사』에서도 숭산 선사를 “대한불교를 키운 종단의 제일 공로자”로 표현하며, “행원 스님이 없는 불교신문, 즉 대한불교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그 역할이 컸다”라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당시는 종교계의 TV 방송국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신문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불교 언론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그의 노력은 특히 돋보인다.

문화적·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
숭산 선사는 생전에 한국 선(禪)의 정통성에 깊은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서구문화를 대표하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전법 활동을 하면서 사고방식과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장벽에 직면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 불교의 남녀 차별적인 관행과 연관된 것이었다. 숭산 선사가 미국 포교를 전개하던 1970년대는 남녀 차별 철폐에 관한 사회적인 의식과 제도적 변화가 강하게 일어나던 시기로서, 1960년대에 미국에서 전개되었던 여성해방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남녀 차별 철폐를 위한 구체적인 법안이 정립되던 때였다. 이러한 맥락에 부응하며 숭산 선사 역시 관음선종 내에서 비구와 비구니 간의 차별을 과감히 철폐했다. 가령 비구니도 지도 법사가 되어 비구들 앞에서 당당히 법문을 하게 했는데, 이것은 관음선종이 성립될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조차 폭넓게 정착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그의 결단은 서양인들이 불교를 수용하기 용이하게 만들었으며, 만약 이러한 변화가 없었다면 관음선종의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다음으로 숭산 선사는 수행자 개인별로 한 가지 화두만 참구하게 하는 한국 간화선의 전통을 과감하게 변용시켜 여러 개의 공안을 단계적으로 참구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것은 기존 방식이 틀렸고, 변용된 방식이 옳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의 요청에 맞추어 수행법의 변용을 감행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사실 간화선의 창안자인 대혜종고가 한 가지 화두만 참구할 것을 강조했으며, 한국 간화선은 이러한 초기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숭산 선사는 새로운 문화적·시대적 맥락에 맞게 수행법을 재구성했다. 이로 인해 “숭산의 선은 일본 선”이라고까지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것은 숭산의 선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숭산 선사는 여러 개의 공안을 단계적으로 참구하는 방법을 채택하면서도 항상 ‘오직 모를 뿐’이라는 언구를 수행의 중심에 두게 했다. 이것은 한 가지 화두를 참구하는 방식과 여러 개의 공안을 단계적으로 참구하는 방식을 통합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필자는 이전 논문에서 이러한 숭산 선사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한국 간화선 수행법과 일본 임제종 수행법의 통합 시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숭산 선사가 남긴 정신적 유산
최근 ‘젊은 불교, 힙한 불교’라는 구호 아래 조계종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죽을 바에는 모든 걸 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오늘날 한국 불교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종교는 그것이 불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종교라 하더라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사찰이나 선원 중심의 수행 문화가 걸출한 승려를 배출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을지 모르나, 대중과 단절된 수행 문화는 결국 한국 불교 전체의 쇠퇴와 몰락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숭산 선사는 섬김과 헌신의 자세로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앞장섰고, 소통과 공감의 태도로 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문화적·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을 통해 서구 사회에 적합한 수행법과 수행 문화를 정착시켰다. 그가 보여준 모범과 혁신적 시도는 오늘의 한국 불교가 나아갈 방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언이 숭산 선사가 시도했던 모든 것이 완벽했으므로 무조건 추종할 가치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는 현재에 맞게 한국 불교가 처한 상황에 따른 치열한 고민과 적절한 대응책이 필요하겠지만, 숭산 선사가 남긴 정신적 유산에 담긴 근본정신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최용운|연세대학교와 보스턴대에서 수학했으며,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전공은 동아시아 불교). 현재 서강대 연구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숭산행원의 생애와 사상』 등이 있고 「숭산행원의 선사상과 수행론」, 「A Convergence Study between Ganhwa Seon and Positive Psychology」 등의 논문이 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