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마음 연습하기|10분으로 배우는 불교

모르는 마음
연습하기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


숭산 스님의 “이것이 무엇이냐?”…“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
숭산 스님은 한국의 선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리셨던 분이다. 미국에서도 프로비던스 젠센터(홍법원)를 세우시고, 선(禪)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미국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선불교의 참뜻을 가르치셨다. 벽안의 제자들에게 스님이 자주 사용했던 깨침의 방식은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가령 방 안의 테이블에 놓여 있는 오렌지를 손에 쥐고 제자에게 내밀어 보이면서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 너무 쉬운 질문에 제자가 신속하게 “오렌지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스님은 죽비로 제자의 어깨를 살짝 친다. 틀렸단 말이다. 놀란 마음에 제자가 재빨리 다른 대답을 한다. “에? 그레이프프루트(자몽)인가요?” 다시 죽비가 툭 친다. 이제 제자는 스님의 눈치를 살피며 스님이 뭔가 특별한 대답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생각이 많아진다. 시간이 흐르고 제자가 대답한다. “스님의 주먹입니다.” 아! 이번에도 틀린 답이다. 죽비가 툭 어깨를 건드린다. 당황한 제자가 재차 열심히 궁리해서 대답한다. 또 틀렸다. 제자가 더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답인지 도저히 모르겠으니 생각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 “스님,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냐?” “네, 스님이 무슨 답을 원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스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지금 그 마음을 유지하거라(Keep the mind).”

“이 모르는 마음은 너의 진정한 스승이다. 항상 그 마음을 유지하거라. 그러면 곧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으로 유명했다. 간화선에서 내려오는 가르침의 방식을 통해 미국의 제자들에게 선불교를 즉시 체험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셨다. 선불교에서 가르치는 방식은 현대 심리 치료와 코칭에서도 응용되어 많은 사람을 모르는 마음으로 안내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기회 줄 수 있어
선불교에서는 우리 마음에서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모른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 ‘나는 모른다’라는 태도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정반대 편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의 대가로 사회적 보상을 얻는다. 그래서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승진의 계단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잘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은 스스로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 적어도 어떤 일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그렇게 믿게 된다. 사실이 그렇다. 많이 알수록 환경을 지배할 수 있다. 이윤 조직을 이끄는 리더나 대기업 이사회의 임원은 성과에 대한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 만일 어떤 일에 투자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때, 뭔지 모를 불확실성이 있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정을 보류할 수밖에 없다. 일을 미적거리면 경쟁에서 뒤처질지 모른다.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더 알려고 애쓴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믿는 것은 오히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막는다. 나도 모를 수 있고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할 때, 성공에 대한 집착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동시에 긴장이 풀리고 개방적인 몸과 마음을 얻게 된다. 이때야말로 예상치 못한 것, 이전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창의적인 해결책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 될 때도 있고, 모르는 것이 득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

“매일 아침 초보자가 되세요”
기독교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매일 아침 초보자가 되세요”라고 말했다. 초심자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과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편안하다. 이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긴장을 풀고 언제든지 새로운 방식을 배울 용의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사물을 명확하게 보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탐색하고 실험하고 탐구하는 것이 전혀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시행착오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고 느낀다. 작지만 본질을 꿰뚫는 실험들은 초보자의 마음에서 나온다. 물론 엄청난 실패의 강을 건너야 할 때가 더 많지만. 초심자의 마음과 호기심 많은 탐구자의 마음이 합쳐지면 여러 번의 실수와 실패는 오히려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현상의 전체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제의 작은 실패는 내일의 큰 충격에 대한 가장 좋은 보호 장비라고 했다.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저항 없이 현실을 수용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러므로 실패는 약한 사람의 상처가 아니라 수용하고 열린 태도를 얻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관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실패에 꺾여서는 안 된다. 실패에 꺾이지 않기 위해서 초심자의 마음이 필요하다. 아직 잘 모르니까 실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란 말이다.

나는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다
초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먼저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내가 아무리 많이 연구했고, 경험했고, 데이터가 많다고 하더라도 나는 현재 당면한 문제에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 이것을 인정할 때, 어떤 느낌인가? 어떤 두려움이 생기는가? 두려움 외에 다른 감정이 일어나는가? 내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해방감을 느끼지는 않는가?

문제의 해답이 반드시 복잡한 과정으로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답을 찾지 못할 때, 데이터를 더 모으려고 애쓰지 말고 문제를 풀려고 애쓰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할 때다. 나는 무엇을 피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변명하려고 하는가?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누구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는가?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절망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문이 된다. 내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관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된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견해를 초대하고, 부분만을 보지 않고 전체를 볼 수 있게 되고, 나와 나의 적을 함께 고려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이것은 삶에 대한 태도다. 우리가 항상 미래를 알 수 없다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확실성을 요구하는 마음에 따라다니는 불안에서 자유로워진다. 그것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살겠다는 의지와 태도인 것이다. 이로써 삶을 예측할 수 없을지라도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으로 현실에 발을 딛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기를 원하고, 발달한 기술의 힘을 빌려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다. 이렇게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사회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어리둥절해서 당황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일 수 있다. 답을 찾지 못하는 것, 이것은 내가 새로운 가능성의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모른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현재 순간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고 진정한 호기심과 공감으로 경청하게 된다. 저명한 명상 지도자 잭 콘필드도 선불교의 모르는 마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모르는 마음의 진실을 느끼고 편안해지고 그것에 익숙해지세요. 이제 내면적이든 외면적이든 갈등을 떠올려보세요. 그것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생각과 의견을 알아차리세요. 이제 당신이 정말로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리세요. 잘못된 것이 더 나은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모릅니다. 모르는 마음으로 자신, 상황,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보세요.”

“느껴보세요. 모릅니다. 확신이 없습니다. 고정된 의견이 없습니다. 새롭게 이해하고 싶어 하도록 허용하세요. 모르는 마음으로 접근하세요. 열린 마음으로요. 불확실성 속에서 편안하게 쉬고, 최선을 다하고 웃으며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모르는 마음을 연습하세요.”


문진건|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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