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곧 인품이다|2025년 캠페인 "아름다운 말을 쓰자"

말이 곧
인품이다

윤원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빙석좌교수


◦ 인권은 절대적으로 평등하지만 인품은 똑같지 않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일단 다 똑같은 사람이다. 모두가 각자 절대적으로 소중한 존재이며 동등한 인권을 가진다. 천부인권(天賦人權)이니 자연권(自然權)이니 하는 개념이 그런 의미이다. 아예 실정법에 명시되는 경우도 있으니, 대한민국 헌법도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언명한다. 사실 그것이 국가라는 제도의 존재 의의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선포하는 셈이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그 반대로 보는 체제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저절로 천부인권을 보장받고 살고 있음을 새삼 다행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한 인권은 절대 평등하다. 성별, 인종, 계급, 지위, 지능, 재력, 권력, 학력, 능력, 체력, 체격, 외모, 쓸모 등등 그 무엇으로도 차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엄연한 현실도 있다. 평등한 천부인권의 차원을 벗어나 현실 생활의 현장에서는 위에 나열한 것들 외에도 온갖 기준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우리가 일용품을 구입하고 사용할 때 물건의 품질을 따지고 값어치를 따지듯이, 사람도 품질과 값어치가 다르게 매겨진다. 예전에 스승님 한 분이 훈육인 듯 금언인 듯 잔소리인 듯 말장난인 듯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것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였다. 이 글 첫 문장에서 “사람으로 태어나면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한 뜻과는 물론 다른 맥락인지라, 정반대되는 그 말씀도 타당한 진실이라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답다는 게 뭘까? 사람의 품질, 격조를 말하는 것이니 흔히 쓰는 말로 사람으로서의 품격, 즉 인품을 가리키겠는데, 인권은 절대적으로 평등하지만 인품은 똑같지 않다. 인품은 무엇으로 결정되나? 아무리 현실적인 차이를 이야기하는 맥락이라 할지라도 앞에 나열한 기준들, 즉 성별, 인종 내지 외모, 쓸모 등등을 가지고 인품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요즘 하는 말로 금수저, 흙수저가 인품의 기준일 수도 없다. 만약 그런 것을 가지고 사람의 품격을 가늠하는 버릇이 당신에게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잘 진단하고 교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 알게 모르게 다소간 그런 버릇이 있다. 필자도 이 글을 새삼 반성의 기회로 삼는다.

◦ 말은 곧 사람됨의 기본 요건
인품의 가장 기본적인 가늠자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애시당초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 언어였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저서 『사피엔스(Sapiens)』에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의 지배자가 된 것은 광범위한 연대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느 동물들은 기껏해야 함께 먹이활동을 하고 살을 비비며 밥을 같이 먹는 직접적인 관계에 국한된 범위에서나 연대가 가능하다. 그런데 인류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연대하고 어떤 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한 번도 직접 접촉한 적 없는 개체들까지 동원되어서 함께 움직이고 통합될 수 있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인간 특유의 언어라고 진단한다. 달리 말하자면 인류가 여느 동물과 달리 문화와 문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다운 언어 덕분이라는 얘기이다.

언어가 인간 특유의 광범한 연대와 동원과 통합을 가능케 해 사람을 사람이게 했다는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최근에 또 있었다.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웨덴에 가서 ‘빛과 실’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에서였다. 다름 아니라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한마디 표현이 내게 꽂혔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언어라는 실로 이어진다.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연대, 소통, 교류의 실이 다른 무엇보다도 언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다움, 즉 인품, 인성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바로 말이다. 말을 잘해야 연대, 소통, 교류가 잘된다는 단순히 전략적인 차원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말이 곧 사람됨의 기본 요건이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 특히 학교든 학원이든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제발 그 점을 아주 무겁게 여기고 교육에 임하기 바란다. 집에서 바깥 얘기 잘 안 하는 큰애 때는 몰랐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 미주알고주알 고해바치던 둘째 아이 중학교 다닐 때부터 어린아이들의 언어생활이 얼마나 난폭한지 전해 듣게 되었다. 자기들끼리 대화하면서 비속어를 꽤 많이 쓴다는 것도 속상한 일이거니와, 선생님 중에는 ‘이◦ 저◦, 이 새◦, 저 ◦끼’라는 호칭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참담했다. 교육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사회화가 목적이지만 이상적으로는 됨됨이를 바르게 갖추도록 하자는 것인데, 아무리 교과를 개편하고 입시제도를 개혁한들 인품, 인성의 가장 기본 요건인 언어생활을 바로잡아주지 않고 오히려 망가뜨리는 현장의 실태를 도외시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싶다. 우리 뒷세대의 인류가 갈수록 사람다운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비속어를 퇴치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요긴하고 급한 일이지 싶다.


윤원철|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빙석좌교수, 월간 『불교문화』 편집위원으로 있다. 『불교사상의 이해』, 『종교와 과학』 등의 공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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