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심이 강한 사람이 행동 변화를
더 잘 이끌어낸다
스티브 힉맨 박사(Dr. Steven Hickman) |
우리는 숨을 쉬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숨이 들어오면서 내 몸을 살찌우고, 숨이 나가면서 내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도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아기에게 관심을 기울이듯이 우리 호흡에 관심을 기울여볼 수도 있습니다. 호흡이 들고 나면서 그 부드러워짐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호흡의 흐름이 어떻게 우리 안을 보듬고 어루만져주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에 친숙하다면 이 마음챙김이란 것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변화’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데, 오늘은 변화에 대해서 말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챙김이 어떻게 변화를 지지하는지, 특히 자기연민이 이런 변화를 어떻게 가능케 하는지 말해보겠습니다.
‘나에게 있는 이 행동만은 변화시키고 싶다’ 하는 것이 있습니까? 담배를 끊고 싶다, 술을 적게 마시고 싶다, 인내심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을 더 잘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 우리 모두에겐 우리가 바꾸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걸까요? 왜 이렇게 변화가 어려운 걸까요? (마음 깊이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 말도 맞습니다. 자신의 동기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지요. (쉽게 변화하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는 경향 때문인 것 같아요). 맞습니다. 이 자기비판이라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변화에 실패한 스스로를 심하게 비판하다 보면 나중에는 변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마음은 변화하고 싶은데 고질적 습관이 몸에 고착되어서 변화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은, 현대 과학이 새로운 습관, 새로운 수행을 우리 삶에 가져옴으로써 우리의 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밝혀냈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따르면, 변화의 장애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앞서 자책을 말씀하셨지요? 내가 한 일 혹은 내가 하지 못한 일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경험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지금부터 한번 생각해봅시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어떤 일에 실패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 친구에게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해보세요. 무슨 말을 할지, 도와주기 위해 무엇을 할지, 어떤 목소리 톤으로 말할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런 일이 최근에 있었다면 내가 그 친구에게 어떻게 반응했는지 떠올려보십시오. 자, 이번엔 다른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친구가 아닌, 내게 그처럼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럴 때 난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나요? 일이 잘 안 풀리고 실패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고 무슨 일을 하나요?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친구에게 했던 방식으로 자신도 대하는지 살펴보십시오. 크리스틴 네프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84%의 사람들이 나보다 친구에게 더 친절하게 대한다고 답했습니다. 14%는 나와 친구를 비슷하게 대했으며, 2~3%만이 내게 더 잘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에게 고통을 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나 타인에게는 친절을 베풀고 위로하고 지지할 줄 알면서 본인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때의 느낌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크리스틴 네프 박사는 자기연민심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이 내가 스스로와 맺는 관계에서 야기되는지를 밝혀냈습니다. 네프가 자기연민심에 관해서 연구하게 된 계기는 마음챙김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학생일 때 마음챙김 명상 그룹에 참가했다가 스스로에게 친절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야 한다니, 당시에는 네프 박사에게도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그것을 자신에게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혁명적인 생각으로 다가왔습니다. 네프가 자기연민심을 연구하며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자기연민심이란 우리가 자신 안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러 많은 성질, 성향과 긍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불안, 우울, 불만 같은 부정적인 것들과는 부정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 네프가 자기연민심에 대해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연민? 그거 자기 방종 아냐? 자기중심적, 자아도취적인 거 아냐? 그것 좀 너무 약한 것 아냐?…” 삶에서 많은 성취를 한 이들 가운데는 자기연민심을 갖게 되면 경쟁력을 잃게 되고, 더 이상 1등을 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틴 네프 박사는 연구를 통해 그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습니다. 연구 결과, 자기연민심이 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타인을 돌보고 공감력도 뛰어나며 사람들과의 유대감도 더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또 자기연민심이 약한 사람들보다 회복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자기연민심이 강한 사람들이 노력도 더 많이 하고 성취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패를 덜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연민심이 강한 사람들이 더 노력하고 계속 시도할 수 있는 이유는 실패했을 때 더 잘 견뎌내고 자기비판을 덜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연민심은 자기 방종이나 자기 방관이 아님도 드러났습니다. 자기연민심이 강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더 잘 돌보고 행동 변화를 더 잘 이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자기연민이 강한 사람들이 다이어트도 더 잘하고 금연도 잘하며 운동도 더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스스로를 비판이 아니라 친절로 대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뉴질랜드에 있는 한 MSC 강사는 당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절반은 MSC 훈련을 함께했는데, 그 사람들의 경우 혈당 농도도 낮았고 삶의 질도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MSC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어떻게 이런 생리적인 결과로도 나타날 수 있는지에 관한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단지 명상을 했을 뿐인데 혈당이 내려갔다니, 마술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그 결과 운동도 더 잘하고 체중도 잘 관리하고 혈당 조절에도 성공합니다. 이 사람들이 변하면 우리도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우리 스스로를 친절히 대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크리스틴 네프 박사는 자기연민심에 3가지 요소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고통받을 때 스스로에게 친절하려면 자신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챙김이 필요합니다. 마음챙김이 자기연민심의 첫 번째 요소가 됩니다. 마음챙김이란 순간순간의 경험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헤매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생각하고 계획하고 기억하고 반추하는 걸 좋아합니다. 이 마음챙김의 능력은 명상을 통해서 키울 수 있습니다. 자기연민심의 두 번째 요소는 보편적 인간성입니다. 우리 모두 사람이고 우리 모두 떠도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고통받고 실수하고, 실패할 때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보편적 인간성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실패하고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인생에서 실패하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혼자라고 느끼게 됩니다. 세 번째 요소는 자기 친절입니다. ‘아, 내가 지금 고통스럽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경험임을 인정하면 친구에게 하듯 내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챙김, 보편적 인간성, 자기 친절만 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집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진 않지요. 그래서 MSC 프로그램을 만든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 안에 있는 친절을 그저 느껴봅시다. 손을 들고 주먹을 꽉 쥐어보세요. 그런 후 어떤 느낌인지 한번 알아차려보시길 바랍니다. 단단하다, 힘들다, 아프다 등등. 그것이 바로 우리가 뭔가 부족하다고,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낄 때 스스로를 자책하는 느낌입니다. 이젠 주먹의 힘을 빼고 손을 편 후 가슴에 올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단지 손의 따듯함을 알아차려보세요. 그 손길이 내게 주는 친절을 대할 때 어떤 느낌인지 알아차려보십시오. 내 머릿속에 자기비판자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아, 내가 힘들구나’ 하고 알아차렸을 때 이런 작은 친절 하나를 스스로에게 선물해볼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자꾸 비판할까요? 어떤 사람은 자기비판을 했을 때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합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다른 이들로부터의 비판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비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미리 기대치를 낮추고 자기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떨 때는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게 하기 위해서,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른 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스스로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처럼 더 힘든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자기비판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돕기 위해서 자책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효과적이진 않습니다. 비판받는다는 느낌, 상처받는다는 느낌만 남길 뿐입니다.
지금부터 프로그램의 일부를 실습해보겠습니다. 내 안에 있는 자기비판자를 탐구해보고, 자기연민심의 방법으로 스스로의 변화를 위해 동기를 부여하는 실습입니다. 종이에다 쓰면서 할 수도 있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자기 행동 가운데 바꾸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세요.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하거나 영 바꾸기 힘든 습관 말고, 0~10의 강도 가운데 3 정도 되는 것으로 선택하십시오. 예를 들면 과식하는 습관이나 운동 부족 등등. 그런 후 실제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때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자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나요? 어떤 표현을 사용하나요? 어떤 톤으로 말하나요? 특정한 단어가 아니더라도 나를 판단한다는 느낌,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느낌일 수 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스스로 주고받을 때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이제 내 머릿속에 있는 자기비판의 목소리로부터 비판을 받을 때 얼마나 힘든지 자기연민심으로 바라보십시오. 이처럼 힘든데 왜 자기비판을 이렇게 오래되도록 내버려두었을까 생각해보십시오. 어쩌면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랬던 건 아닐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라도 어쩌면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자기비판자의 동기는 무엇일까? 어쩌면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비판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 자기비판으로부터 고통받았을 나에게 계속 자기연민심을 보내보십시오. 그러다 ‘아, 그래도 나를 도와주려고 그랬던 거구나’ 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자기비판의 목소리에게 감사의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 안에 여러 다른 부분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자기비판하는 부분도 있지만 스스로를 돌보고 연민으로 대하는 부분도 함께 있습니다. 이처럼 돌보고 자기연민심을 갖는 우리 일부도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다릅니다. 이 부분은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합니다. 이 부분은 현명하고 분명하게 보며,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끼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친절한 부분과 연결해보기 위해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어보십시오. 내 손의 따듯하고 부드러움을 느껴봅니다. 다시 한 번 나를 힘들게 하는 내 행동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내 안에 있는 연민심의 목소리는 내가 변하길 원합니다. 그 이유는 나를 수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의 최선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런 내 안에 있는 자기연민심의 본질을 적당한 문구로 표현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난 널 사랑해. 난 네가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아. 너는 내게 매우 중요해, 그래서 네가 변하는 것에 도움을 주고 싶어. 난 네가 이렇게 상처받는 걸 원치 않아. 너를 지지하기 위해 내가 여기 왔어.’ 자기연민심의 자리에서 내가 변화하기 위해, 나를 도와주고 나를 지지하기 위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친구에게 위로하기 위해 했던 말들을 써봐도 좋습니다.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스스로에게 더 친절해야지’ 하는 의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습관이 형성됩니다.
◦ 박사님의 말을 들으며 공감하는 바가 컸습니다. 저도 한때 자기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넌 왜 이 모양이야. 왜 이것밖에 안 돼?’ 그런데 어느 날부터 스스로를 다른 방식으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로 충분해. 잘했어’ 그러다 보니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나를 비판했을 때는 자신감도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 쓰곤 했는데, 자기연민으로 나를 대하면서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는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고 긍정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스스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곤 했는데, 이젠 그 하소연을 내게 합니다. ‘네가 이해받지 못해서 많이 속상했구나’ 하면서 자기연민을 보냅니다. 이런 제가 MSC의 자기연민 수행과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약간은 고립의 요소가 있지 않나, 나를 돌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은 배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자기연민심은 다른 사람과 나를 가깝게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수단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함께 현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엔 만나기만 하면 자꾸 뭘 달라고 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매우 진이 빠지는 경우지요. 어떨 때는 너무 힘들어서 그런 사람들을 피하게 됩니다. 한쪽은 받기만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주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균형이 깨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관계지요. 좋은 관계란 상호적인 관계일 것입니다. 나 스스로를 돌볼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도움을 받기도 하는 관계. 서로 주고받을 때 더 풍성하고 깊고 좋은 관계가 가능해집니다. 스스로에게 계속 친절하십시오.
◦ 자기연민 수행이 개인적 문제에서 더 나아가 경제나 남북문제 같은 공동체의 문제에도 도움이 될까요? 수행이란 것이 개인에만 머물지 않고 더 큰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 부분에서 MSC 프로그램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좀 좌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답은 인내입니다. 각자가 이 수행을 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빨리, 많이 하려는 순간 어쩌면 우리가 여기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의 본질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으로 최선의 비전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변화가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빨리 이뤄지지는 않을 겁니다.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리고 또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심히 알리는 방식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최선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서울 마포 다보원 법당에서 대한불교진흥원 주최,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 주관으로 방한한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스티브 힉맨 박사를 초청해 ‘일상에서의 삶의 변화 : 자기연민(MSC) 수행이 어떤 도움을 주는가’를 주제로 열린 특별 강연회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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