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관점에서 보는 세대 갈등 해소 방안|세대 갈등의 불교적 해법

정의의 관점에서 보는
세대 갈등 해소 방안

엄한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세대 용어의 모호함으로 세대 논의 자체가 소모적인 논쟁 우려하기도
“어느 시대나 어린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 간의 관계는 항상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세대’라는 용어를 통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세대 갈등’이라는 표현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이 표현은 다른 세대에 대한 몰이해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가리킨다. 이 세대 간의 문제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어떤 이들은 세대 간의 갈등 또는 적대를 말하지만, 다른 이들은 보다 가벼운 의미에서 ‘세대 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M. Debesse, 1958, “Le conflit des générations”, Bulletin de psychologie Année 1958 11-149 pp. 715~718.)

1958년 프랑스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의 한 구절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세대라는 용어가 지닌 모호함을 지적하며 당시 과열 현상을 보인 세대 논의가 소모적인 논쟁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반세기가 훌쩍 넘은 현재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지적일 것이다. 지난 대선의 이슈 중 하나였던 이대남 논쟁이나 또 한 번의 선거를 앞둔 최근에 등장한 노인의 무임승차 이슈 등 주로 정치권에서 세대 갈등의 불을 지피고 있다.

한국은 세대 간의 문화적 차이와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어
사회변동의 속도가 빨라진 20세기 들어서 세대 간의 갈등이 사회 갈등의 하나로 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세대 간의 가치관이나 생활양식의 차이와 같이 문화적인 차원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이제 새로운 요소가 덧붙여졌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세대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가 먼저 발전한 국가들에서 경제 성장이 멈추면서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의 재정 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 세대의 기여금이 늘어나면서 퇴직 세대를 위해 희생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젊은 세대가 선배 세대보다 더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세대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 분야의 후발 주자인 한국은 세대 간의 문화적 차이와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점점 더 빨라지는 기술 진보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 피부양자로서 젊은 세대에 부담을 주는 노인, 고령화율이 높아지면서 자동적으로 선거나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노인. 젊은 세대가 보기에 시대의 가치와 과제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인 것이다.

역으로 노인 세대가 젊은 세대에 반감을 가지기도 한다, 청년이나 자식 세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과거에 형성된 자신들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관은 아직은 변동의 여지가 있는 청년들의 가치관보다 훨씬 공고하다. 노인 혐오와 달리 청년 혐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혐오가 일반적으로 강자가 약자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세대 갈등 보이는 당사자들이 그 무엇보다도 강한 동질성과 연대 가져
세대는 계급, 인종, 젠더 등과 함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변수로 사용된다. 가치관, 문화적 취향, 정치 성향이 세대에 따라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세대 차이와 달리 세대 갈등은 항상 거론되는 이야기도, 명백한 사회 현상도 아닌 듯하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직후부터 이념 갈등, 계급 갈등, 지역 갈등이 순차적으로 나타났고 젠더 갈등이 그 뒤를 이었다. 세대 갈등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며 그마저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세대 갈등이 과도한 개념이며 그 의미가 불명확하다는 견해는 세대 개념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처음에 세대라는 용어는 생물학적 의미에서 재생산을 통해 동물이나 인간의 한 집단이 유지되는 현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집단이나 종이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직접적인 친족 관계를 넘어 사회 차원에서 유사한 연령대에 속한 사람 전체를 포괄하는 용어로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사회 전체 차원의 세대는 가족 차원의 세대에 비해 이 개념으로 포괄하는 구성원들이 지닌 공통점이 명확하지 않고 그 내부에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띤 사람들을 포함한다. 최근 한국의 세대 논의에서도 연구자들은 세대 내부의 다양성과 격차를 강조한다.

세대 갈등 개념이 지닌 또 다른 난점은 차이나 갈등을 보이는 당사자들이 서로 그 무엇보다도 강한 동질성과 연대를 가진다는 점이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세대 차이나 세대 갈등은 차이나 갈등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민족이나 계급 등 다른 종류의 집단 간 갈등과는 차이가 있다. 연대가 세대 갈등의 해법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실현되기 어려운 공상으로 여겨지는 계급 간의 연대, 민족 간 회합, 종교 간 대화보다 세대 간 연대는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이와 연관된 세대 갈등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세대의 경우 자신을 특정 계급의 일원으로 여기는 ‘대자적 계급’에 상응하는 ‘대자적 세대’를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회주의자나 페미니스트는 있어도 세대의 투사는 없는 것이다. 실상 세대 문제를 주도하는 것은 세대에 속한 이들이 아니라 세대가 필요한 정치인들이다. 세대 갈등은 젠더 갈등이나 계급 갈등과 달리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한다기보다 상호 이해의 부족이나 세계관의 차이에 따른 것이며, 그래서 그리 심각한 사안이 아니며 소통과 이해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세대 간 상호 이해와 정의가 세대 갈등 해결의 방법론…
노인 세대의 세대 간 연대 노력도 필요
상호 이해와 함께 정의가 세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론으로 동원된다. ‘세대 간 정의’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서구에서는 공적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 및 정당성에 관한 논의에 세대 간 정의 담론이 사용되어왔다. 모든 세대에게 제도가 공정하다는 신뢰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국민연금은 자신이 기여한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적금과 같은 것이 아니다. 당대의 노인 세대를 당대의 젊은 세대가 부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대 간 관계가 만들어지며 세대 간 연대가 요구된다.

현재의 제도 운용만 보면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에 비해 불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대 간 이전이 대를 이어 지속되는 것이 사회의 운영 원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 차원에서 행해지는 재분배, 즉 부모에서 자식으로 경제적 자원이 이전되는 측면을 고려하면 세대 간의 경제적 교환관계가 합당한지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

한편 정의는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공정성이나 형평성을 따지는 것을 넘어선다. 옳음을 지향하는 윤리적 의미도 있으며 어려움에 처했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 이를 해결하는 것도 정의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률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수치가 보여주는 노인 세대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며, 이러한 공익적인 과제에 젊은 세대 역시 참여해야 한다. 역으로 노인 세대나 기성세대는 지금의 또는 미래의 후속 세대들이 적절한 조건에서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과제에 참여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경우 이 사안에 대한 감수성이 보다 강한 젊은 세대는 상황을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고 여전히 기후 문제에 소극적인 기성세대에 불만이 많다. 미래의 주역들은 현재의 주역들보다 미래에 이해관계가 더 크게 걸려 있다. 스웨덴의 소녀 툰베리가 환경운동에 앞장서고 한국의 중고생들이 광우병 시위에 앞장섰듯이 더 어릴수록 미래에 더 민감한 모습을 보여준다. 노인 세대에게 세대 간 연대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세대 갈등이 사회를 더 정의롭고 풍요롭게 해주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상호 이해나 정의가 세대 갈등을 바라보는 주된 개념이지만 다른 시각도 필요하다. 사회 갈등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독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주고 이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유사하게 세대 갈등도 사회를 더 정의롭고 풍요롭게 해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기존 사회구조나 위계질서가 변화함에 따라 나타나는 아노미 현상이며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는 진통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더 넓은 사회변동의 틀에서 세대 갈등을 바라봐야 하며, 갈등의 주역인 여러 세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에 더 민감해져야 하는 것이다.

엄한진
프랑스 파리8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북아프리카 지역 연구, 이주 연구이며, 최근에는 증오 현상, 중동의 정치사회학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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