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선불교의 중심에서,
오직 모를 뿐!
화계사 청년회와 참선 모임 ‘수선회’
함영
작가
◦ 한국 선불교의 중심 도량, 화계사
예로부터 꽃과 시냇물과 절, 세 가지의 아름다움을 갖추었다는 화계사. 그러한 내력 때문일까. 일주문 앞으로도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심 한가운데 있는 절이지만, 일주문을 지나 조금만 들어서도 어느 깊고 맑은 산중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까닭은. 그보다는 경허, 만공, 고봉 선사의 법맥을 이어 숭산 선사로 이어져온 한국 선불교의 큰 맥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숭산 선사는 일찍이 한국의 선불교를 서양에 알린 최초의 스님으로서, 깨달음 이후 35년간 해외 포교를 하면서 32개국에 120여 개의 선원을 개원했고 생불로 추앙받으며 5만 명이 넘는 제자를 양성했다. 그런 그가 입적한 이후로도 전 세계 선원에서 그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고, 여전히 많은 내외국인들이 화계사를 찾아오고 있다.
명실공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선사상의 중심 사찰답게 일주문 옆에는 외국인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국제선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템플스테이 체험관도 함께 위치해 있는데, 템플스테이의 종류와 그 이름에서도 숭산 선사의 가르침이 배어 있다. 그의 유명한 가르침인 “오직 모를 뿐”에서 창안해 체험형인 ‘오직 모를 뿐’과 휴식형인 ‘오직 쉴 뿐’을 비롯해 단체로 당일 체험을 할 수 있는 데일리형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은 한국의 한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외국인 청년들이 방문했다. 화계사 청년회의 지도법사인 도선 스님의 안내로 절 곳곳을 둘러본 이들은 러시아 출신의 성철 스님 제자인 일교 스님의 지도하에 명상 체험을 해본다. 처음 명상을 접하는 청년들이기에 스님은 명상의 중요성과 명상 시 기초 자세, 간단한 명상법 등을 일러준 후 함께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주로 심리학과 종교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라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은 만큼 진지하고 궁금한 것도 많다. Q&A 시간이 주어지자 스님들은 매일 몇 시간이나 명상하는지, 혼자 명상하는 것과 단체로 명상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놓는다.
◦ 명상은 욕망을 쉬어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는 명약
명상 체험이 끝난 후에는 도량과 이어진 산길을 따라 산행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누구나 만만하게 오를 만한 산길을 잠시 걸었을 뿐인데도 머리가 시원해지고 몸이 경쾌해진다.
“명상하면서 가장 좋았던 게 이 같은 효과였어요. 청년 법회에 참석하려면 집에서 왕복 두 시간은 족히 걸리고 주말 오후라 피곤한데, 법회 시간에 명상을 하고 나면 피로가 해소되더라고요. 마음속에 묵힌 찌꺼기들이 씻겨 나간 듯 상당히 개운해지는 느낌도 들어요. 각자의 고민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있는데, 마치 심리 상담을 받은 것처럼 심리적으로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교환학생들과 같은 대학에 다니며 청년 법회에 참석하고 있는 김정훈 님(20대)은 견습 체험 정도로 생각하고 처음 법회에 참석했다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으며 명상의 효과를 몸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는 이소영 님(30대) 또한 비슷한 체험을 하면서 명상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더 나아가 불교가 자신의 전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고백한다.
“스님이 알려주시는 명상법은 호흡뿐만 아니라 몸을 하나하나 스캐닝하며 관찰하는 건데, 어떤 사람은 조금 아팠던 데가 도드라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부위가 개운해지더라고요. 저는 평소 감정을 눌러놓는 편인데, 몸을 스캔할 때 그 감정도 같이 올라와 환기가 되면서 정화되는 걸 느끼곤 해요.”
불자인 부모님의 권유로 별생각 없이 참석한 청년 법회에서 그녀가 새록새록 변화해가며 깨달아가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법회 때 스님이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불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시는데 뭔가 이야기는 해야 될 것 같아 경전 같은 걸 안 읽다가 읽게 되었어요. 얼마 전엔 『금강경』을 읽었는데 ‘무아’에 대해 나오더라고요. 그 말이 굉장히 와닿았어요. 상담심리에선 무아를 말하진 않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공통점, 보편성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것이 무아와 연결되더라고요. 그러니까 경계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무아가 이해되었는데, 그게 맞는 개념인지 몰라 법회 때 여쭤보니 스님도 그렇게 설명해주시더라고요.”
이쯤 되니 청년회 지도법사인 도선 스님의 지도 방식이 자못 궁금해진다. 대만의 법고산사에서 8년간 생활하며 불교학과 종교학으로 학·석사를 마치고 돌아와 현재는 한국의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스님은 여러 외국어에도 능통하다.
“대만은 주로 염불선을 하지만 법고산사에서는 묵조선과 간화선을 모두 합니다. 그 영향을 받기도 했고, 대학에 재학 중일 때 외국인 학생들에게 명상을 지도해보기도 했는데 청년들에겐 염불선이나 간화선보단 호흡과 몸을 관찰하는 명상이 적합하더라고요. 제가 가르치는 방식은 묵조선과 간화선의 기초 단계라 할 수 있는데, 호흡을 먼저 가다듬은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몸을 시각화해 스캐닝하면서 편안하게 이완해주는 거예요. 그런 다음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에서 몰입에 들어가는데, 이 상태에서 계속 집중하면 묵조선이 되고 화두를 잡고 들어가면 간화선이 되는 거죠.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것도 사실 명상과 관련 있어요. 몰입 명상을 계속하게 되면 마음이 훈련되잖아요. 그러면 마음의 장벽이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든 기호적인 걸 습득할 때 편견 없는 상태에서 바로바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습득이 빠르죠.”
정보의 홍수와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망 속에서 그것을 쫓기만 하는 삶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속성으로 결국 허기와 우울과 고통만 부풀려간다. 그러면서 균형이 무너진다.
“그래서 명상을 해야 돼요. 명상이 무너진 균형을 맞춰주는 데 아주 효과적이거든요. 왜냐면 욕망을 쉬어주니까요. 욕망을 쉬어주면 마약처럼 금단현상이 일어나는데, 명상을 하게 되면 금단현상 없이 욕망을 멈춰주죠.”
청년 법회에서 서로의 고민이나 문제점을 공유하는 것 또한 명상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간에는 누구든 내담자가 되고 상담자가 된다.
“저도 출가자로서 힘든 점이나 같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고민 등을 아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하면서 답을 구하기도 하고 힐링을 받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거죠. 공감을 통해 함께 해결해가는 방향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불교 교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나오기 전까지 인간에 대한 성찰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이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삶과 동떨어진 게 아닌, 삶에서 나왔고 삶과 연결된 불교로 들어가는 하나의 방법인 거죠.”
수선회는 화계사의 다양한 행사와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매년 봄가을에는 성지순례를 가기도 한다. 한편 매주 토요일 밤에는 '선우회'라는 철야정진 모임이 있어 새벽까지 참선을 이어간다. |
◦ 편안함이 아닌 자기 깨달음의 공부, 참선
화계사에는 3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불자들로 구성된 ‘수선회’라는 참선 모임도 있다. 1996년에 설립된 이래 매주 일요일이면 대적광전에 모여 108배를 시작으로 법사 스님의 법문을 듣고 좌선과 행선, 그리고 단학 체조의 일종인 이른바 ‘도인 체조’로 마무리한다.
참선 수행 덕일까, 수선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향산 님(60대)의 인상이 바람에도 걸림 없을 듯 여유롭고 해맑다. 수선회에 다니면서 많은 위로와 힘을 얻은 만큼 그 애정이 남다르지만, 그런 그가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찮은 계기 때문이었다.
“2013년 겨울 산행 때 눈이 많이 내려 점심을 먹지 못하고 걷다가 화계사가 나와 도시락을 먹으려고 공양간에 들어갔죠. 도시락으로 싸 온 과일이 남아 옆에 있는 보살님들에게 나눠 드렸는데, 한 분이 조금 있다 참선 법회가 있는데 참석해보라고 권유를 하셨어요. 그런데 그날 법사 스님께서 ‘이 몸과 이 마음이 참나가 아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죠. 그래서 법문이 끝나자마자 이 몸도 마음도 내가 아니면 무엇이 나냐고 질문했더니 ‘꼭 아니라고 말할 순 없지만 결국 아니다!’라고 하셔서 그날부터 그 말이 화두가 되어 참선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참선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달라진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깨어 있는 힘이 길러져 화가 줄어들었다. 화가 올라오면 그 화를 알아차리게 되고, 그러면 그 알아차림으로 인해 화가 사라진다.
“언제부터인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 스스로 놀랄 때도 있어요. 등산을 자주 다니는데 하루는 도시락을 먹으려고 보니 젓가락이 없어 무심코 나뭇가지를 잘라 젓가락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예전 같으면 생가지를 잘랐을 텐데 죽은 나뭇가지로 만들고 있더라고요. 또 도시락을 먹으면 산새들이 다가와도 무심했는데 어느 사이 먹을 걸 떼어 던져주고 있더라고요.(웃음)”
수선회에는 설립 연도만큼 오랫동안 참선을 해온 수행자가 적지 않다. 30년 가까이 참선과 단학을 병행한 화엄각 님(60대)의 경우가 그렇다. 단학 체조를 참선 과정에 넣자고 제안하기도 한 그녀는 불교 공부의 깊이를 더하고자 단학 수련을 병행할 만큼 일찍이 구도의 열정이 남달랐다.
“중학생 때부터 가슴속에 강한 의문점이 있었어요. 그걸 해결하려고 불교 공부를 시작했죠. 절에서 청년부 활동도 열심히 했고 전국을 여행 삼아 기도도 다녔죠. 단학 수련은 건강에는 정말 효과가 빠르고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제가 추구하는 것과 달랐어요. 그래서 단학은 몸 수련으로, 참선은 마음 수련으로 정하고 병행한 거죠.”
가슴속에 꽉 박혀 있던 의문 하나. 그것을 해결하고자 온갖 수행과 기도를 하고 스승을 찾아다닌 세월 속에서 그 어린 소녀는 어느덧 일흔 노년을 앞두고 있다. 그녀의 가슴속 체증이 이제는 좀 시원해졌을까.
“제가 추구한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깨달음이었어요. 요즘은 명상을 선호하는데, 명상의 끝은 자기 편안함이거든요. 참선은 그와 다른 게 근본적인 자기 깨달음이죠.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그 본성 자리를 찾는 게 이 공부예요. 명상은 그 당시는 마음이 편하지만 거기서 나오면 다시 현실이죠. 그래서 갭이 생기죠. 그때 저도 많이 헤맸어요. 그런데 참선은 현실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돼요. 최악의 현실과 상황에서도 나는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믿게 돼요. 제가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이었는데 긍정적으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물론 모든 게 내가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본성대로, 양심대로 생활해가면서 노력할 뿐이지. 그런데 자기가 생각한 대로 어느 날 다 이뤄져 있죠. 이 공부한 게 저는 정말 감사해요. 수련이 일상이에요.”
함영
1998년부터 글을 지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빅이슈 코리아』에서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출판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곰탕에 꽃 한 송이』, 『노란 문 공양간이 열리면』,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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