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명상은 몸과 정신건강의 지름길|2024년 캠페인 ‘‘마음챙김 하면서 걷자’’

걷기 명상은
몸과 정신건강의
지름길

최훈동
휴앤심명상상담연구소 소장


◦ 온전히 걸음에 몰입해 집중이 깊어지면
걷는 나와 주변 세상이 사라진다
산길을 걷는다. 눈길을 걷는다. 황톳길을 걷는다. 낙엽 쌓인 호젓한 길을 걸을 때면 아스팔트 길이나 시멘트 길과는 달리 늘 마음이 차분해지고 푸근해짐을 느낀다. 터벅터벅 뚜벅뚜벅 건들건들 비틀비틀 살금살금 사뿐사뿐. 걷는 것도 여러 가지이다. 나는 어떻게 걷고 있는가? 해찰하며 걷는가? 풀 없이 걷는가? 쫓기듯 잰걸음으로 걷는가?

요즈음 걷기가 유행이다.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환자들에게 일차적으로 권하는 운동 요법이 걷기이다.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서 일차적 스트레스 감소법도 걷기이다. 불면, 불안, 우울을 역전시키는 일차적 방법으로 걷기가 추천되는 이유는, 걸을 때 분주한 머리를 쉬게 하고 기분을 전환시켜주기 때문이다. 걸으면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등 자율신경계가 교감신경 우위에서 부교감 신경 우위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식사 후에 누워서 쉬는 것보다 가벼운 산책이 소화에 도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뇌에 몰린 혈류가 하지로 이동하는 효과가 있어서 머리를 식힐 때도 참으로 유용한 방법이다. 단순히 누워서 쉬는 것보다 산책을 하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하거니와, 난제로 벽에 부딪혔을 때 문득 해법을 얻는 망외의 소득도 있다. 칸트를 비롯한 독일의 철학자들이 깊이 사유해 굴직한 사상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산책 중에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걷기만 해도 이런 유익한 효과들이 있는데 온전히 걸음에 집중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명상은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2600년 전 붓다는 걷기 명상을 즐겨 새벽부터 저녁까지 앉기 명상(좌선)과 걷기 명상(행선)을 수시로 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종교 인구의 감소는 세계적 추세인데 명상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서구에서 크리스천이면서 명상을 배우는 인구가 증가 일로이고 심리 치료 분야에서 명상을 도입하는 임상가가 절반을 넘어선 지 오래다. 명상은 종교의 구별 없이 그리고 종교와 무관하게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명상의 두 날개는 집중과 관찰이다. 앉기 명상은 잡념이 많아 산란한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고 조금 앉으면 다리가 쑤시고 저려 오래 앉기 어려운 데 반해, 걷기 명상은 이런 불편이 없어 오히려 집중이 잘된다고 보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 명상은 걷기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걷기 명상을 구체적으로 연습해보자. 걸을 때는 오직 걸음에만 집중해서 걷는다. 먼저 실내에서 맨발로 걷는다. 발과 바닥이 접촉하는 느낌에 집중한다. 한 발 한 발 그 감촉을 느끼며 걷는다. 다음 단계로 걸음의 과정을 관찰한다. 한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발을 들고 내려놓는 과정을 보면서 ‘아, 한 걸음이 듬-놓음의 두 단계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게 걸음을 보다 보면 한 걸음이 세 단계로 보인다. 들어 올림과 내려놓음 사이에 내미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즉 한 걸음이 ‘듬-밈-놓음’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무심코 걷는 걸음이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니 신기하다. 더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면 한 걸음의 각 단계가 시작과 끝이 있음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게 걸음 하나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면 한 걸음은 최소 여섯 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지고 관찰이 예리해지면 그보다 더 많은 과정을 한 걸음에서 볼 수 있는데 마치 선풍기가 3~4개의 날개로 구성되어 있지만 빨리 돌면 하나의 원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원은 허상이고 환상이다. 우리가 ‘걸음’, ‘호흡’이라 이름하는 것들이 실제는 지칭하는 대명사에 불과할 뿐임을 알게 된다. 걸음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오직 매 순간 발의 움직임이 슬로비디오처럼 펼쳐진다. 온전히 걸음에 몰입하면 온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짐을 알 수 있다. 더 집중이 깊어지면 걷는 나와 주변 세상이 사라진다. 내가 사라지는 경험은 특별하다. 붕붕 뜨는 구름 속을 걷는 느낌일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눈물일 수도 있고, 그저 고요하고 순백한 느낌이거나 이유 없는 기쁨과 행복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을 삼매(sammadhi)에서 오는 기쁨, 선열(禪悅)이라고 한다.

이렇게 집중과 관찰이 깊어지면 일상의 매사가 단순 명료하게 되고 밖을 두리번거리거나 상대방의 평가에 매달리지 않게 되는 주체로운 삶이 펼쳐진다. 나(에고)를 드러내거나 높일 필요가 없으니 ‘척’하는 삶에서 벗어난다.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유유자적할 수 있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걸어봤으니 언제 어느 때든 걸음을 바라볼 수 있고 바삐 뛰어야 할 때도 마음은 한가로울 수 있다. 이렇게 알아차리며 걷기를 거듭하면 마침내 걸음은 걸음일 뿐이고 내 것도 아니고 내가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걸음뿐 아니라 호흡도 감정도 생각도 내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니란 자각에 이르게 되어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한 걸음 한 걸음 알아차리면서 걸어보자. 걸음이 분명하고 가지런해지고 유연해지며 걸음만 아니라 모든 행동과 일상의 삶이 절로 담백해진다.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언제 어느 때에도 늘 깨어 있게 되고 바라봄과 알아차림이 몸에 배면 삶에서 여유와 관용이 생기고 나날의 단조로움에서 늘 새롭고 경이로운 삶이 된다.

최훈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수련했다. 한별정신건강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초빙교수(정신치료 슈퍼바이저), 휴앤심명상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명상과 상담 안내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내 마음을 안아주는 명상연습』, 『깨달음의 길 숙고명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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