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무아와 참나
유식 불교에서 무아와 참나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 무아와 연기 그리고 일심
자아는 5온의 안팎에도 없는 허망한 환상
우리는 대개 세계의 일부분으로서 특정 시공간 안에 위치한 내 몸과 그 몸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 등의 마음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심신 내지 명색(名色)인 5온(蘊)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범부가 집착하는 자아는 결국 5온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5온이 자아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5온은 시간을 따라 생성 소멸하는 무상한 것이기에 결국 ‘자아라고 할 것이 없다’는 ‘무아(無我)’를 말하고자 함이다. 몸(색온)의 구성물은 끊임없이 바뀌고 느낌(수온)이나 생각(상온) 등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니, 그렇게 무상한 것, 이미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것을 나로 붙잡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집착이라는 것이다. 5온의 무상성을 깨달아 5온과의 동일시를 멈춤으로써 집착적 동일시에서 오는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붓다의 무아론이 지향하는 바이다. 그렇다고 붓다가 무상한 5온 너머에 무상하지 않은 ‘자기동일적, 상일주재적 자아’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붓다는 오히려 5온의 배후에 설정된 자기동일적 자아란 범부의 머릿속에서 시설된 개념, 허망하게 설정된 망념(妄念)일 뿐이지 그 개념에 상응하는 지시체(실체)는 없다고 논한다. 5온을 나의 5온으로 묶어내어, 나를 다른 사물들이나 다른 인간들과 구분 짓는 개별적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붓다의 무아론은 개별적 실체로서의 자기동일적 자아의 존재를 부정한다. 자아는 5온 안에도 5온 밖에도 없고, 한낱 물거품처럼, 아지랑이처럼, 메아리처럼 사라져가는 허망한 환상일 뿐이다.
우주 만물은 서로 인연으로 연결되어 분리될 수 없어
개별자의 실체성을 부정하면서 붓다는 일체 존재를 연기(緣起)로 설명한다. 우주 만물은 우리가 의식 차원에서 각각 서로 다른 별개의 것으로, 혹 이것과 저것으로 또는 자와 타로 분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복잡하게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고 서로 침투되어 있다. 범부의 의식은 이것과 저것을 서로 별개의 것처럼 나누고 분별하지만, 붓다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고 해, 그것들을 각각 서로 별개의 것으로 나눌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한 알의 사과와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해는 서로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저 해가 없었다면 이 사과도 없었을 것이고, 이 사과가 없었다면 이 사과가 있기까지의 전 역사를 이끈 저 해도 없었을 것이니, 그렇게 둘은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이 붓다의 연기론은 우주 만물이 서로 인연으로 연결되어 분리될 수 없는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설한다.
우주 전체는 중생의 마음, 본각의 마음
이렇게 보면 각각의 인간은 망망대해 위에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허망한 물거품 하나와 같고, 인연으로 통합된 전체 우주는 기멸하는 물거품과 출렁이는 파도를 일으키며 그 아래 놓여 있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검은 바다와 같아진다. 그런데 대승은 바로 그 전체로서의 우주를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바다, 검은 물질로 보지 않고 바로 중생의 마음, 영명(靈明)한 본각(本覺)의 마음으로 본다. 대승은 중생의 마음을 우주의 일부분으로서 인연 따라 생멸하는 허망한 마음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자신 안에 품는 우주적 마음(우주심), 일체의 주객 분별과 자타 분별을 떠난 절대 평등의 마음(진여심), 중생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 한마음, 일심(一心)이라고 보는 것이다. 범부가 나라고 여기는 ‘우주의 일부분으로서의 마음(a)’과 대승이 인간의 본래 마음이라고 여기는 ‘우주 전체의 마음(A)’은 다음과 같이 도표화해볼 수 있다.
◦ 유식의 마음 이론과 실천 수행론
우주 전체가 어떻게 어두운 바다, 검은 물질이 아니고, 신령하게 밝은 본각의 마음, 부처의 깨달음의 마음일 수 있을까? 인간의 개체적 의식(a)과 보편적 일심(A)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유식이 제공한다. 대승이 우주 전체를 우주적 마음, 진여심이나 일심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은 유가행파(유식학파) 수행자들이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의식보다 더 깊은 곳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심층 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식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대상(6진)을 파악하는 대상 의식(반연심)인 ‘제6의식’이 전부가 아니다. 대상 의식은 5온을 자아라고 여기며 집착하는 번뇌의 자기의식(자아식)에 기반한 식이며, 유식은 이 자아식을 의(意)를 뜻하는 범어 manas를 음역해 ‘제7말나식’이라고 부른다. 대상 의식과 자아식이 5온의 울타리에 갇힌 개체적 마음(a)이라면,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심층 마음이 바로 우주 전체를 형성하는 우주심인 보편적 마음(A)이다. 유식은 이 심층 마음을 함장(含藏)을 뜻하는 범어 alaya를 음역해 ‘제8아뢰야식’이라고 부른다. 아뢰야식은 중생이 거듭되는 지난 생에서 지었던 업(業)이 남긴 세력인 업력, 경험이 남긴 정보에 해당하는 종자(種子)를 함장하는 식이며, 자아(유근신)와 세계(기세간)는 그 종자의 현행화, 정보의 구체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식일 뿐 식 바깥에 대상 세계가 따로 없다’는 ‘유식무경(唯識無境)’,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이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성립한다.
일심을 증득하고 실현하는 것이 대승이 지향하는 것
유식의 심식론에 기반해 대승이 강조하는 것은 전체식(아뢰야식)인 진여심 내지 일심이 수행이 완성된 부처만의 마음이 아니고, 일체중생의 본래 마음, 본래 깨어 있는 본각(本覺)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타 분별, 주객 분별에 앞서 나와 너를 하나로 아는 영명한 마음인 본심 내지 양심을 갖고 있다. 이 하나의 마음, 일심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것이 대승이 지향하는 바이다.
붓다가 개별 심신인 5온 안에도 5온 너머에도 개체적 실체인 자아는 없다는 무아를 설한 것은 인간의 본래 마음이 5온이라는 자아의 울타리에 갇힌 개체적 마음(a)이 아니라, 자아의 범위를 넘어선 우주적 마음, 일체 만물의 차별상을 넘어선 보편적 마음, 일심(A)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본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근(根)과 경(境)에의 매임으로부터 풀려나야 하며, 자아의 울타리를 강화하는 탐진치의 번뇌를 벗어나야 한다. 전체의 마음은 일체 분별을 넘어선 마음, 나와 너로 경계 지워지지 않은 마음, 우주 만물을 자신 안에 품은 보편적 마음, 일심이다. 이 보편적 마음으로 깨어 있으면서도 인간은 다시 그 안에 자아의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갇혀 자타 분별을 일으킨다. 대승은 인간을 각각의 자아로 가둬놓는 이 5온의 장벽을 넘어 전체의 마음, 일심을 증득하고 실현하고자 한다.
참나는 무아를 깨닫는 마음
자아의 장벽을 모두 허문 마음, 열린 마음 또는 빈 마음(A)을 ‘참나’라고 할 수 있을까? ‘참나’라고 해 그것을 너와 구분되는 ‘나’, 우리를 탈각한 ‘나’로 삼는다면, 그것은 다시 아집과 아상을 세우는 것이 되니 진정으로 무아를 증득한 마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아를 증득한 마음이 나의 마음이면서 곧 너의 마음인 우리의 마음, 우리라는 하나의 마음임을 드러내기 위해 ‘참나’라고 부른다면, 그 명칭은 일심이나 진여심, 불성이나 본래면목과 마찬가지로 굳이 버려야 할 명칭은 아닐 것이다. 자아의 장벽을 허무는 마음, 무아를 깨닫는 마음이 바로 참나이다. 즉 나(a)가 없음을 아는 나가 참나(A)인 것이다. 무아와 참나는 이러한 자기 역설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서양 철학(칸트)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불교철학(유식)을 공부했다. 현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유식무경: 유식 불교에서의 인식과 존재』, 『불교철학과 현대 윤리의 만남』,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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