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본래 가르침과
라이프스타일을 꿈꾼다
제따와나선원
인도 기원정사의 터와 나란다 대학을 모티프로 절을 지은 이유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붓다가 생존할 당시는 실제로 어떠했을까? 그가 실제로 설한 가르침이며, 실제로 살던 곳이며, 먹었던 음식이며 입었던 옷이며…. 붓다의 실제 라이프스타일과 가르침이 과연 오늘날까지 얼마나 사실 그대로 전해졌을까, 하는 의구심 내지는 궁금증이 한 번씩 일어날 때도 있다.
강원도 춘천 남면에 위치한 제따와나선원. 한국의 절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울긋불긋한 단청이나 탱화는 어디에도 없는, 불상만 모신 정갈한 법당과 붉은 벽돌로 지은 심플한 외형의 건물들, 그리고 이색적인 모양의 작은 황금 탑만 경내 중앙에 자리한, 이 독특한 절을 구상하고 지은 스님께서도 분명 일찍이 그러한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터이다. 어쩌면 이 절은 붓다의 제자로서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과 그리움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붓다가 우기 때면 가장 자주 머물렀고 가장 많은 가르침을 설한 곳으로 알려진 기원정사에서 이름을 빌려 절 이름을 ‘제따와나’라고 지은 것에서나, 인도 북부 지역에 벽돌의 흔적들로 남아 있는 기원정사의 터와 나란다 대학을 모티프로 절의 외형을 지은 것에서도 그러한 마음과 뜻을 짐작케 한다.
그러기에 제따와나선원은 불교의 핵심인 사성제와 초기 경전을 기반으로 공부하고 수행하는 도량이다. 이곳 선원장인 일묵 스님은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부처님 생존 당시를 최대한 재현하고자, 경내 작은 황금 탑도 붓다가 머물던 기원정사 내에 있는 탑을 실측해 똑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식사도 초기 불교 방식대로 오후 불식을 하고 있고, 법당에 탱화가 없는 것도 그러한 연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있어야 할 것만 최소한 갖추고 사는 미니멀리스트의 살림살이처럼, 제따와나선원은 외형 면에서나 내형 면에서나 군더더기가 없고 심플하다.
“원래 불교의 가르침은 자기 내면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해서 지혜로 그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라 일반 종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죠.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자력 수행이라 부처님은 그 길을 알려주고 당신의 지혜를 빌려줄 뿐이죠. 제가 초기 불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같은 가르침의 근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으로 알려진 초기 경전에는 주로 실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들과 수행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기 문제를 정확히 인지해 그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스님은 초기 경전을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많은 문제와 의문을 풀 수 있었다고 한다. 그에 반해 대승 경전은 구체성이 떨어지고 타력적 요소가 많고 철학화된 경향이 있어 말은 화려하지만 실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서 제게 대승불교는 공허한 느낌이 있었어요. 하지만 무엇이든 오랜 세월 진행되다 보면 시대에 따라 덧대지기도 하고 변화를 거치게 되잖아요. 어떤 것이 정통이냐는 문제를 떠나 자기 마음이 편해지고 도움이 되는 쪽으로 공부하면 되겠지만, 불교 본연의 가르침이 뭔지 그 뿌리는 알아야죠. 그래야 지금 우리의 불교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도 변화되기 전의 가르침에 주목하고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들의 모임 ‘디빠’
일묵 스님의 합리적인 생각과 지도 덕에 제따와나선원에는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의 등불을 의미하는 ‘디빠’라는 청년부의 활동이 적극적이고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보통은 온라인 줌으로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함께 호흡 명상을 하고 법담을 통해 각자의 수행을 점검받고 궁금한 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데, 코로나 발생 이전에는 주말마다 선원에 모여 초기 경전을 읽고 수행하며 1박을 하고 다음 날 일요 법회까지 함께 참석한 후 귀가하곤 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이후로는 서울 근교 둘레길에서 걷기 명상을 하는 모임을 병행하고 있고,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공양을 올리거나 엽서나 에코백 등을 제작해 대중들에게 보시하는 문화 활동 등 오프라인 활동을 늘려가는 중이다.
20~40대로 구성된 디빠는 다양한 연령대만큼이나 초기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게 된 구성원의 사연과 이유가 다양하다. 현재 디빠의 회장을 맡고 있는 허자연 님의 경우는 평소 요가를 공부하면서 올바른 수행법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차에 지인의 추천으로 초기 불교를 공부하게 되었다.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마다 여러 사상이나 학문에 몰입함으로써 위안을 얻곤 했지만 공허하고 행복하지 않았다는 안수진 님은 일묵 스님의 동영상 법문을 보며 공감한 것이 많았고, 마침 제따와나선원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다 보니 법회에도 쉽게 참여하면서 초기 불교를 공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부처님 법을 기반으로 말씀해주신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법문을 들으면서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하면서 공감을 많이 했고,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었네, 자만이 많았네 하는 자각이 와닿으면서 마음의 변화도 크게 일어났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깨달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많이 했다는 이시우 님의 경우는 기복신앙에서부터 초기 불교를 접하기까지 남다른 사연이 있다.
“처음엔 무조건 빌었죠. 소문난 도량을 찾아가 업장을 소멸해달라, 탐진치를 없애달라 기도하고 사경하고 삼천 배를 하는 등 기복적으로 부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컸어요. 물론 그런 방식이 공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좋은 일도 많았지만, 이렇게 어딘가 의탁하는 방법이 맞는 걸까, 나 자신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계속 가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과 갈증이 언제나 따랐어요. 기도해서 효과를 보고 좋은 일이 생겨도 제가 바뀐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한 회의 끝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른바 ‘셀프 화두’를 들고 간화선 수행도 해보았지만, 점검해줄 스승이 없다 보니 제대로 하는지 알 수조차 없어 무아를 조금 느낀 정도에서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갑사에 일반인을 위한 무문관 수행이 있어 기대하고 찾아갔다.
“그런데 오히려 수행이 전혀 되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죠. 잠도 오지 않고 심심해서 무문관에 있던 『디가니까야』라는 초기 경전을 펼쳐 봤는데, 거기 나온 부처님 말씀 중에 ‘나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만을 설할 뿐이다’라는 구절이 있었죠. 그걸 보는 순간 내가 수행했던 이유가 원래는 이거였는데, 그 사실은 잊고 현실적인 기복이나 깨달음을 얻어 어떤 존재가 되겠다는 것에 꽂혀 있었다는 걸 강하게 깨달았죠. 그때를 계기로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가르침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공부해 볼수록 상당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고 능동적이고 지적인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붓다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만 설했을 뿐
“저는 수행을 하면서 굉장한 이득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제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또 제가 변화하는 만큼 제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 환경도 좋아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수행의 이로움이 많다는 걸 느껴요.”
점차 수행이 무르익어가는 조영은 님과는 달리, 디빠의 막내 격인 현동준 님의 경우는 수행자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반대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미국에서 명상이 유행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가벼운 마음과 호기심에 명상을 시작했다는 그는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원문을 찾다가 초기 불교를 알게 되었다.
“이젠 방향성이 보이고 이로운 점도 확인했는데, 수행하는 과정이 행복하지만은 않잖아요. 그래서 현재의 솔직한 심정은 ‘하기 싫다’예요. 당장에 보상이 따르는 건 아니니까 하기 싫은 거죠. 그리고 관성 때문인 것 같아요. 원래 했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고 당연한 건데, 수행으로 그걸 바꾸려는 것은 다른 방향성이니까 지속하기 힘든 것 같아요.”
수행하면서 누구나 겪게 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진솔한 막내의 고백에 선배들의 격한 공감과 조언이 쏟아진다.
“저는 아무리 괴로워도 진리는 하나라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수행하기 귀찮고 힘들어서 살던 대로 살려 해도 사성제의 진리는 변하지 않잖아요. 그 불변의 진리 때문에 관성대로 돌아가려 해도 어차피 다시 수행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는 시점이 오면 극복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여기 선원의 장점이 선원장 스님과 법담을 자주 나눌 수 있다는 건데, 법담 시간 때문에도 잘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이시우 님)
“저도 수행을 하면서 의심도 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디빠의 중요성을 많이 느껴요. 제 고민을 얘기하면 도반들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경험을 나누다 보면 다시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또 공덕을 일부러 짓기도 해요. 그러면 할 수 있다는 자존감과 긍정적인 마음이 올라오면서 다시 수행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수행을,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과 같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요. 산란기가 되면 연어는 물살을 거슬러 계속 거꾸로 올라가 결국 자기 몸속의 알을 안전하게 부화시키잖아요. 수행도 그런 게 아닐까요.”(안수진 님)
수천 년 전 인도 제따와나의 붓다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 같은 강원도 제따와나의 디빠 청년들에게 무어라 조언했을까?
함영
글짓기를 전생의 업, 내지는 고행으로 생각하는 글쟁이다. 『빅이슈 코리아』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출판 기획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노란 문 공양간이 열리면』,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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