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에서 명상을 만나다

길 없는 길에서 명상을 만나다

송영미
이룸 내면성장연구소 대표


부처님과의 인연
‘나의 불교 이야기’에 대한 원고 의뢰를 받은 후, 지난 두 달여 동안 문득문득 꿈을 꾼 듯 아련한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시골 중학교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멀리 보이는 낮은 산등성이, 그 중간에 자리한 작은 사찰. 어느 여름날, 친구들 너덧 명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곳에 올랐고, 땟국물 가득한 조무래기 아이들은 법당 안으로 조르르 들어섰다. 그곳에서 가장 큰 가운데 부처님과 나의 몸이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어쩌다 그 시골 중학교를 지날 때면 두 눈동자는 사찰이 있었을 법한 곳을 촘촘히 더듬곤 한다.

그렇게 꿈처럼 시작된 부처님과의 인연은 흐릿해졌고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그 후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하면서 우연히 회사 근처 법당을 출입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마음의 눈이 어두워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수행이 무엇인지, 깨어남이 무엇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매일 108배 수행을 권하는 스님 말씀을 따랐고, 2~3년 동안 거의 매일 108배 수행을 했다. 이후 이어진 몇 년의 설날과 추석 명절은 3,000배 수행으로 보냈다. 그 뒤로 새벽 수행에 참여하면서, 오랜 기간을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5시 남짓 된 시간에 수행처에 들어서고 7시에 수행을 마치면 8시에 회사에 출근하는 일정을 반복했다. 당시 수행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서는 길은 피곤할 법했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핑크빛 솜사탕 같은 느낌은 너무도 충만했고 햇살처럼 부드럽고 따스했으며 아이처럼 사랑스러웠다.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그 느낌이 가슴에서 꿈틀댄다.

'변화'라는 내면의 소리
한겨울 새벽 4시, 차가운 가로등을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종종걸음을 할 때면, ‘나는 왜 이 새벽에 길을 나서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는 언제나 ‘변화’였다. 그 ‘변화’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변화’라는 내면의 소리만 뚜렷하게 들렸다. 그 후 새벽 수행을 거듭하면서 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가 찾아왔고, 15년 남짓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불혹(不惑)의 나이에 학부 공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 없는 길
명상을 몸으로 수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으로 연구하면서 앞으로 이 길을 가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큰 고민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괜찮은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의 신분으로 명상 공부만 한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명상 공부가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명한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한마디로 ‘길이 없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르게 수행하는 사람은 먹고사는 일로 걱정하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곤 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무모한 선택은 심리학 전공 박사 학위로 이어졌고, 현재는 고대로부터 전해져오는 동양의 명상법과 서구 심리학을 연결해 조직에 필요한 명상법을 연구하고 프로그램화해 교육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조직에서 명상을 도입하는 정도는 서구와 비교하면 초기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경우 2000년대부터 조직에서 명상을 도입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구글, 애플, SAP,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키 등 다양한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과 LG, 포스코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중화되고 있는데, 점차 더 많은 기업이 명상 교육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서구에서 도입한 마음챙김 명상
서구 조직에서 도입한 명상은 주로 불교 수행법에서 기인한 마음챙김(알아차림, sati, mindfulness)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마음챙김 명상이 뇌와 몸 그리고 마음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신경과학의 발달로 더욱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조직에서 마음챙김 명상에 기반을 둔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적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제거되고 세속화되면서 자비 사랑의 윤리성이 배제되고 자기 위안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무분별하게 상품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일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조직 장면에서 명상을 연구하고 전달하는 위치에서 보면, 마음챙김 수행법을 자기를 진정하는 단순한 도구나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지금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억압하거나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직면하고 명확하게 살펴보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날것의 현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에고를 넘어선 알아차림의 의식과 지혜가 드러나며 이러한 의식의 성장은 나와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도록 이끄는 첫 단계가 될 수 있음을 논의한다.

자비 사랑이라는 인간 보편적인 윤리도 조직 명상 교육에서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한다. 보다 최근에는 ‘공감을 넘어선 연민적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리더들을 만난다. 공감이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아파하는 것이라면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해주고자 하는 의도가 서려 있는 마음이다. 연민적 리더십이 리더 자신과 조직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개인 및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명상 교육 커리큘럼에 포함하곤 한다. 서구 경영자 중에서 연민적 리더십에 관심을 두는 대표적인 인물은 링크드인(Linkedin)의 최고 경영자 제프 와이너(CEO, Jeff Weiner)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경영의 중심에 연민(compassion)을 두고 있으며,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연민 프로젝트(compassion project)를 후원하면서 초등학생들이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움 의도를 실천하며 마음챙김을 훈련하도록 돕고 있다.

내게 찾아온 열망과 자비 사랑
지금 되돌아보면, 우연한 인연으로 시작된 108배는 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에 대한 열망’을 가져왔고, 그런 내면의 소리를 따라 그저 천천히 조금씩 발을 내다 보니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부처님 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에 대한 열망’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마음챙김의 결과였고, 핑크빛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가슴의 일렁임은 자비 사랑의 깨어남이었던 것 같다. 내게 찾아온 그 열망과 자비 사랑은 현대화된 명상법과 서구의 심리학을 공부하도록 나 자신을 이끌었고 지금의 내가 있도록 했다.

마음챙김과 자비 사랑은 인류 보편적인 소중한 가치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치가 조직에 가닿게 하는 작은 길이 되어주고 있다. 오래전 무모하게 들어선 ‘길 없는 길’은 ‘지금-여기에 닿는 길’이였음을 이제야 본다. 부처님과 땟국물 가득한 어린아이의 흐릿한 인연이 이제야 선명해진다.

송영미
심리학 박사, 현재 이룸 내면성장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삼성인력개발원 명상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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