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선원 명상 수행기

명상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소영
다큐 영화 제작자


맨해튼의 매연 가득한 공기를 뒤로하고 나는 마침내 그리던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선원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안거 수행을 며칠간이라도 하기 위해서다. 뉴욕 도심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해 뜰 무렵과 해 질 녘에 아름다운 침묵이 맑은 공기 속에 감돈다. 프로비던스선원의 고요한 분위기로 인해 나의 현존감이 새로워진다. ‘나는 무엇인가’, ‘모를 뿐’ 등의 공안이 새삼 이곳에 있음을 실감케 한다. 절대적 현존!

아마도 이런 이유로 많은 도시인들이 프로비던스선원을 찾아 자신 속에 내재한 선(禪) 정신을 체험하려는 것이리라. 자리에 앉으니 마음은 내 삶의 여정을 비추어준다. 침묵 속에서 마음은 녹아 사라질 힘과 지혜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선원을 내가 자주 찾는 이유는 온전히 비워낸 고요함을 체험하기 위함이다. 즉 마음의 완벽한 고요함을 너무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프로비던스선원은 일본, 홍콩, 유럽, 미국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간 관음선종을 총괄하는 본산이다. 선원 곳곳의 아름다움은 설립자인 조계종 78대 조사 숭산 스님의 수행과 염원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이다.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 젠 센터의 얼음 호수 위로 아침 햇살이 반사된다.

새벽에 공성을 수행하다
새벽 4시 반. 아침을 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10분 후에 아침 수행이 시작된다는 신호다. 졸린 마음은 잠을 좀 더 자야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1분쯤 그리 싸우다가 마음을 다잡고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마음을 수양하기 위한 양치질을 한다. 매우 자주 아침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나에게 양치질은 고맙게도 내 몸을 깨워주는 수행과도 같다.

이를 닦은 후에 찬물을 한 잔 마신다. 아,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좋아. 이제 아침 수행을 시작할 시간이야.

법당에 들어서자 한기가 느껴진다. 예불이 시작되려는 순간은 모든 것이 다 천천히 깨어나는 순간이다. 부처님을 모신 불단 위에는 촛불이 희미하게 어둠을 밝히며 참석자들을 새날의 아침을 여는 정신으로 일깨워준다. 타오르는 향내가 어떤 안도감을 준다. 다시 한번 아침 수행은 나를 정신적 고향으로 데려다줄 관문과도 같음을 확인한다.

이곳은 나의 작은 자아, 감정, 잡다한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한 호흡, 한 호흡마다 복잡한 생각과 잡다한 지각과 충동이 씻겨나가는 것을 느낀다.

아침에 108배 수행을 하기 전에 우리는 사홍사원을 한다.

절 수행은 아침 수행 참석자 모두가 같이하며 함께 상승일로를 가는 수행이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절을 올린다. 절 수행은 하심을 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수행이다. 절을 할 때는 나의 모든 성품이 마치 사라지기 위해 나타나는 것만 같다. 나는 무(無)를 배우기 위해 부처님께 절을 한다. 나의 절은 무상을 몸으로 체현하는 명상법이다. 절을 하는 동안 무상은 계속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나의 몸과 마음이 대화하는 시간이다. 생각이라는 거친 바람은 항상 왔다가 가고, 또 왔다가 간다.

아침 수행이 끝나고 약간의 자유 시간에 나는 절 옆쪽으로 자리한 숲을 걸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숲 저편에서 고요를 깨며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내 눈길은 사원 뒤편에 울창하게 우거진 떡갈나무 숲 사이로 걸어 내려오는 남자에게 머문다. 이윽고 그가 내 눈앞으로 다가온다.

“아, 소영! 당신이었군요. 멀리서 보니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수행은 잘되세요?”

이곳 프로비던스선원에서 만난 앤서니였다. 아침 수행 때 예불문을 힘찬 목소리로 따라 염송하던 그를 기억했다. 이번 겨울 한 달 동안 안거를 하고 있는 열성적인 수행자다.
프로비던스 젠 센터 수도원 인근에 있는 숭산 선사 추모 동상 ‘오직 모를 뿐’

명상을 통해 새로운 길을 발견하다
앤서니는 형사소송 변호사였다. 그가 이곳에서 한국식 선 수행을 시작한 계기는 지난 25년간 일본 무술인 주짓수를 수련한 인연 때문이다. 비록 프로비던스선원에서 선 수행을 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주짓수를 하며 내면에서 참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는 소망은 오래도록 품어왔다. 그에게 내적 평화는 삶의 질 향상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느 날 그는 무죄인 고객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5년형을 받게 만든 후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되었다. 삶의 어둠으로 곤두박질친 그는 더 이상 법률 회사를 계속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파트너와 결별하고 회사를 떠난 그는 동남아시아로 가서 명상 수행을 하며 산스크리트어 불전을 공부했다. 그런데 2년 후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 도시인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명상 수행을 더 지속하고 싶었던 그는 프로비던스선원을 찾게 되었다. 이 무렵 선원은 코로나의 충격을 회복하고 서서히 대중 명상 수행 시간을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앤서니는 자신의 새로운 여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에 선원에서 독거 수행을 하며 그는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감회를 말했다.

“충격적으로 변호사 경력이 무너진 이후 다시는 원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무너질 것 자체가 본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제 경력이라고 믿었던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의 믿음 체계가 잘못 이루어졌던 거지요.

지금은 제가 선불교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참선이 가장 과학적인 마음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이 수행법이 나의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모으게 해줍니다. 명상 중 제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직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참선을 통해 확실하게 발견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더 깊은 차원에서 발견했다는 겁니다.

저의 존재감은 그저 존재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다시금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있음을 알았어요.”

동이 틀 무렵 앤서니와 잠시 나눈 대화는 나의 길을 상기시켜준다.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번역|로터스불교영어연구원

이소영
캐나다인으로 여러 편의 단편 영화와 다큐 영화를 미국 맨해튼에서 제작하고 있다. 현재 프리랜스 다큐 영화 제작자, 사진작가, 시각예술가, 창작저술가, 문화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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