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살처분 어떻게 볼 것인가? | 동물 복지 4

동물 복지 4


동물 살처분 어떻게 볼 것인가?


박재학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실험동물의학교실 교수



구제역에 감염되면 살처분한다. 

갓 태어난 돼지의 이환율과 사망률이 거의 100%인 돼지 유행성 설사병은 집단 살처분(殺處分) 대상 질병이 아니며 백신을 접종해 질병을 예방한다. 구제역은 한 집단의 이환율이 100%이지만 성숙한 우제류의 사망률은 1~5% 정도로 낮다. 2010년~2011년 4월까지 350여 만 마리의 구제역에 감염된 동물과 그 주변의 정상 동물들이 생매장되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하면서 구제역 발생이 현저하게 줄었다. 


구제역에 대한 대책이 살처분에서 왜 백신 정책으로 전환되었을까?

우역(Rinderpest)은 사망률이 100%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다행히 백신에 대한 효과가 좋아 살처분과 백신을 병용해 2011년에 세계적으로 박멸되었다. 그런데 구제역은 다양한 변이종이 존재해 혈청형별로 백신을 접종해야 하며 항체가 생겨도 바이러스가 체내에 남아 감염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살처분이 최선이었다. 구제역 청정국 유지는 ‘육류 수출입 통제에 따른 경제적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질병 관리를 잘하는 효율적 행정 체계’, ‘수의사의 전문가적 활동’,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축산’ 같은 수준 높은 국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정치 경제 과학적 지표였다. 그런데 전국에서 수많은 소와 돼지가 생매장당하자 정부는 백신 정책으로 변경했다. 이미 350여 만 마리가 생매장당한 후의 일이다. 구제역이 발생하기 직전인 2009년 육류 수출은 돈육 1만2,515톤(1만1,643$)뿐이었다.(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구제역 통제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과 생매장의 참혹함을 보고 나서, 정치가들은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보다 동물의 생명에 관심을 보이게 되어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다.


동물은 생매장 이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명을 빼앗긴다. 

도살 :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가축을 도살해 식용으로 한다. 2021년 우리나라에서 소 93만4,000마리, 돼지 1,838만3,000마리, 닭 10억3,564만3,000마리, 오리 4,928만 마리를 도축/도계했다.(축산물안전관리시스템) 이와는 별도로, 외국으로부터 소고기 41만3,794톤, 돼지고기 29만6,239톤, 닭고기 11만2,732톤을 수입했다.(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가축 살처분 :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제1종 가축 전염병인 우역·우폐역·구제역·아프리카돼지열병·돼지열병·뉴캐슬병·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축 전염병에 걸렸거나 임상 증상이 있는 가축을 살처분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예방적 살처분도 해야 한다. 제1종 가축 전염병에 걸렸거나 임상  증상이 있는 가축 또는 가축 전염병 특정 매개체가 있거나 있었던 장소를 중심으로 그 가축 전염병이 퍼질 것으로 우려되는 지역에 있는 가축의 소유자는 가축이 건강할지라도 바로 살처분해야 한다.

야생동물 살처분 : 야생생물법에 따라 야생동물 질병이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야생동물을 살처분할 수 있다. 2021년 2월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조치로 멧돼지 12만3,911마리를 살처분했다.(『중앙일보』 2021.3.3.) 또한 인간의 생활에 유해한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들은 총기를 사용해 사살할 수도 있다. 한편 유기되어 야생화(野生化)된 가축이나 반려동물도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고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실험동물의 살처분과 인도적 죽임 : 실험동물에 관한 법에서는 동물 실험 및 실험동물로 인한 재해가 국민 건강과 공익에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살처분 조치를 할 수 있다. 실험동물은 실험 처치 후에는 인도적인 죽임을 당해 검체로서 분석된다. 2020년 동물 실험 및 실험동물 사용 실태 보고에 따르면 414만1,433마리를 사용했다. 마우스가 313만8,992마리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개가 1만267마리, 돼지가 3만2,919마리, 원숭이가 3,979마리 사용되었다. 

반려동물의 안락사 : 2020년 반려동물 보호와 복지관리 실태에 따르면 유기동물은 13만401마리였고 그중 자연사가 25.1%, 안락사가 20.8%로 45.9%가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에 따라 보호 중인 유기동물을 안락사시킬 수 있다. 안락사 대상 동물은 중증 질환 및 상해로 인해 건강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진단된 개체를 비롯해 센터 수용 능력, 분양 가능성 등을 고려해 보호・관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개체를 순차적으로 안락사시킨다. 


동물의 살처분, 인도적인 죽임, 안락사의 문제점

구제역 청정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살처분을 지속해오다 백신 정책으로 변환한 예를 보면, 특정 질병에 대해 살처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결정에서 국가의 이미지나 경제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동물의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 판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구제역 발생 당시 수백만 마리의 동물을 살처분하는데, 동물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매장을 하도록 정한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며 생매장을 했다. 살처분 과정을 지켜본 축주와 살처분을 지시한 수의사 그리고 생매장을 담당한 작업자들은 심각한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지자체별로 가축 살처분 등에 의한 심리적 외상 예방 및 치료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관련자들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동물보호소나 실험동물 시설에서 유기동물이나 실험동물의 인도적 처치를 담당하는 수의사 또는 연구자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 향후 유기동물이나 실험동물에 대한 인도적 처치 후에 보이는 피해까지 확대해 전문적 상담 및 심리 치료·정신 치료 등의 프로그램을 보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밖의 살처분 때문에, ‘토양 및 지하수 오염 등 매몰지 환경오염’, ‘방역 예산에서 질병 예방보다 살처분 처리에 드는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되는 문제’, ‘축산 농가의 사회적 고립’ 같은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살처분의 대안

사람의 방역과 달리 축산에서의 방역은 철저한 격리가 가능하다. 새로운 질병의 유입이 없다면, 그리고 신속하게 질병을 진단하고 검색할 수 있다면 대량 살처분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요 질병에 대한 신속 진단법 개발을 비롯한 상시 예찰에 많은 연구와 실행이 필요하다. 또한 백신 기술을 향상시켜 질병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백신을 제조해야 한다. 현재 살처분 대상이 되는 제1종 및 제2종 가축 전염병에 대해서도 질병의 특성과 사육 환경에 따라 살처분과 백신 정책을 신중하게 비교·선택해야 할 것이다. 예방적 살처분으로 건강한 수많은 동물이 생매장당했다. 주변 상황과 사육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일정 반경 내의 동물을 모두 살처분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방역 행정 담당자와 축산 농가의 입장에서 차이를 보일 경우 유연성을 가지고 이를 조정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축산은 생산성을 증가시키려는 방안으로, 가축의 생물학적 특성에 맞는 사육 방법보다는 집약식 사육 방식이 많다. 일생을 좁은 철망에 갇혀 사는 산란계에 의해 계란이 생산된다. 이렇게 투자 대비 생산성을 계산하고 사료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추구해온 것이 축산이다. 사람들이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 한 축산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술이지만 집약식 축산 방식을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이것은 동물뿐만 아니라, 자연스럽지 못한 환경에서 사육된 동물로부터 생산된 단백질을 섭취하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동물들은 각각의 생물학적 특성이 있고 그러한 특성을 제대로 발휘할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제는 축종마다 생물학적 특성에 맞는 사양 방법을 선택해야 할 때다.


동물은 생명을 가진 개체

목숨을 유지하려고 도망가는 가젤을 잡아먹으려고 사냥하는 사자 모두 생명을 유지하려는 필사적인 행위다. 사람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라도 목숨을 내어줄 농장 동물을 집단 사육해 잡아먹는다. 질병에 걸린 동물들은 솎아내어 생매장으로 살처분하고 건강한 동물들은 전기 충격을 주고 경동맥을 절단한 다음 피부를 벗기고 고기로 만든다. 우리나라 성인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단백질량과 전체 도축량을 포함해 수입되는 육류의 양을 비교해보면 너무 많은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동물의 살처분과 인도적 죽임 및 안락사는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이제 사람들은 동물을 먹지 않을 수 없고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을 수 없으며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과다하지 않은, 필요한 만큼의 동물 단백질을 이용한다면 가축을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쾌적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줄 수 있다. 반려동물을 과도하게 생산하지 말고 유기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안락사를 줄일 수 있다. 실험동물 대신 동물 실험 대체법을 강구하는 것도 동물의 생명을 존중해주는 방법의 하나다.  


박재학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실험동물을 연구, 일본 홋카이도대학 수의학부에서 독성병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실험동물의학교실 교수로 있다. 저서로 『동물과 인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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