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민주주의 : 생활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 2
불교적 생활 방식과
민주주의
이병욱
고려대학교 강사
기원전 6세기 불교가 인도에 등장할 즈음에 북인도에는 16개의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이 16개의 나라는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군주제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부족적 색채를 띤 공화제 국가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라들을 병합해서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나라가 마우리아 왕조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공화제의 국가를 지지했고, 이러한 신념은 승려의 공동체를 상가(saṃga)라고 부른 데서 잘 나타난다. ‘상가’는 한문으로 승가(僧伽)라고 번역되었는데, 이 말은 공화주의 또는 공화국의 정치 형태를 취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따라서 승려의 공동체를 승가(상가)라고 이름한 것에서 승려의 공동체가 민주주의 이념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승가의 운영 원리
승가의 운영 원리는 구성원 전원이 모여서 모두 동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모두 동의하는 것에도 등급이 있는데, 덜 중요한 사항은 한 번 동의하면 되지만, 중요한 사항은 세 번 동의해야 한다. 이는 그만큼 승가의 운영 원리가 민주주의적 측면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승가의 의사 결정 형식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 단백갈마(單白羯磨)이다. 이는 행사를 알리는 것이고, 그것을 채택할 의결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예로 자자(自恣)의 시작을 알리는 말을 거론할 수 있다. ‘자자’는 안거(安居) 중에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처럼 보였거나, 잘못했다고 소문이 났거나, 잘못이 아닌가라고 의심되는 점에 대해서 승가의 구성원이 자유롭게 말하게 하고, 당사자는 그 지적 받은 사항에 대해 참회하는 것이다. ‘자자’를 시작할 때에 “승가의 대덕(大德)들이시여! 제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오늘은 자자일(自恣日)입니다. 승가에서 준비가 되어 있으면 ‘자자’를 행하고자 합니다”라고 갈마사(羯磨師), 곧 회의 진행자가 선언하면 ‘자자’가 성립된다.
둘째, 백이갈마(白二羯磨)이다. 이는 안건이 제시되고, 그에 대해 구성원 전원이 동의할 때 의결되는 것이다. ‘백이갈마’에서 백(白)은 안건을 의미하고, ‘갈마’는 찬성과 반대를 묻는 것이다. ‘백이갈마’는 안건, 곧 ‘백’이 한 번 제출되고, 그에 대해 의결, 곧 ‘갈마’가 한 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구성원 전원이 찬성해야 안건이 통과된다. 예를 들면 포살(布薩)을 하는 곳을 어디로 할 것인지는 ‘백이갈마’를 통해서 결정한다. ‘포살’은 동일 지역에 있는 승려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보름 동안의 행위를 반성하고 죄가 있으면 고백하고 참회하는 행사이다. 이 ‘포살’을 어느 곳에서 할 것인지 정하는 것은 모든 승려의 관심 사항이 되기 때문에 동일 지역의 모든 승려가 동의해야 할 사항이다.
승가의 구성원이 다 모였으면, 회의 진행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승가의 대덕이시여!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승가에서 어떤 정사(精舍)를 포살당(포살하는 곳)으로 정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백’, 곧 안건입니다.” 이것으로 안건이 제출된 것이다. 계속해서 회의 진행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승가의 대덕이시여!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승가에서 어떤 정사를 포살당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대덕은 침묵해주십시오. 그러나 찬성하지 않는 대덕은 의견을 말해주십시오.” 이것을 찬성과 반대를 묻는 것, 곧 갈마설(羯磨說)이라고 한다. 전원이 찬성해서 침묵을지키고 있으면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그러면 회의 진행자가 다시 일어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승가에서는 아무 정사를 포살당으로 정했습니다. 승가에서는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이 알고 있습니다.” 이는 안건이 통과되었다는 선언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승가의 운영 원리, 스승과 제자의 관계,
재가 신도의 생활 방식에서 민주주의적 측면이 제시되었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초기 불교의 민주주의적 생활 방식을
21세기 한국 사회와 불교 사회에 어떻게 접목하느냐 하는 점에 있다.
들어주십시오. 승가에서 어떤 정사를 포살당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대덕은 침묵해주십시오. 그러나 찬성하지 않는 대덕은 의견을 말해주십시오.” 이것을 찬성과 반대를 묻는 것, 곧 갈마설(羯磨說)이라고 한다. 전원이 찬성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그러면 회의 진행자가 다시 일어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승가에서는 아무 정사를 포살당으로 정했습니다. 승가에서는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이 알고 있습니다.” 이는 안건이 통과되었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백이갈마’에서 찬성과 반대를 물을 때에 누군가가 반대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건은 통과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의 안건이 회의(갈마)를 통해 부결되었으면 다시 제출되는 일이 없으며, 다수결로 의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외적인 사항도 있는데, 안건을 제안한 사람이 반대하는 사람과 쟁사(諍事, 논쟁)를 일으켜서 문제를 제기하면 다수결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셋째, 백사갈마(白四羯磨)이다. 이는 하나의 안건이 제출되고, 그에 대해 전체 구성원이 세 번 동의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백사갈마’는 안건, 곧 백(白)이 한 번 제출되고, 이에 대해 세 번의 갈마(찬성과 반대를 묻는 것)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백사갈마’는 특히 신중한 결정이 필요할 경우에 행해졌다.
예를 들어 구족계(具足戒)를 줄 때에 ‘백사갈마’를 채택했다. 회의 진행자가 일어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곳에서 아무개는 장로(長老) 누구를 화상(스승)으로해서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승가에서 준비가 되어 있다면 승가에서는 장로 누구를 화상으로 해서 아무개에게 구족계를 주어야 합니다. 장로 누구를 화상으로 해서 아무개에게 구족계를 주는 것을 허락하는 대덕은 침묵해주십시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좋은 의견을 말해주십시오.” 여기서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안건은 부결된다. 그러나 전체 구성원이 침묵하더라도 회의 진행자는 두 번째로 같은 내용을 말한다. 그리고 전체 구성원이 침묵하더라도 회의진행자는 같은 내용을 세 번째로 말한다. 이때에도 전체 구성원이 모두 침묵하면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그러면 회의 진행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승가에서는 장로 누구를 화상으로 해서 아무개에게 구족계를 수여했습니다. 승가에서는 찬성하기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합니다.”
그리고 『사분율』에 따르면, ‘단백갈마’가 적용되는 경우는 39종류이고, ‘백이갈마’가 적용되는 경우는 57종류이며, ‘백사갈마’가 적용되는 경우는 38종류라고 한다. 이것을 모두 합하면 134종류이다. 그에 비해 다른 율장(律藏)에서는 세 가지 갈마가 적용되는 경우는 모두 101종류라고 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앞에서 승가의 운영 원리가 구성원 전원이 동의할 때 이루어지는 것, 곧 민주주의적 방식임을 살펴보았다. 이런 측면은 승가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거의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스승을 화상(和尙)이라고 말하는데, 이 화상이 되기 위해서는 계, 정, 혜의 삼학(三學)을 통달하고 제자에게 의지처가 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승려가 되고 나서, 보통의 경우에는 10년 정도 스승과 함께 생활하면서 교육을 받고, 특별히 총명한 사람이라면 5년 정도 스승과 함께 생활한다.
제자가 스승에게 행해야 하는 의무적 사항은 17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고,또 스승이 제자에게 행해야 하는 의무적 사항도 17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12가지 사항이 서로 겹친다. 이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일방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제자는 스승이 식사한 뒤에 스승에게 물을 검사 맡고서 뒤처리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같은 것을 스승도 제자에게 동일하게 행해야 한다. 또 제자는 스승이 원할 때 목욕을 시켜드린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같은 것을 스승도 제자에게 마찬가지로 행해야 한다.
그리고 표현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의미로 보면 서로 통하는 부분도 있다. 제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스승에게 양치 등을 준비해주어야 하는데, 스승도 제자가 병에 걸렸을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제자에게 양치 등을 준비해주어야 한다. 또 스승은 가르침과 질문 등으로 제자를 교화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만 제자도 스승의 말씀이 계(戒)에 어긋날 때는 스승의 말씀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사항들도 승가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거의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앞에서 소개한 내용, 곧 승가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만이 아니고 재가 신도의 일상생활에서도 서로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추구했다. 이런 점도 민주주의적 생활 방식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은 팔리어 경전인 『싱갈라경』에서 잘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남편과 아내의 도리를 말하는 점에 대해 알아본다.
남편의 도리는 아내를 존경하고, 아내를 모욕하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고, 아내에게 집안일의 권한을 위임하고, 아내에게 장신구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 가운데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한 현대 사회에서는 일부 맞지 않는 점도 있겠지만, 전반적 내용의 흐름은 아내를 존중하고 여성의 특수성을 수용하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상응해서 아내의 도리는 자신이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아랫사람들이 잘 따르게 하며, 바람피우지 않고, 남편이 재산을 모아놓은 것을 잘 지키고, 아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게으르지 않고 능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도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한 현대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내용도 있지만, 전반적 내용의 흐름은 아내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싱갈라경』에서 제시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승가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거의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라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기서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존중하는 관계라는 것은 분명히 나타난다.
이상의 내용은 주로 초기 불교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생활방식에서 민주주의적 측면이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시대를 내려오면서 이러한민주주의적 생활 방식이 어느 정도 지켜졌는지는 더 검토해야 할 사항이다. 더구나 인도 불교가 중국과 한국 등에 전파되면서부터는 동아시아 문화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민주주의적 생활 방식이 일정 부분 변형되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초기 불교의 민주주의적 생활 방식을 21세기 한국 사회와 불교 사회에 어떻게 접목하느냐 하는 점에 있다 .
이병욱 한양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 및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와 중앙승가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천태사상연구』,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불교사회사상의 이해』, 『인도철학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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