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심리학 | 분노 1

분노 1


분노의 심리학 

- 분노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심리적 과정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를 ‘분노 사회’ 또는 ‘울분 사회’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는 탐진치 삼독(三毒)의 하나인 분노가 용암처럼 흘러넘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 모두 ‘분노’가 생겨나고 표출되는 심리적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분노라는 심리적 현상

 분노(忿怒, anger)는 불쾌감을 유발한 대상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벼운 짜증에서부터 살해 충동을 느끼는 격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도로 경험될 수 있다. 개인이 당한 좌절이나 손해, 피해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때 생겨나는 부정적인 감정이 분노다. 분노는 일련의 신체적·인지적·행동적 반응을 유발하며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보복하려는 공격 충동을 촉발한다.
 분노를 경험하게 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혈압 상승, 심장 박동 증가, 체온 상승, 소화액 분비 감소 등의 다양한 신체적 변화가 일어난다.
 분노로 열을 받게 되면, 사고의 폭이 좁아지면서 자신이 입은 피해 상태와 피해를 준 사람에게 주의가 집중된다. 특히 분노가 고조된 상태에서는 자신의 피해와 상대방의 부당함에 대한 생각이 증폭되면서 일시적으로 인지적 과부하 상태가 발생해 생각의 현실성과 논리성이 저하될 수 있다. 흔히 분노 상태에서는 “현재 상황은 명백히 부당하며 잘못된 것이다”, “상대방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유발했다”, “상대방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나의 분노와 보복은 정당하고 적절하다”와 같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집착하게 된다.
 분노는 공격 행동을 준비하는 심리 상태로 여러 가지 공격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다. 분노를 유발한 대상을 향한 다양한 수준의 신체적·언어적 공격 행동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다른 사람에게 비방하거나 고립시키는 사회적 공격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그 대상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방해하거나 좌절시키는 수동 공격적 행동이나 나약한 다른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는 대리적 공격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다.

 기능적 분노와 역기능적 분노

 분노는 불쾌한 부정 정서지만 항상 독(毒)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발전한 기본 정서로 개인의 생존과 적응을 돕는 다양한 순기능을 지닌다. 우선 분노의 가장 핵심적인 순기능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에너지를 집중해 위협하는 대상에게 저항하도록 적극적인 투쟁 행동을 촉발함으로써 자기 보호와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다. 또한 분노는 불쾌감을 전달하는 일종의 의사소통 방식(화난 표정, 격앙된 목소리)으로상대방의 부정적 행동을 중단시켜 극단적인 충돌과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분노는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을 구성원들이 인식하도록 부각하고 사회적 변화와 개선을 촉진해 사회적 안정과 결속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분노가 과도하거나 부적절하게 표출되어 역기능을 초래하는 경우다. 분노는 강한 신체적 흥분 상태와 공격 행동을 유발함으로써 개인의 심신 건강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대인 관계와 직업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역기능적 분노(dysfunctional anger)의 심리적 원인과 조절 방법을 탐구해왔다.
 기능적 분노와 역기능적 분노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능적 분노는 상대방의 잘못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에서 유발되며 분노의 강도가 중간 정도를 넘지 않는다. 또한 기능적 분노는 자신이나 타인이 미래에 유사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는 문제 해결적 행동으로 표현되며 자신과 타인을 불필요하게 손상시키지 않는다.
 반면에 역기능적 분노는 빈도, 강도, 지속 기간에 있어서 과도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특히 역기능적 분노는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함으로써 부적응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처럼 분노가 조절되지 않은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역기능적 분노를 ‘통제되지 않은 공격적 분노’ 또는 ‘분노조절장애’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역기능적 분노는 과도한 불쾌감과 신체적 흥분 상태를 유발하고 분노와 관련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반추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신체적·심리적 기능을 손상시킨다.

역기능적 분노가 발생하는 심리적 과정

 역기능적 분노의 주된 특징은 다양한 상황에서 부적절한 분노를 자주 강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이처럼 분노를 잘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적 성향을 ‘특성 분노(trait anger)’라고 한다. 특성 분노가 높은 사람은 분노가 촉발되는 역치가 낮아서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분노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질투나 후회, 미움, 혐오와 같은 부정 정서를 잘 느끼는 경향이 있다. 특성 분노를 지닌 사람들은 명백하게 피해를 입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분노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빈번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분노는 타인과 상황에 의해서 유발되기보다 개인의 심리적 성향에 의해서 유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는 인지적 평가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정서가 그러하듯이 분노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대한 생각에 의해서 유발된다. “‘나’와 ‘나의 것’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분노를 일으키는데, 이러한 생각을 분노 촉발 사고(anger triggering thoughts)라고 한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시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분노 촉발 사고는 흔히 세 가지의 주제, 즉 “상대방이 나를 배려, 이해, 존중해주지 않는다”, “상대방의 행동이 규범에 어긋난 것이거나 나에게 피해를 주었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 모욕을 하거나 거부했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명한 심리 치료자인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에 따르면, 분노를 잘 느끼는 사람은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의 비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단계적으로 분노를 강하게 경험하게 된다. 첫째, 분노를 잘 느끼는 사람은 당위적 요구, 즉 타인과 세상에 대해서 비현실적인 경직된 요구(예: “모든 사람은 나를 항상 정중하게 대우해야 한다”, “세상은 항상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를 한다. 둘째, 이들은 당위적 요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을 파국화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다”라고 과장되게 평가한다. 셋째는 낮은 좌절 감내력(lowfrustration tolerance)으로 당위적 요구가 좌절된 상황을 “이런 상황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는 타인에 대한 질책(damming others)으로 당위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은 사악한 존재이며 비난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의미한다.
 이처럼 분노를 잘 느끼는 사람들은 타인과 세상에 대해서 비현실적인 기대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기대가 좌절되는 상황을 과장되게 받아들여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자존감이 낮아서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사람, 신경과민성이 높아서 사소한 좌절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과거의 심리적 상처와 해소되지 않은 분노를 지닌 사람, 타인에 대한 불신감을 지닌 사람, 특권 의식이 있어서 타인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분노를 빈번하게 경험할 수 있다.

역기능적 분노가 표출되는 심리적 과정

 분노는 대인 관계 상황에서 경험되는 사회적 정서로서 ‘경험’과 ‘표현’이라는 두 단계의 심리적 과정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된다. 분노를 경험했다고 해서 항상 공격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는 자신과 상대방 중 누가 더 힘이 센지, 그리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은 무엇인지 등을 고려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분노가 표현되는 방식은 상대방을 째려보기, 상대방과 말하지 않기, 언어적으로 따지며 공격하기, 신체적으로 공격하기, 다른 사람에게 상대방을 비난하며 왕따 시키기,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저주하기, 상대방이 추구하는 일을 수동-공격적으로방해하기, 다른 대상에게 화풀이하기, 상대방과 대화하며 사과 받아내기, 상대방과 소통하며 문제 해결하기, 상대방을 설득해 문제 행동 교정하기, 분노를 내려놓고 용서하기와 같이 다양하다.
 심리학자들은 분노의 표현 방식을 크게 세 가지 유형, 즉 분노 표출, 분노 억제, 분노 통제로 구분한다. 분노 표출(anger-out)은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화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 욕설을 내뱉는 것, 말다툼이나 과격한 공격 행동을 하는 것이다. 분노 억제(anger-in)는 분노를 느끼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속으로 참는 것으로 말을 하지 않거나 사람을 피하면서 울분을 삼키며 속으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경우다. 분노 통제(anger-control)는 분노를 인식하면서 진정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냉정을 유지하고 상대방과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분노 표출이나 분노 억제가 강한 사람들은 심장혈관계나 소화계 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신체 질환과 더불어 여러 가지 정신 장애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노 표출은 대인 관계 갈등이나 범죄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분노 억제는 우울증이나 자살 위험성과 높은 연관성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분노 표출과 분노 억제는 역기능적인 표현 방식으로 여겨지는 반면, 분노 통제는 기능적인 표현 방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분노,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분노, 특히 역기능적 분노는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독(毒)과 같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분노를 경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노를 조절한 형태로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그 마음을 지혜롭게 표현하는 정신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에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정신적인 힘이 고갈되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역기능적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
 역기능적 분노를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지 행동 치료는 세 가지 요소, 즉 인지 재구성, 이완 훈련, 대인 기술 훈련으로 구성된다. 인지 재구성(cognitiverestructuring)은 역기능적 분노를 유발하는 비현실적 신념과 인지적 왜곡을 교정해 좀 더 현실적인 기대를 지니고 일상생활에 임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완 훈련(relaxationtraining)은 신체적 긴장과 정서적 흥분의 이완을 통해서 격앙된 분노 감정을 완화하고 극단적인 분노 표출을 조절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대인 기술 훈련(interpersonal skilltraining)은 분노를 자주 경험하는 대인 관계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고 분노를 조절된 형태로 표현하는 사회적 기술을 습득시키는 것이다. 대인 관계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바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기술과 더불어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언어적, 행동적 표현 방법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 대인 기술 훈련의 핵심이다.
 분노는 우리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위험한 감정이다. 이러한 분노를 얼마나 잘 조절하며 지혜롭게 표현하느냐는 한 사람의 품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분노를 덜 느끼기 위해서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비현실적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도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면, 불쾌한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요청하면서 분노를 지혜롭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분노 감정에 휩싸여 공격 충동을 느낄 때가 바로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순간이다. 분노하는 마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분노 감정은 현저하게 완화될 수 있다.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문구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살아가려면, 어리석음으로 물든 욕망과 더불어 분노의 마음을 잘 지켜보는 수심(守心)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호주 퀸즐랜드대에서 박사 학위(임상심리학 전공)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 이론』, 『현대 이상심리학』, 『긍정심리학: 행복의 과학적 탐구』 , 『인간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 『인간관계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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