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진화와 불교 | 불교와 생명과학 1

불교와 생명과학 1


생명의 진화와 불교


이일하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현대 천체물리학은 우주가 대략 137억 년 전 하나의 특이점(singularity=cosmic egg)이 대폭발(빅뱅)을 하면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 원소들이 생성되었고 이들이 이합집산하는 가운데 각종 은하와 항성과 태양계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주의 다양한 공간에서 물질이 정교하게 모여 결합하는 우연이 반복되면서 복제성을 가진 분자가 출현했고 이들이 복제의 욕망, 즉 갈애(Tanhá)를 가지면서 생명의 윤회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윤회의 시작과 불멸의 복제자

40억 년 전 지구가 형성되던 초기, 지구 행성의 여기저기에서는 복제 분자들의 맹렬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복제 분자는 따뜻한 작은 연못에서도 형성되었을 것이고, 해저 열수공 주변의 따뜻한 암반층 사이에서도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최초의 성공적 복제 분자는 RNA였을 것이라 추정(RNA World 가설이라한다)되며, 이들이 다른 생체 분자들과 협업을 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서서히 생명성을 가진 불멸의 복제자로 진화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후 복제자의 출현은 필연적으로 세상에 출현했다 사라지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끊임없는 윤회의 수레바퀴로 귀결된다. 지금 내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2,500년 전 부처의 몸을 흘러갔던 그 원소들이기도 하고, 1,500년 전 원효대사의 몸을 흘러갔던 그 원소들이기도 하다. 같은 물질들이 끊임없이 윤회하면서 한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로 흘러가고 이와 함께 하나의 생각이 다른 사상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흘러가는 것이다. 이 원소들이 어떻게 형태를 바꿔가면서 점차 다양한 생명체의 모습을 띠게되는지 그 원리를 살펴보자.


진화를 추동하는 자연선택이라는 끌

진화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연관 검색어 1위인 인물이 찰스 다윈이다. 이는 다윈이 생명의 진화를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전에도 많은 자연철학자들이 생명의 진화를 주장해왔다. 용불용설이라는 이론으로 우리 교과서에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라마르크도 진화론을 주장한 지식인이며,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도 진화론을 주장한 자연철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대부로 인식되는 이유는 다윈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생명의 진화를 하나의 가설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했던 ‘자연선택설’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생명이 진화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납득이 된다. 『종의 기원』은 무수히 많은 자연선택의 증거들을 기술해놓았으며,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의 진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자연선택설이라는 매우 단순한 이론으로 우리는 지구상에 명멸해왔던 수천 수억의 생명체의 변화무쌍한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
자연선택설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와 같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에 비해 턱없이 많은 자손을 낳게 된다. 이 자손들은 타고난 유전적 변이에 의해 다양한 표현형을 보인다. 따라서 제한된 자연 자원을 보다 더 잘 이용해 더 많은 자손을 낳는 개체들이 자연에 의해 선택된다. 이런 과정이 긴 시간 진행되면 유전적 변이가 축적되면서 결국 새로운 생물종이 출현하게 된다. 이러한 자연선택의 힘은 때론 무자비하게 때론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생물종의 형태를 변화시키게 된다. 말하자면 지상에 현존하는 수백만 종의 생물은  자연선택이라는 끌로 수십억 년간 깎고 다듬어져 마침내 지구상에 등장한 진화의 최후 승리자들이다. 인간은 그 최정점에 서 있는 생물이다.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원리에 따른 자연선택

자연선택 이론은 『아함경』에서 설명하는 불교 교리인 사성제(四聖諦), 즉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원리와 잘 맞아떨어진다. 고집멸도의 원리로 중생대 공룡의 멸종과 백악기 포유동물의 번성이라는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공룡은 대략 2억5,0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의 기간 동안 지구 생태계의 최극성자로 군림하다가 혜성 충돌과 함께 급격하게 나빠진 기후로 인해 멸종한 거대 동물이다. 공룡이 지구 생태계를 지배했던 중생대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2,000ppm으로 지금보다 5배 정도 높았고 평균 온도 또한 지금보다 10℃가량 더 높았다. 20세기 초반 330ppm이었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21세기 접어들면서 410ppm으로 증가한 것만으로도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는 현 상황과 비교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하지만 중생대의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는 높은 식물 생산성으로 귀결되었고, 높은 온도는 생물의 대사량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에 중생대 기후에 적응한 거대 공룡이 생존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6,500만 년 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칙술루브 분화구라는 거대한 흔적을 남긴 혜성 충돌은 지구의 기후를 급격히 악화시켜 기온을 뚝 떨어뜨렸고, 더구나 짙은 흙먼지 구름이 드리워진 지구 대기 때문에 식물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져 공룡이생존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흙먼지 구름이 드리워진 지구 대기 때문에 식물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져 공룡이 생존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공룡에게는 이러한 상황 변화가 고성제(苦聖諦)가 된다. 일상적인 굶주림과 큰 체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겪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인 환경 변화, 즉 식물 생산성의 저하와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 어려운 낮은 대사율이 고집성제(苦集聖諦)가 된다. 이후 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편으로 작은 체구와 무성한 털을 가진 포유류가 등장하게 되니 이것이 고집멸성제(苦集滅聖諦)이며, 이들 포유류가 번성하는 생물의 진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 고집멸도성제(苦集滅道聖諦)이다. 이와 같이 이 지구상에 일어났던 모든 진화적 변화는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사성제(四聖諦)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복제의 갈망과 업의 시작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동물이건 식물이건 심지어 세균조차 가릴 것 없이 모두 최초의 복제자 하나를 공통의 조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 지구 생명체가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모든 생물종이 정확히 20종으로 구성된 아미노산으로 단백질을 만들며, 3염기로 구성된 유전 부호의 의미가모든 생물체에서 동일하다.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D형의 탄수화물과 L형의 아미노산 형태 또한 모든 생명체가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다는 유력한 증거다.
화석학적 기록에 따르면 대략 40억 년 전쯤 지구 생명체의 공통 조상인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가 출현했다고 짐작된다. 이 LUCA는 주어진 환경에서 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생산하는 복제의 갈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본격적으로 업이 윤회하는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했을 것이라 쉬 짐작할 수 있다. 더 많은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갈망은 필연적으로 무자비한 자연선택의 끌이 작동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 개체와 개체군, 나아가 이들을 둘러싼 환경까지서로 영향을 미치는 업을 쌓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 개체와 개체군, 환경 간의 상호작용은 윤회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업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나의 엉성한 세포로 시작했을 LUCA는 세포 내 역할 분담이라는 기막힌 방법을 찾아내었고, 이로부터 진핵세포라는 새로운 형태의 생물체가 번성하게 된다.대략 20억 년 전 쯤에는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유기 분자를 합성하는 광합성 세균이 등장했고, 이들은 산소가 없던 지구 대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게 된다. 이후 지구 생명체의 에너지 효율은 산소 덕분에 비약적으로 증가해 생명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한 생명체가 획득한 자손의 번성에 대한 갈망이라는 업이 다른 생물체의 번성에 영향을 미치고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사례가 광합성 세균의 진화다. 이후 단세포 세균은 이웃한 세포와의 협력이 자손의 번성에 더 유익했던 경험들을 축적하면서 다세포 생물의 진화로 나아갔을 것이다.
이 과정에 협력의 배신자들을 처벌하는 기제 또한 획득하게 되면서 보다 세련된 형태의 다세포 생물이 출현했을 것이다. 이 시기를 화석학적 기록은 대략 6억 년 전쯤이라 알려준다. 이후 5억 년 전에 동식물이 출현하면서 빠른 속도의 생물 진화가 일어난 것이 지구 생태계에서 진행된 윤회 과정이라 할 것이다. 이 수레바퀴의 끝자락에 윤회와 업이라는 개념을 상상하게 된 인간이 출현해 생로병사의 고통과 업으로부터 해탈해 열반의 경지에 이르고자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맺는말

진화생물학 분야의 거두인 도브잔스키 교수는 “진화라는 개념을 통하지 않고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오랫동안 발생학을 연구해온 생물학자로서 이보다 더 생물학의 핵심을 찌르는 말을 생각하기 어렵다. 생물학을 연구하다 보면 매 순간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을 변화무쌍하게 윤회하는 존재의 흐름을 인지하게 되고, 이 흐름의 와중에 생물체의 형태를 정교하게 다듬는 카르마(業)의 작용을 깨닫게 된다. 이 순간 생물 철학은 불교 철학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이일하 서울대학교 식물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적 생물학 연구 기관인 소크연구소에서 3년 동안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으며, 미국 예일대와 포항공대 방문교수, 서울대 기초교육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30년간 꽃을 공부해온 과학자로, 1993년 개화 유전자 루미니디펜던스를 찾아냈고, 개화 유도 분야의 파이오니어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이 있고, 『식물생리학』, 『유전학』, 『생명과학』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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