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양암 | 스토리텔링 사찰 속으로

 스토리텔링 사찰 속으로


품격 서린 창신동 안양암


친일 그림자와 영험한 마애관음상


손신영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창신동. 우후죽순처럼 빌라와 낡은 봉제 공장 건물이 빼곡하지만, 구한말부터일제 강점기에는 세계적 아티스트 백남준이 살던 좋은 집과 안양암처럼 잘 지은 절집이 자리한 괜찮은 동네였다.
 안양암의 역사는 짧지만, 불교미술 양상은 만만치 않다. 아니 만만치 않은 게 아니라 품위 있는 명작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불전과 불화·불상 대부분은 창건주 이창진(성월 대사)의 아들 이태준에 의해 조성되었다.
 이태준은 대표적인 불교계 친일파로 법명은 양학이다. 1916년 아버지로부터절을 물려받아  주지로 취임한 이후 이렇다 할 행적을 보이지 않다가 1938년부터1941년까지 집중적으로 친일한 바가 알려져 있다. 주 활동 무대는 안양암이다. 일본군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시국 강연을 개최하는 한편 창씨개명 사무소도 설치했다.




  신행 단체인 삼화부인회를 동원해 일본군을 환송하고, 금강산 순례기도와 모금 행사를 하기도 했다.
 안양암 대문 왼쪽 바위 위에 세워진 3개의 비석 중 2개에 ‘삼화부인회’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 1941년 삼화부인회 10주년 기념비에는 특급 친일파 배정자 이름이 눈에 띈다. “고문 배정자” 1870년생인 배정자는 1941년, 일흔이 넘은 할머니였음에도 조선의 여인들을 남태평양의 일본군 위안부로 보내는 일에 앞장섰다.
 친일파 이태준은 특급 친일파 배정자와 가까이 지냈던 것 같다. 1931년 사적비에 등장하는 삼화부인회 관계자 명단에 없던 배정자가 10년 뒤 등장한 것은 1941년의 위안부 송출에 앞장선 결과로 보인다.
 배정자의 본명은 배분남. 아버지는 하급 관리인 아전(衙前)이었는데, 흥선대원군 실각 후 졸개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와 떠돌이로 지나다가 관기(官妓)로 팔렸지만 탈출해 통도사에서 3년간 스님으로 지냈다.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환속해, 아버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때마침 일본에 머물던 김옥균의 소개로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스파이 교육을받았다. 용모가 아름다워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첩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귀국 후에는 궁궐을 드나들며 스파이 활동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하자 뒷배를 잃어 활동을 중단했다가, 일본 관리의 주선으로 중국으로 넘어가서 독립운동가들 정보를 수집해 넘기는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다.
 


관음전 정측면

서울 종로구 창신동 안양암 전경

안양암에 이름을 남긴 이 두 친일파 외에, 안양암의 불전과 불화, 불상도 이목을 집중케 한다. 시기적으로 보면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것이어서 전통 시대 미술에 비해 관심도가 덜하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당대의 대가들이 만든 수작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관음전이다. 마애관음상을 예불하는 곳인데, 바위에 기대어 지붕과 벽면을 세운 보기 드문 모습이다. 벽면은 붉은색과 검은색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정면에서는 지붕 아래부터 문 위까지, 불단처럼 구획된 단으로 구성하고 그 아래를 낙양각으로 장엄했다. 이런 모습은 역시 마애관음상 보호각인 홍은동 보도각과 닮았다.
 마애관음상에는 여러 영험한 일화가 전해지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석수와 관련한 것이다. 처음 조성 당시 유명한 석수가 조각했는데 어느 날, 다듬던 돌이 낭심에 튀어 크게 다쳤다. 석수는 “몸가짐을 정결하게 하지 않은 벌을 받은 것”이라 한탄하며 죽었다. 이후 공사를 재개하려고 석수를 모집했지만 죽은 석수 소문이 나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참 지난 후, 죽은 석수 못지않은 유명 석수가 찾아와, “공사비 안 받고 기도하며 일하겠다”고 했다. 이 두 번째 석수는 마애불좌상을 완성한 후에 자신이 기도한 데로, 부유한 여인과 결혼해 해로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여러 영험이 전해지는데, 기도하는 이마다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구전이 귀에 쏙 박힌다.
 믿음이 창성하는 동네, 창신동의 안양암이 새삼스럽다.


손신영 대학에서 건축,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자 제주대학교 외래교수이다. 한국 전통 건축을 근간으로 불교미술을 아우르는 통섭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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