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자살 이해

자살 2

불교의 자살 이해

백도수

능인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죽음과 자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은 두려워할 만하다. 때문에 죽음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죽음이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죽음은 단순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까이는 가족과 친지, 멀리는 이웃과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죽음은 의학적으로 생명의 중지, 심폐가 정지함을 말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부정과 고립,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의 과정을 겪는다.1) 특히 임종 시에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고통과 외로움, 미지의 세계, 벌, 개인적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2) 『맛지마니까야』(MNⅠ, 49)에서 불교에서의 죽음은 신체적 기능의 중지를 의미하는 신체의 사라짐과 목숨의 기능[命根]의 파괴, 호흡의 중지로 파악할 수 있다.

『유가사지론』(『대정장』 30, 281중)에서는 살아 있는 동안 착한 행위를 한 사람은 발에서 죽어가 심장에서 의식이,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은 머리에서 죽어가 심장에서 의식이 끝난다고 한다. 그래서 죽을 때 발부터 죽어가면 정신이 안정되고, 그 반대면 불안정하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개한 『2020 자살 예방 백서』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3,670명이며, 자살률이 OECD 중 1위이고, 자살 시도는 한 해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자살 예방과 자살 극복에 전 사회적 노력과 각 개인의 적극적인 역할과 논의가 필요하다.

『브리태니커』 14권의 ‘자살’에 따르면, 자살은 자발적으로나 의도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로 정의하며 치명적인 자살과 비치명적인 자살[자살 미수]로 구분하고 있다.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 심리학적 이론가는 개인적인 성향과 인지적 요소를 강조한다. 그러나 사회학적 이론가는 개인에 의한 사회적, 문화적인 압박을 강조하고 있다.

형법 제252조에 따르면,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해 자살하게 한 자는 촉탁이나 승허에 의한 살인자의 죄 형량과 같다3)고 해서 자살 교사 방조죄를 경고하고 있다.

불교에서의 자살은 자의든 타의든 허락되지 않는다. 『사분율』(『대정장』 22, 576중)에 따르면, 비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칼을 남에게 주거나, 죽음의 즐거움을 찬탄하고 죽음을 권해 자살하게 하면 절에서 추방된다. 그러므로 자살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불교에서의 자살 사례

불교에서 자살의 최초 발생은 『율장』(VinⅢ. 68) 살인 바라이죄에서 나타나는데 몸을 부정한 것이고, 혐오스럽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비구 250명을 교살하거나 자살하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상응부』(SNⅢ. 119~124)에는 와깔리 장로가 중병에 걸려 스스로 칼로 찔러 죽었다고 전한다. 이뿐만 아니라 『율장』(VinⅢ. 82)에서는 한 비구가 세상에 대한 혐오로 영취산에 올라 투신자살을 시도했는데 떨어질 때 아래 있던 대나무 작업자가 대신 죽었다고 한다. 자살 미수로써 타인을 죽게 하는 일례다. 또한 『장로니게주석』(Therī-a.Ⅰ. 77)에 시하 비구니가 7년간 잘못된 생각으로 병이 들어 삶의 무의미함에 목매는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다행히 밧줄이 풀려 미수에 그쳤지만 비구니의 자살 시도 사례다. 또한 재가자로서의 자살 시도는 『율장』(VinⅢ. 13) 음행 바라이죄에서 볼 수 있는데, 수딘나가 출가하기 위해 7일간 굶주려 죽기를 시도했다. 다행히 친구가 부모를 설득해 출가할 수 있어 미수에 그쳤다고 한다. 대승 경전의 『금광명경』에, 과거에 마하살타 왕자는 굶주린 호랑이를 살리려고 자기 육신을 보시하기로 결심하고 동물의 먹이로 주었다고 한다. 또한 『본생경』(Jā.Ⅲ. 51~56)에 따르면, 전생에 보살은 토끼로 태어나 수달, 자칼, 원숭이와 더불어 계를 지키면서 포살을 하며 살았는데 제석에게 가르침의 게송을 듣고 자신의 몸을 던져 불타는 곳으로 뛰어들었다는 동물 자살의 우화도 있다. 그 밖에 물론 『고승전』 등에 보이는 승려들의 소신공양을 올리는 것도 자살의 일례로 볼 수 있다.

연기적 현상으로서의 자살

불교에서의 자살 원인은 삶의 무의미나 잘못된 인식이나 질병의 고통, 종교적 승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나와 세계는 인연 조건에 좌우된다. 존재는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며 무상하기에 괴롭다. 붓다는 무상하기에 태어남도 죽음도 고라고 선언했다. 불교에서는 생사는 축복받을 일로 보지 않는다. 태어남이 축복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얻어지고, 죽음이 불행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늙고 병들고 죽어 시체가 되어 묘지에 묻히는 존재다. 지금 한국에서는 묘지 대신에 장례지도사의 도움을 받아 수의를 입은 채 입관되어 화장터에서 태워지며 분골만 남게 된다. 그 분골에서는 생전의 이름도, 형체도, 부와 명예도 모두 다 덧없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와 모든 행에는 이유, 원인이 있다고 본다. 또한 고통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생도 사도 고통이라고 했기에 그 원인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자의든 타의든 선택한 자살도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삶에서 과도한 욕구나 기대, 삶의 절망과 고통은 사실 그대로를 보지 못해 생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삶을 살면 삶이 불만족스럽고 불만족스러운 삶을 끝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그릇된 신념이 생긴다. 그러한 신념이 커질수록 자살할 위험은 커진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바라보는 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붓다는 만족하면 행복이고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이라고 했다. 소욕지족하고 조화롭게 사는 것은 자살을 피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태도다.

자살의 과보

삶을 중도에 포기하는 자살의 과보는 지옥이나 좋지 않은 내생과 연결된다고 한다. 승가 규율에서도 자살은 타살처럼 살인 바라이죄에서 취급하며, 신자의 규율에서도 자살은 죽어서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나게 되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의례 관련 경전 중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288)에서도 하단의 영가를 청해 맞이하는 의식 가운데 원통함을 품고 있는 가영(함원영 含寃詠)으로 “슬픔을 띠고 한 머금어 고개를 숙이고 횡액으로 죽은 몸은 누구를 원망하리. 스스로 자살한 몸 원한 품은 사자가 되고 강과 우물에 빠져 죽으니 업이 정해졌네”라고 해 자살하면 스스로 원한을 품은 영가가 된다고 한다. 삶의 고통을 체험하고 배우는 과정으로 여기는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자살은 선한 공덕을 짓고 깨달음에 이르는 자신의 소중한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죽으면 다시 업에 따라 윤회하게 된다.

자살 극복으로서의 불교 수행

자살은 잘못된 견해나 행위로 생기는 것이기에 바른 견해와 행위로 자살을 막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삶의 시간을 다 채우지 않고 중지하는 자살을 멈추게 하는 최상의 방법은 바로 문사수(聞思修)의 수행이다. 삶의 희망, 치유, 행복에 대해 많이 듣고 생각하고 체험해야 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자살로서의 죽음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받는다. 한편 자살로서의 죽음은 고통이지만 명상이나 배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성제에서 고통을 알아야 할 것으로 보기에 자살로서의 죽음 역시 고통이라고 알아야 한다. 불교는 역시 고통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고통스럽다’가 아니라 ‘나도 고통스럽다’라고. 고통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내 고통이 남보다 더 크다고 해서는 안 된다. 고통은 누구나 다 맞닿고 있기에 남이 어떻게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가는지도 바르게 보아야 한다. 고통에 얽매이지 말고 이것이 고통이구나 하고 흘려보내야 한다. 불교에서 인생 고통은 일회적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연속적이다. 고통의 강도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계속해서 고통 체험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고통을 경험하고 연습하고 학습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인생을 자살로 끝내서는 안 된다. 살면서 고통을 경험해보는 것은 이번 생만이 아니라 계속적인 생에서 경험과 배움의 토대가 된다. 자살을 피하고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은 고통에 대한 인욕의 근육을 키워 고통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자살을 피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고, 내가 자살하면 가까운 사랑하는 이들이 고통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하며, 자살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종결점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죽음에 대한 고통과 모든 생명에 대해 연민하는 마음을 기르는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 붓다의 가르침을 놓지 않고 생활 속에서 명상과 수행, 기도를 벗해야 한다. 분노와 어리석음을 줄이는 훈련을 쌓아가야 하며, 가족과 사회적 지지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살 의도를 지닌 사람들에게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우리는 자살해도 되는 줄만 안다. 우리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가슴 저미는 돌봄을 무시하고 죽음을 택해도 되는 줄만 안다. 부모, 자식, 형제, 연인, 벗 등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먼저 가도 되는 줄로 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랑하는 존재의 눈물, 슬픔, 고통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는 당연히 “얘야 더 살아봐야 한다고, 인생을 살다 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진정한 네 삶의 가치를 찾는 날이 있을 것이니 좀 더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것이다. 나도 몸을 지니고 있다. 나도 몸을 보존할 수 있다. 나도 자살 의도를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인생에서 나도 한 가지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지금 이 시간 심장과 더불어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참고

1) 김진욱 옮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죽음의 순간』(서울: 자유문학사, 2000), 장휘숙, 『가족심리학』(서울: 박영사, 2001), 317~318쪽

2) 이덕진, 황유성 편, 『장례학개론』(창원, 창원문성대학, 2006), 11~16쪽 참조

3) 趙相元創始, 『法典』(서울: 현암사, 2001), 2119쪽

백도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인도학 석사 학위를,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불교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능인대학원대 불교학과 교수이면서 각원사, 조계사 등 불교대학에서 강의하고 있고, MBSR 명상전문지도사, 장례지도사,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초급 산스크리트 강독』, 『중급 범어 불전강독』, 『맛지마니까야 Ⅰ』 등을 비롯해 『위대한 비구』, 『위대한 비구니』 등의 번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