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
사라지지 않고 늘 있는 이것
한 할머니가 하루는 투자대동 선사를 찾아와 질문한다.
'키우던 소를 잃어버렸습니다. 부디 스님께서 이 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주십시오.'
그러자 투자대동 스님이 노파를 불렀다.
노파가 '예' 하고 대답했다.
투자가 말하길, '소가 아직 이렇게 있구나!'
노파는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선에서 소는 불성, 본래면목, 자성, 마음, 법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이처럼 시골의 노파, 할머니들이 도를 깨쳐서 보임하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 절에도 물론 이런 노파, 할머니 보살님들이 더러 계셔서, 종종 법담을 나눌 기회가 있으니, 참으로 이런 노보살님들을 뵈면 기쁘기 그지없다.
십우도(十牛圖)에서는 견성(見性)의 과정을 소를 키우는 과정을 비유하여 보여주고 있다. 소를 찾는 심우(尋牛), 소 발자국을 발견하는 견적(見跡), 소를 발견하는 견우(見牛), 소를 잡는 득우(得牛), 소를 키우는 목우(牧牛),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잊고 사람만 존재하는 망우존인(忘牛存人), 사람도 소도 모두 잊는 인우구망(人牛俱妄), 근본으로 돌아가는 반본환원(返本還源), 마을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는 입전수수(入廛垂手)가 그것이다.
소를 발견하고 소를 잡은 뒤에 소를 키우는 것을 두고 보임(保任)이라고 부른다. 지눌 스님을 목우자(牧牛子)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보임, 목우할 때는 종종 소를 잡았다 놓쳤다 하는 것 같은 시기를 반복하며 점차 소를 키워가게 된다. 자기 성품이라는 것은 보려고 하고, 알려고 하고, 애써서 분명히 하려고 하거나, 머리로 정리하려고 하면, 곧바로 어긋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랜 습관 때문에 머리를 굴리고, 육근(六根)으로 육경(六境)이라는 대상을 보는 방식으로 이 법, 자성, 불성을 다시금 확실히 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의식으로 잡으려고 하면 이 법은 잡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오랜 업습의 문제가 얽혀서, 불성을 잡았다가 놓쳤다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업습(業習) 조복의 시기를 보낸다.
이 노파가 그랬다. 소를 놓친 것 같아서 투자스님을 찾아가 점검을 받는 대목이다.
'소를 잃어버렸습니다.'
'노파!'
'예'
‘바로 거기 있네.’
예! 할 때 바로 거기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소를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곧 생생한 것이지, 다른 생생함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한번은 한 노거사님이 법회 후에 질문하신다. 법문을 듣다가 지난 달에 이것을 분명히 확인했는데, 며칠 후에 사라져 버렸다며 얼굴빛이 어두웠다.
‘거사님!’
‘예’
‘여기 있네요’
(상을 치며) 톡톡! 이것도 사라졌나요?
갑자기 낯빛이 환해지며, ‘아하! 이건 사라질 수 없죠.’ 하며 밝아지셨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것으로 또 확인되네!
이것이라고 하면 어긋난다
벽암록의 79칙 '투자불성'은 다음과 같다.
어떤 스님이 투자대동 선사에게 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부처님의 목소리라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다.'
'그럼 똥 누는 소리, 그릇에 물 따르는 소리도 부처님 목소리이겠군요?' 하고 다시 묻자, 투자스님은 바로 때렸다.
스님이 다시 묻기를
'조잡한 말도 정중한 말도 모두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맞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다.'
'그럼 스님을 당나귀라고 불러도 되겠군요.'하자 타자 화상이 또 때렸다.
이 세상 모든 소리가 곧 부처님의 소리다. 그것이 어떤 소리가 되었든, 모든 소리에서 바로 부처, 불성, 자성이 확인된다. 그 소리가 이것이고, 그 소리를 듣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 '이 소리가 부처겠구나' 하면 곧바로 어긋난다. '그럼 똥 누는 소리도 부처님의 목소리이겠군요'라고 하면, 바로 생각, 분별을 따라 간 것이기 때문이다. 똥 누는 소리가 바로 자성이지만, '똥 누는 소리가 부처이겠군'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별일 뿐이다.
조잡한 말이든 성스러운 말이든 전부 이 첫 번째 자리의 진실 즉 제일의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제일의제는 곧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지지 않은 첫 번째의 진실, 즉 분별에 떨어지지 않은 분별 이전의 진실을 말한다. 이것을 선에서는 제일구(第一句)라고 한다.
조잡한 말도 분별없이 들으면 제일구요, 제일의제이며, 부처의 말이 되지만, 제 아무리 성스러운 말이라도 분별해서 들으면 곧바로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지고 만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창 밖에서 까치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이 바로 제일구(第一句)다. 여기에서 곧바로 부처가 확인된다. 이것이 그대로일 뿐, 따로 다른 진리는 없다.
생각을 일으켰다 하면, 소리의 뜻을 따라가고, 모양을 따라가면 곧바로 둘로 나뉘고 만다. 불이법(不二法), 딱 붙어 있다. 곧장 바로 이것이다. 곧장, 바로 그 마음, 지금 이것이 부처요 자성일 뿐, 다른 것은 없다.
무슨 허다한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곧장 바로 이것일 뿐인데.
법상 스님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해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탁소리 지도법사로서 서울 목탁소리휴 주지, 상주 대원정사 주지로 있다.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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