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사찰 숲길 걷기명상|서울 경국사 쌍보리수길
일주문을 지나 절에 도착한
첫 길목에는 수백 년 묵은
보리수가 나그네를 반긴다.
‘서울 경국사 쌍보리수길’이라
이름 붙인 연유도 여기에 있다.
예전 주지스님은 이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로 108염주를 만들어
신도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극락보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기원해 본다.
‘항상 내 이웃을 부처님처럼 대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자.
내 주변에서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자’
서울 도심 숲속에 자리한 기억이 머무는 절, 경국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 계곡에 오르다가 좌측 다리를 건너면 아늑한 숲속에 경국사가 있다. 고려 충숙왕 12년(1325)에 자정(慈淨)율사가 창건해 청암사(靑巖寺)라 이름 지었다. 사찰이 삼각산(북한산) 청봉(靑峰)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서다. 조선시대에 들어 명종 5년(1549)에 문정왕후가 국가에 경사가 끊이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慶國寺)’로 개명했다. 선조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머물며 승병을 지휘하기도 한 유명사찰이다. 근래에는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동국대 교수이자 불교학의 석학이었던 인환 스님도 이곳에 주석하다 원적에 든 유서깊은 사찰이다.
서울 도심에 이런 그윽한 사찰이 있는가 싶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커다란 돌이 바닥에 놓여 있다. 큼직한 돌을 포개어 도로를 만들어 놓은 예는 드문 일이다. 자동차도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며 지나간다. 극락교를 건너면 여의주를 문 용이 석조기둥을 휘감고 있는 일주문이 사찰의 위엄을 더해 준다. 그 뒤로 길이 쭉 뻗어 있다.
입구에 들면서 긴 호흡을 들이 쉬고(아나), 내 쉬고(아빠나), 잠시 멈춤(사띠)을 해본다. 무더위로 불쾌지수가 높았던 탓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숲향기가 슬쩍 코끝을 스친다. 8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길섶에는 누리장 꽃이 한창이다. 열매를 맺으면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땀을 훔치며 호젓한 숲길을 오른다. 전날 내린 비로 습도가 높다. 마치 어항에 들어있는 붕어마냥 옷깃을 짜면 물이 나올 것 같다. 인간의 마음을 비웃듯이 숲 언저리 죽은 상수리나무에서는 야생 버섯이 솟아올라 있다. 아무리 날씨가 무더워도 자연은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다.
| 쌍보리수길의 수백 년 묵은 보리수 |
수백 년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내려놓는 번뇌
경국사는 절대 고독을 느끼는 자들만이 걸어야 하는 길 같다. 며칠 전 새벽에 왔을 때는 안개가 경내에 자욱하게 깔려 신비함을 더해 주었다. 경국사는 도심 사찰이지만 갖출 것은 거의 다 있다. 길모퉁이에 약수터가 있고, 시대를 풍미하다가 간 고승의 부도가 안치된 부도전도 있다.
사찰의 중심 공간인 극락보전에 이르기까지 돌과 함께 어우러진 단단한 숲길이 조성돼 있다. 가는 길마다 가볍게 볼 수 없는 단단한 사찰 모습이다.
‘오늘 가져온 온갖 번뇌를 돌 탑에 두고 가자’고 하는 듯 약수터 돌탑이 제법 쌓여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템플스테이 방문객이 절에서 내려온다. 템플스테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알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 절에 도착한 첫 길목에는 수백 년 묵은 보리수가 나그네를 반긴다. ‘서울 경국사 쌍보리수길’이라 이름 붙인 연유도 여기에 있다. 해를 걸어 열매 수확량이 다른 보리수다. 예전 주지 스님은 이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로 108염주를 만들어 신도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주 법당인 극락보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기원해 본다. ‘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기를. 나로 인해 번뇌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나로 인해 내 이웃이 더욱 즐거워지기를. 나로 인해 가족이 행복해지기를...”
또 기원해 본다. ‘항상 내 이웃을 부처님처럼 대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보살님처럼 대하고 사랑하자. 내 주변에서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자.’
근래 몇 달 전 갑자기 찾아온 ‘불안’이라는 손님을 떠나보내기 위한 기도이기도 했다. 경국사는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요새 같은 안온함이 드는 절이다.
경국사에서 지관 스님의 기억과 무욕의 삶을 다시 마주하다
경국사와는 인연이 깊다. 지관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 담당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경국사 주지스님과는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인연이 있다. 지금은 경국사 건너편 암자를 가꾸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었던 불교신문사 주간으로도 활동했다. 그때를 생각하며 종무소를 흘깃 돌아보니 당시의 모습이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지난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된다. 좋은 기억은 좋은 대로 나쁜 기억은 나쁜 대로 뇌리에 쌓여 시간속으로 흐른다.
서울 도심이지만 북한산 청봉이 흘러내리는 정맥에 위치해 풍수적으로 사뭇 다른 느낌이다. 더구나 개울을 하나 사이에 두고 세간과 출세간을 넘나드는 것같이 온갖 나무가 어우러진 숲이다. 그래서 경국사 들어오는 다리를 ‘극락교’라고 했나 보다.
며칠 전 비온 뒤라서인지 죽은 나무에 이름 모를 버섯이 올라와 자라고 있다. 본당인 극락보전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해를 곱게 받아들이고 있다. 처서가 지난 늦여름에 다시 방문한 경국사는 한산하고 조용하다.
부처님께 인사하고 법당 안을 살펴보며 얼마나 장엄하게 부처님을 모셔놓았는지를 본다. 그리고 후불벽에 부조 형식으로 장엄돼 있는 국가 보물 목각탱화를 유심히 살펴본다. 정식 명칭은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慶國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이다. 이 목각설법상은 조선시대의 목각탱으로 중앙에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모두 13분의 불상과 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에는 아미타여래가 커다란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여러 층으로 된 대좌(臺座) 위에 좌정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이 붙어있으며, 넓적한 얼굴은 형식화가 정착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힘껏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여름 해가 뜨거운 빛을 발산하고 있다. 영산전 대숲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산새들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유숙하며 노는 소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나도 저 새들처럼 이 땅을 무욕의 세상으로 알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갈 수 있을까.
경내를 둘러보다가 환희당에 이르렀는데 어디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온다. 옆을 둘러보니 절에서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와 물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고양이와 스님들이 한 공간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유독 사찰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들이 무리를 이뤄 살아가는 모습이 많다. 사찰이라는 공간이 이들을 수용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고 그곳에 사는 대중들의 고운 마음씨도 이런 모습을 보게 해 주는데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으로 재직한 가산당 지관 대종사가 주석했던 경국사 무우정사를 돌아본다. 총무원장 후보로 나올 당시 지관스님은 조선시대 때 승병을 지휘했던 스님들이 머물던 말씀을 들려주며 자신의 총무원장 출마의 변을 한 게 또렷하게 기억난다.
“서산대사께서도 제 나이에 승병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제가 총무원장으로 출마해 종단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그만한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시 73세의 나이로 총무원장에 출마한 지관스님의 일성이었다. 스님은 조계종의 대표적인 학승으로 세계 최대의 불교대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을 편찬했고 총무원장으로 선출돼 4년의 임기를 수행했다. 학승으로서 풍부한 덕을 쌓은 스님이었기에 4년 임기 동안은 참으로 편안했던 기억이다.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후에는 조계사에서 한 참선수행에 대한 명법문을 남기기도 했다.
“참선은 강물 밑바닥에서 먼지가 일어나는 이치를 아는 일입니다. 또 저 삼각산 꼭대기나 그 허공에 연꽃이 피는 도리를 아는 일입니다. 그 연꽃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연꽃에는 뿌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선의 세계에서는 뿌리가 없는 연꽃의 이치를 깨쳐야 합니다. 육조 혜능스님은 선의 진리에 대해 모양도 없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뚱뚱하지도 않고, 빼빼하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밝기는 태양보다 밝고, 검기는 옻칠보다도 검다고 했습니다. 물밑에 먼지가 나고 허공에 꽃이 피는 경계를 알고, 뿌리 없는 나무의 이치를 알면 열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자는 마음을 조복(調伏, 항복)받는다고 했습니다. 죄도 마음으로부터 생겨나고, 마음으로부터 죄가 소멸한다고 했습니다. 살아가는 일체가 마음입니다. 그러니 선과 악이 마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극락보전 뒤편의 영산전과 산신각의 계단 길을 돌아본다. 여름 모기가 극성을 부리며 달려든다. 조용한 명상을 기대하며 올라간 길이었지만 삽시간에 공포의 길이 되어 급히 내려온다. 올라가던 길 극락보전 뒤편에 서 있는 수백 년 수령의 오가피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극락보전으로 향하는 나뭇가지는 부러질 위험이 있어서인지 잘려져 있고, 산신각으로 향하는 가지는 무성한 잎을 매달고 있다. 환희당 옆길에도 수백 년은 됨직한 도토리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보호수로 지정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사찰이 들어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경국사를 다녀갔으리라. 경국사의 나무는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100년도 못사는 사람들을 보며 수백 년 살고있는 나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욕심과 아만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들의 군상을 보며 또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오니 훌쩍 일주문이다. 서울 도심 숲이 그윽한 산사 경국사를 잘 다니러 왔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물들 때 또 오리라 마음 굳히며 일주문에서 합장을 하고 발길을 돌린다.
글/사진__여태동 시인. 경북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및 동국대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를, 동방문화대학원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찰과 전통한옥 고택, 동화, 고승인터뷰, 도시농부 일기 등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법정 스님 관련 등 10여 편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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