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
일체시 일체처에 이것 뿐
운암담성(782~841) 선사가 한 비구니에게 물었다.
"그대의 부모님은 살아계신가?"
"살아계십니다."
"연세가 몇이신가?"
"80세이십니다."
"어떤 이의 아버지는 나이가 80세가 아닌 이도 있다는데, 그대는 알고 있는가?"
육신을 낳아주신 것은 아버지이고, 아버지는 나이가 80세이기도 하고, 돌아가시기도 한다. 그러나 꼭 이 아버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저 인연 따라 나를 낳아주셨지만, '이것'이 없으면 낳을 수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부모요,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이다.
당신은 연세가 몇 세 되신 그 부모님 말고 다른 부모님을 알고 있는가? 진정 이 우주 삼라만상을 태어나게 한 그 주인공, 아버지 하느님, 어머니 대지를 알고 있는가?
운암담성 선사가 열반에 들 즈음 동산이 물었다.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1백 년 뒤에 누군가가 '운암화상의 초상을 그릴 수 있겠는가?"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운암이 답했다.
"그에게 다만 '그저 그런 놈이었다'고 하라."
동산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운암이 입적한 뒤, 위산으로 가던 중 개울을 건널 때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크게 깨달아 운암의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게를 읊었다.
"절대로 남에게서 찾지 말라. 멀고 멀어서 나와는 서먹하다. 나 이제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
'운암 화상의 초상화'는 운암 스님의 본래면목을 가리킨다. 본래면목 이것은 뭐 그리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신비롭지도 않고, 고귀하지도 않다. 그저 그런 놈일 뿐! 그저 평범한, 지극히 당연한, 늘 이럴 뿐인, 있는 이대로의 이것일 뿐이다. 지금 당장에 이것일 뿐. 지금 이미 있는, 이 당연하고도 평범한 이것, 그저 이것일 뿐이다.
동산은 물에 비친 자신을 보고 이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남에게서, 밖에서 결코 찾을 수 없다. 찾아서는 찾아지지 않는다. 나 이제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가는 곳마다, 늘 이것을 만난다. 이것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찾겠다고? 도대체 이것 아닌 것을 가져와 보라. 일체시 일체처에 도대체 이것 아닌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있음’의 자리
당신은 주로 생각하고 '있거나', 말하고 '있거나', 보고 '있고', 듣고 '있고', 맛보고 먹고 접촉하고 생각하고 '있다'.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이것을 하든, 저것을 하든, 잘 하든 못 하든, 그 이런 저런 '하는 것'이 우리의 주된 관심사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잘 하기를 원하고, 좋은 것을 하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고 있을 때, 한번쯤 관심의 초점을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것'에 두어 보라. 하고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것 말이다.
보고 있을 때 보이는 대상이나 어떻게 볼 것인지 말고, 보고 '있다'는 이 '있음'의 순수한 상태 말이다.
그 생각의 내용물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그 생각이 일어나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데카르트는 말했지만, 생각이 존재가 아니다. 생각은 왔다가 갈 뿐이다. 실체가 없이 인연 따라 왔다가 가면 그 뿐이다.
거기에 왔다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생각이 오고 가는 배경, 바탕, 그 모든 것의 근원에 순수한 '있음'이 있다. '생각하고 있다'고 할 때, 그 앞의 생각 말고, '있다'는 있음의 존재 말이다.
이것이 더 진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왔다 가고, 느낌도 왔다 가고, 소리도 왔다가 가고, 보이는 것들도 왔다가 가지만, 그 모든 것들이 왔다가 가는 이 배경에 그런 내용물에 전혀 물들지 않는 '있음'이 있다.
보고 있고, 듣고 있고, 말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 있음에 잠시 머물러 있어 보라. 그저 있어 보라. 생각하고, 보고, 듣고, 해석하고, 맛보고, 이해하는 것 말고, 그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이 있음의 자리에 있어 보라.
내가 스스로 '내가 있다'고 말할 때, 그 있음은 무엇인가? 내가 있는 것 같은 근원적인 어떤 '있음'의 감각이 있지 않은가? 이 있음의 텅 빈 자리 위로 생각도, 대상도, 소리도, 맛도, 감촉도, 모든 것들이 지나간다.
우리는 한 발자국 떨어져 그 텅 빈 있음의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있다.
그 있음,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참된 존재 아닐까?
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생각되지도 자각되지도 느껴지지도 않지만 분명히 있는 이 '있음' 이것이 바로 그토록 찾던 그것이 아닌가? 이 있음으로 있는 것, 그것이 곧 깨어있음이다.
법상 스님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해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탁소리 지도법사로서 서울 목탁소리휴 주지, 상주 대원정사 주지로 있다.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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