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수행생활 · 혜월 스님 편
그 시절의 기억으로 사막에 지혜의 달빛을
그 긴 여정은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스리랑카의 평범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다가도 ‘이렇게 살아도 되나?’, 다른 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라는 내 안의 물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의 물음이 청년의 심장을 꿰뚫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 길로 스님을 찾아 나선 청년은 ‘마음 착한 이의 행복’이란 뜻의 ‘수구나난다’라는 법명을 받고 출가했다.
이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사막 지역 하이데저트에서 지내고 있다. 적막한 곳에서 홀로 지내다보면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시절이 있다. 이방인 수행자를 항상 반갑게 맞아주었던 스승들과, 사과 하나도 나눠먹으며 산보와 울력을 했던 도반들이 함께했던 시절, 정다운 그들과 함께 화두를 잡고 정진했던 그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서운한 생각이 들다가도, 그 시절을 한번이라도 살아본 것이 복이었다는 생각에 스님은 그 아름답던 시절인연의 기억을 수시로 꺼내보곤 한다.
스님에게 1983년도는 잊을 수 없는 해다. 출가 후 스리랑카에서 2년간 수행한 후 명상의 전통의 찾아 태국으로, 홍콩으로 무작정 길을 나섰다.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떠난 여정이었다. 그러다 한 영국인으로부터 참선을 배우려면 구산 스님을 찾아가라는 말에 다시 길 떠나 도착한 곳이 송광사였다. 그해 1983년에 구산 스님에게 ‘혜월(慧月)’이라는 법명과 함께 ‘이뭣꼬’라는 화두를 받았다. 그날 이후로 스님은 회색 승복을 입고 ‘혜월’로 살아왔다.
“송광사에는 훌륭한 어른 스님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분들은 외국에서 온 수행자들에게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죠. 구산 스님께서는 평소엔 말씀이 많지 않으셨지만, 수행 을 지도하시거나 법담을 나누실 때는 깊은 가르침을 아낌없이 전해주셨어요. 선방 스님들도 한결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고 챙겨주셨죠.”
송광사의 공동체 생활은 자신을 내려놓고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더없이 좋은 수행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6개월은 정말 힘들었어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도, 겨울에 찬 김치를 먹는 것도 고역이었죠. 독방을 사용하며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남방불교와 달리, 대중이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공동생활이 가장 곤욕스러웠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 없이’ 지내게 되면서 모든 불편과 갈등이 사라졌고 대중생활을 이해하게 되었다. 스님들의 기도 소리와 목탁 소리도 평안하게 다가와 정신적인 화합을 이루었다. 낯선 음식과 화두에도 익숙해져 “이뭣꼬”를 붙들고 선방에서 9년간을 보냈다.
나 없이 내가 사는, 자연의 마음으로서
“‘나’를 버리는 사는 것은 참선에서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외롭다’, ‘내가 괴롭다’, ‘내가 먹는다’ 등 에고의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참선은 ‘외로움을 느끼는 놈은 누구인가?’, ‘괴로운 놈은 누구인가?’ 하는 식으로 묻는 거죠. 그렇게 질문을 거듭하며 ‘이뭣꼬’에 깊이 들어가다 보면 결국 ‘나’라는 에고가 사라져요. 나 없이 내가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모든 것은 에고가 만든 거죠. 그 에고가 사라져야 진짜 나를 만납니다.”
고집스러운 에고가 눈 녹듯 사라진 자리에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나에게 잘해주거나 못해주는 이의 분별도 없는 그런 마음, 바로 ‘자연의 마음’이 찾아온다. 그 마음으로서 혜월 스님의 하루는 시작된다. 송광사에서의 새벽 3시 기상과 예불, 구산 스님으로부터 받은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미국에서 35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스님은 매주 명상 수업을 진행하고 다양한 불교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수행자들과 함께하는 명상 모임과 집중 수행, 그리고 여러 사찰에서의 법문은 스님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스님이 미국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생활 불교’이다. 스리랑카의 위빠사나로 시작해 태국과 중국의 불교를 거쳐 한국의 간화선에서 꽃을 피운 그의 수행은 어느 한쪽에 갇혀있지 않다.
“사람들이 어떤 불교 수행을 가르치느냐고 물으면, 저는 스리랑카 불교도, 한국 불교도 아닌 ‘부처님 말씀’이라고 답합니다. 미국인 제자들에게 ‘만일 고통당하고 있다면 아직 해탈한 것이 아니다’라고 조언하며 매 순간순간 깨어있기를 강조하죠. 지나간 일에 집착하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를 향해 마음을 달리게 하면 그 순간 평화는 사라지고 불안과 초초라는 병이 생깁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이고 명상이죠.”
스님에게 명상은 종교적 의식이나 행위가 아닌, 정신적으로 자기 마음을 관리하여 기쁨과 편안함에 머물게 하는 예술이다. 끊임없는 물음 속에서 에고를 비우고 삶을 다루는 것이야말로 ‘명상의 예술’이고 ‘참선의 예술’이라고 스님은 믿고 있다. 타인의 행동이나 외부 환경 때문에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화남과 소란 속에서도 스스로 고요해질 수 있는 힘. 그것은 명상의 예술로써 빚어지는 힘이다.
명상은 ‘나’라는 에고를 버리고 삶을 다루는 예술
“화두는 잠잘 때도, 아플 때도, 죽는 순간까지도 나와 함께 가야하는 것이죠. 하지만 송광사 선방에서 하루 10시간씩 앉아 있던 시절에는, 종일 온갖 잡념만 가득할 때가 많았어요. 과연 이렇게 앉아있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들 때도 많았죠. 하지만 급한 마음 없이 그저 자리를 지켰던 인내의 시간들이 쌓여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평화로운 열매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매일 10분이라도 앉아있는 연습이 필요해요.”
송광사에서 그러했듯, 오늘도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예불과 참선 후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다.『반야심경』과『중론』은 스님이 항시 곁에 두고 읽는 경전들이다. 요즘은 법정 스님이 번역한『숫타니파타』도 흥미롭게 읽고 있다. 읽어볼수록 선(禪) 수행과 매우 닮아있는 가르침이 많다고 느껴진다.『숫타니파타』와『법구경』에 소개된 욕망에 관한 게송들은 스님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외우고 있고 명상을 지도할 때 자주 인용하곤 한다.
“참선을 하든 위빠사나를 하든, 부처님이 강조하신 본질은 하나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그걸 위해 부처님이 여러 방법을 알려주신 거고, 그 방법으로 번뇌를 없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이 공부를 하는 건데, 내 안의 욕심, 화, 질투 등의 오염원, 번뇌를 없애지 못한다면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소용없어요.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없고 깨달음의 맛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스님은 사람들에게 명상을 지도하기에 앞서 경전의 가르침을 통해 욕망(욕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강조한다. 욕망은 마음에서 어떻게 일어나 어떻게 작용하여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감각적 욕망은 갖가지로 나뉘어 마음을 어지럽히고 온갖 형태로 감미롭게 우리를 유혹한다. (…) 이것은 나에게 재앙이요, 종기이며, 화근이요, 병이요, 화살이요, 두려움이다. 이렇듯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는 무서운 위험이 있음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의 ‘무소의 뿔의 경’에서
함영ㅣ1998년부터 글을 지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빅이슈 코리아>에서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기획 및 출판 등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등이 있고 ‘음식과 사람의 인연을 통한 성찰’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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