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대고 비는 게 미신인가? — 신라인의 응급실이었던 굴불사지 약사여래

기복 불교의 의미 / 10분으로 배우는 불교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사진|경주문화관광)

굴불사지 석조사명불상과 신라인들의 염원

경주시 동천동에 위치한 굴불사지(掘佛寺址)에 관해 <삼국유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이 백률사에 방문했을 때 땅 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 그곳을 파보니 네 면에 불상이 새겨진 큰 바위가 나왔다. 그렇게 불상을 발굴한 자리에 절을 세웠기 때문에 절의 명칭이 굴불사가 되었다고 한다. 절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각기 다른 크기와 다양한 조각 기법으로 여덟 분의 불보살님들이 바위에 조성되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石造四面佛像)의 사진을 보면 가장 키가 큰 부처님의 두상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흙으로 매몰되어 있다. 또한 2022년 태풍 힌남노 당시에도 주변의 토사가 밀려와 그 일대가 묻힌 것을 보면 어쩌면 <삼국유사>의 전설은 완전한 허구라기보다 굴불사의 지형과 자연재해의 영향을 반영한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예전에는 ‘경주’하면 석굴암, 불국사만 떠올렸지만 동국대학교 와이즈 캠퍼스에서 연구를 위해 경주 시민으로 살면서 굴불사지를 알게 되었다. 굴불사지가 경주 시내 주택가의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오가는 길에 참배할 수 있다는 편리성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렇게 자주 들리다보니 경주의 다른 유명한 유적지나 어느 대형 사찰의 부처님보다 투박한 바위에 모셔진 이곳 부처님들이야말로 신라인들이 꿈꿨던 불국토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보물로 지정된 불보살님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위의 서쪽 면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불로 하는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고, 남쪽 면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북쪽 면에는 미륵보살님, 그리고 동쪽에는 동방유리광 세계의 약사여래가 계신다. 즉, 바위 하나에 팔만대장경에 계시는 거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모셔져 있다.

간절함이 담긴 진짜 신앙, 기복 불교

개인적으로 이 불보살님들 중 가장 눈길이 가는 분은 바로 왼손에 동그란 약함을 들고 있는 동쪽 면의 약사여래다. 약사여래는 이름 그대로 중생의 질병과 아픔을 어루만지고 구원해주는 ‘의사 부처님’이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약사 신앙은 중국 남북조 시대 4~5세기경에 성립된 불설관정칠만이천신왕호비구주경(佛說灌頂七萬二千神王護比丘呪經)(일명 불설관정경)의 제12권인 관정발제과죄생사득경(灌頂拔除過罪生死得度經)등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동네 편의점에서도 웬만한 상비약을 구할 수 있고 병원에서는 최첨단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특별한 종교적 믿음을 가진 이가 아니면 아프다고 해서 ‘돌덩어리’에 새겨진 약사여래를 찾을 일은 잘 없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의 약사불 신앙은 그저 하등한 기복 문화에 불과한 것일까? 기록에 의하면 굴불사가 조성될 8세기 당시 유독 자연재해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농사 외에는 식량을 구할 수 없던 옛사람들에게 자연의 변화는 곧바로 생사의 문제로 직결되었다. 질병과 굶주림은 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을 죽음으로 데려갔고 삶의 공동체를 파괴했다. 신라인들은 물론 비슷한 삶을 살았던 고려와 조선, 그리고 불과 백여년 전의 사람들에게도 병들고 아플 때 기댈 곳은 오직 약사여래의 가피 외에는 없었다. 그러한 간절함은 동네 가까이 바위 한 켠에 규격화되지 못한 소박한 약사불을 모시게 하였고, 그 부처님께 틈만 나면 찾아가 자신과 가족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빌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극한 정성을 다했을 때 아픈 이는 거짓말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천수를 누렸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전설 따라 삼천리’ 정도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은 다른 것이다. 종교를 과학으로 증명하기 원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지 않을까. 소위 ‘기복’ 만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복 불교는 하등한 것이며, 교리의 이론적 정합성만 추구하는 불교 역시 참된 불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굴불사의 제불보살님들은 낮은 곳에서 중생들을 굽어보고 계신다.

 

정상교|금강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대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 출연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도쿄대학 불교학과 - 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천번을 부셔져도 그대는 여전히 바다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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