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한 사람인가... 이 질문이 떠나지 않을 때

10분으로 배우는 불교 / 산사(山寺)의 법음(法音)



경쟁과 평가에 지친 현대인들

강원도 정선의 어느 산사에는 해 질 무렵이면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온 세월만큼 다른 마음의 짐을 안고 찾아오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대개 비슷하다. 바로 쉼이다. 산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처마 끝 풍경소리만이 조용히 흐를 뿐이다.

J 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금융권에서 일했다. 지난 7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남들이 피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주말에도 회사 일을 생각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승진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또 승진에서 떨어졌다.

실망은 원망이 되었고 곧이어 무력감으로 변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출근은 했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자신에 대한 평가였다.

‘나는 실패한 사람인가?’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우울감과 분노, 수치심 사이를 오가던 그는 어느 주말 우연히 산사를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어디론가 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절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평가하지도 않았고, 경쟁을 부추기지도 않았으며, 더 잘하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 후 그는 주말이면 산사를 찾았다. 탑도 돌고 공양도 했다. 처음에는 탑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가 보살님에게 조용히 지적을 받기도 했다. 법당 마루에 앉아 한글 반야심경을 읽기 시작했고, 유튜브를 통해 스님들의 법문도 들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불교와 인연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불교의 가르침은 마음에 스며들었다.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는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절이 좋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안에 있던 경쟁심과 초조함이 조금씩 약해졌습니다. 늘 나를 괴롭히던 부끄러움과 울분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요.”

그는 자신을 불교도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비어 있음’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그날 툇마루에는 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최근 정년퇴직한 A 씨였다. 그 역시 오랜 세월 회사에서 살았다. 승진하고 성과를 내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삶의 중심이었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책임감도 강했다. 그런데 퇴직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출근할 곳도 없고, 달성해야 할 목표도 없었다. 하루가 길었다. 가끔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어색했다.

문제는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었다. 회사에서는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하는 것이 능력이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그것이 잔소리가 되었다. 자녀들에게 하는 말마다 지적처럼 들렸다. 격려한다고 한 말은 간섭이 되었고, 조언한다고 한 말은 통제가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꼰대 아버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왔다.

등산을 시작했고,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이 산사를 알게 되었다.

그날 J 씨와 A 씨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이미 도반이었다.

성공과 성취만을 좇는 사람들

현대인은 참 바쁘게 산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더 많이 성취해야 하며, 더 완벽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에 빠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비합리적 신념을 꼽았다.

‘나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큰일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때로 우리를 열심히 살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든다.

J 씨와 A 씨도 그 믿음으로 살아왔다 덕분에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마음은 지쳐 있었다.

신경과학자 이언 맥 길크리스트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는 현대 문명이 지나치게 분석과 효율, 통제와 측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수치로 계산하고, 평가하고, 관리하려 한다.

하지만 삶에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아름다움, 사랑, 관계, 침묵, 경외감 같은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인간적 가치들이 소홀해질 때 사람은 삶의 전체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불교의 마음챙김과 같은 수행에 관심을 가졌다. 잠시 멈추어 현재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태도가 인간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불교가 일러주는 내려놓는 법

생각해 보면 불교는 오랫동안 그것을 가르쳐 왔다.

‘모든 것은 변한다.’‘붙잡을 것도 없고,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다.’‘우리가 집착하는 성공과 실패, 칭찬과 비난 역시 잠시 스쳐 가는 구름과 같다.’

상좌부(Theravada) 불교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관찰하면서 평정심을 기르는 수행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쁜 일이 생겨도 지나치게 들뜨지 않고, 괴로운 일이 생겨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다.

선불교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깨달음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있다고 말한다.

차를 마시는 일.
마당을 쓰는 일.
산길을 걷는 일.
친구와 이야기하는 일.

그 모든 순간이 수행이고 깨달음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승은 묻는다.

“어디로 가려 하는가?”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찾던 것은 멀리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산사는 그것을 말없이 가르친다.

절의 주지 스님은 찾아온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특별한 가르침도, 설득도 없다. 자주 오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그저 누구나 와서 쉬어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줄 뿐이다. 산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나무는 그늘을 내어주며, 저녁 풍경소리는 하루의 저묾을 알린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J 씨와 A 씨도 그랬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정답 찾기보다는 쉼이 필요하다. 조언보다 침묵이 필요하다.

산사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문진건 |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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