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안 휩쓸리는 사람은 이걸 알고 있다

- 평정심의 지혜: 흔들리지 않으면서 따뜻하게
[10분으로 배우는 불교]



문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네 가지 숭고한 마음, '사무량심'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 사이에 경제적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가치관의 충돌은 일상화되었으며, 급속히 변화하는 기술로 미래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은 사람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불안은 일상이 되었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긴장과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며 타인을 향한 선한 마음을 지속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삶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네 가지 숭고한 마음을 제시한다. 자애(慈), 연민(悲), 기쁨(喜), 그리고 평정심(捨)이다. 팔리어로는 이를 ‘브라마비하라(Brahmavihāra, 고귀한 마음의 거처)’라 부르고 한자로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 부른다.

이 네 가지 마음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인간 존재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실천적 지침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마음에서 괴로움과 어리석음을 덜어내는 길을 보여준다. 자애는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며, 연민은 고통받는 존재를 향한 따뜻한 응답이다. 기쁨은 타인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고, 평정심은 이 모든 마음을 균형 있게 유지하게 하는 중심축이다.

평정심의 오해와 진실

이 가운데에서도 평정심은 특히 오해되기 쉬운 개념이다. 팔리어 ‘우페카(upekkhā)’는 흔히 ‘지켜본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한자어로는 ‘버릴 사(捨)’로 번역된다. 이 때문에 평정심은 종종 감정을 배제하거나 현실과 거리를 두는 냉담한 태도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평정심은 결코 무관심이나 방관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변화와 무상함을 깊이 이해한 사람이 지니는 성숙한 안정감이며,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용의 힘이다. 부처님께서 무관심을 평정심의 가장 가까운 적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 전통에서는 평정심은 ‘모든 것을 동등하게 가까이 두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특정 대상에 집착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포용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평정심은 거리 두기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연결의 방식이다. 편애하지 않기 때문에 더 넓게 사랑할 수 있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관계 맺을 수 있다.

그런데 평정심을 실제로 기르는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특히 활력이 넘치고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강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때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균형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상황에 휩쓸려 감정이 증폭되면,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정심은 단순히 조용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오히려 활발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욱 중요한 삶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평정심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는 ‘지켜보는 태도’이다. 이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외부의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능력을 의미한다. 마치 높은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상황을 더욱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둘째는 ‘균형을 유지하는 힘’이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능력을 의미한다. 삶에는 쾌락과 고통, 이익과 손실, 칭찬과 비난, 명예와 불명예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평정심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는 상태이다. 마치 줄타기 곡예사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중심을 미세하게 조절하듯이, 평정심 역시 지속적인 내적 조율의 결과이다.

평정심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천하는 것은 전혀 쉽지 않다. 우리는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사회의 문제에 무관심한 방관자로 남고 싶지 않으며, 타인의 아픔에도 응답하고자 한다. 동시에 ‘한 발 뒤로 물러나 바라보라’라는 조언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이들이 평정심을 소극적 태도로 오해하거나 거부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에 대해 일본 선불교의 사상가 도원 선사는 ‘할머니의 마음’이라는 비유를 통해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도원 선사는 전좌교훈에서 ‘평등과 자비’가 함께하는 마음은 훌륭한 할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훌륭한 할머니는 손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동시에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한 발짝 떨어진 여유 속에서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적극적으로 돌보고 돕는다. 이 마음은 단순한 거리 두기가 아니라, 자비와 평등이 하나가 된 성숙한 참여의 방식이다.

이 비유는 평정심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평정심은 차갑게 물러나는 태도가 아니라, 따뜻하게 참여하되 중심을 잃지 않는 상태이다. 자비와 결합한 평정심만이 진정한 균형을 만들어 낸다. 자비가 평정심 없이 작동할 때, 그것은 쉽게 집착이나 소진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반대로 평정심이 자비 없이 존재할 때, 그것은 냉담함이나 무관심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작동해야 한다.

평정심은 또한 지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삶의 결과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알 수도 없다. 이러한 한계를 인정할 때, 우리는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씨앗을 심되, 그 열매를 억지로 요구하지 않는 태도—이것이 바로 평정심이 지닌 지혜이다. 이때 우리는 행위 자체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조용한 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평정심은 우리의 기쁨을 확장한다.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만 국한된 기쁨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행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비교와 경쟁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시야에서 삶을 바라보게 한다. 타인의 행복이 나의 위협이 아니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평정심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게 살아가는 힘이며, 참여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지혜이다.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이러한 평정심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수많은 선택과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정심을 향해 나아가는 그 노력 자체가 이미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비가 자리하고 있다. 자비와 함께하는 평정심,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마음의 본질일 것이다.

 

문진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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