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으며 읽는 책 『무엇이 나인가, 붓다에게 묻다』
100억 개의 순간
조용한 곳에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등을 곧게 펴고, 아마도 눈을 감은 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의식이라는 격한 흐름 속에서 하나씩 연이어 일어나다 사라지는 경험의 단편들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진짜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인간 경험의 세계는 마음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체험된 세계는 순간적인 앎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대상을 인식하고, 느끼고, 해석하고,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다섯 가지 집합체(五蘊)라는 기관을 사용해 반복해서 현실을 구성한다. 그러고 나면 그 사건은 끝나고, 그 순간을 위해 응집된 것들은 다시 흩어져버린다. 우리의 감각 기관이나 마음에 의해 또 다른 대상이 제시되고, 다시 그에 상응하는 느낌의 톤·지각적 해석·의지적 반응과 함께,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또 다른 순간이 일어난다.
일부 전통 문헌들은 손가락을 한번 튀기는 시간에도 수십억 개의 마음 찰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를 과장된 표현으로 보고 좀 더 현실적인 숫자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뇌의 알파 리듬처럼 1초에 4~8번 정도 일어나는 정신적 사건들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이보다 훨씬 더 빠른 처리도 가능하며(예를 들어 경주용 자동차를 운전할 때), 반대로(아침 커피를 마시기 전처럼) 멍한 상태에서는 기껏해야 1분에 한두 가지 상태도 겨우 알아차릴 정도일 때도 있지만, 단순하게 초당 6개의 개별적인 메타 사건들이 마음속에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다시 말해, 다양한 네트워크와 하위 시스템으로 조직된 엄청난 수의 뉴런들이 모두 조화롭고 통합된 방식으로 발화하여, 전반적으로 응집된 하나의 체험된 경험의 순간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초당 6개의 인지 순간이 있다면, 1분에 360개, 1시간에 2만 1600개가 되며, 하루 7시간 반의 수면 시간을 가정하면, 깨어 있는 하루 동안 약 35만 6400개의 마음 순간이 있게 된다. 77년의 수명 동안, 한 사람은 약 100억 개의 개별적인 경험의 순간을 겪게 된다. 이게 전부다. 이것이 바로 나, 나의 세계, 내 삶의 종합이다. 100억 개의 마음 순간들이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전 세계에 약 70억 명의 인구가 있다고 계산하면, 초당 총 420억 개, 또는 1분당 2조 5000억 개의 마음 순간이 지구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실제 숫자는 중요하지 않지만, 이러한 숫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이는 개인과 인류 전체의 경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는 초기 불교 문헌에서는 의식 요소[viññāna-dhātu: 識界]라고 불리며, 후대 불교 사상에서는 법계[dharmadhātu: 法界], 즉 정신 현상의 요소라고 불리게 된다.
이러한 순간들의 양에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물론 그 수는 크지만, 불가피하게 유한하다), 우리가 그 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붓다는 매 순간 일어나는 경험에 대한 정서적 관여가 유익하거나 유익하지 않음, 건전하거나 건전하지 않음, 능숙하거나 능숙하지 않음을 특징으로 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인류 문명에 귀중한 공헌을 했다. 탐욕과 증오, 미혹에 뿌리를 둔 정서들은 해로워 자신과 타인에게 더 큰 괴로움을 초래하는 반면, 관대함과 친절함, 지혜에 뿌리를 둔 정서들은 이로워 개인과 집단의 안녕감에 도움을 준다.
자,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일생 동안 경험하는 100억 개의 마음 순간들 대부분이 미숙하고 그래서 건강하지 않다면, 불교 전통에서는 다음 생에 더 불운한 상황에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건전한 마음 상태의 긍정적 균형이 클수록, 현재의 삶이 더 나아지고 다음 생도 더 나아질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소 모호하지만, 일반적인 도덕적 나침반으로서는 유용하다. 만약 하루 35만 6400개의 마음 순간들 전체가 건전하다면, 당신은 아라한(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자)이다. 초기 경전에서 열반은 탐욕과 증오, 미혹이라는 유독한 정서의 불길이 완전히 꺼진 상태로 정의된다.
이런 관점은 또한 우리에게 인류 전체의 집단적 깨달음을 향해 전 지구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론자로서 대부분의 인간의 마음 순간들이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흔히 듣는 것보다 서로를 돌보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비관론자 ─ 미안하지만, 현실주의자라고 해야겠다 ─ 의 입장, 즉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어둠으로 가득 차 있을 가능성도 인정한다. 어느 쪽이든, 만약 우리가 이 단순한 모델을 채택한다면, 인간의 번영은 단지 건강한 마음 순간들을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한편, 건강하지 않은 마음 순간들을 억제하고 내버리는 문제일 뿐이다.
건강하지 않은 마음 상태는 주로 어떤 식으로든 억압받거나, 박탈당하거나, 위협을 받을 때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들이 존재하는 곳마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전 세계적으로 더 능숙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건강한 마음 상태는 안전·돌봄·평화·존중의 상황에서 촉진되므로, 우리 모두가 다른 이들을 위해 이러한 조건들을 제공하고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할수록, 집단적 안녕감이라는 프로젝트는 더욱 진전될 것이다. 붓다가『상윳따니까야』에서 "자신을 돌보면서 다른 이를 돌보고, 다른 이를 돌보면서 자신을 돌본다"고 설한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분노와 두려움,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끔찍한 행동을 저지르고,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피해자들을 향한(그리고 때로는 가해자들을 향해서도) 거대한 자비와 선의, 관대함이 솟아나게 된다. 법계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을 보면, 긍정적인 마음이 부정적인 것을 훨씬 뛰어넘어 결국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마치 우리 몸에 상처가 났을 때 치유하려는 항체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사회적 상처에도 그런 치유의 힘이 작동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상황을 이렇게 보는 시각은 과학과 불교의 가르침, 사회 운동을 하나로 이어주는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틀을 제공한다. 의식은 자연 생태계 안에서 일어나는 뇌의 여러 활동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활동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사건들로서 본질적으로 공(空)하고 상호의존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맑고 깨어 있게 지키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며,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 전체의 마음을 점차 밝게 해나가는 고귀한 길을 추구할 수 있다.
모두 함께 가는 길이기에,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신진욱|동국대학교 법학과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Worcester State University에서 연수했다. 현재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MSC Trained Teacher, 대한불교조계종 선명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에 『드디어 시작하는 명상입문』이 있고, 공역서로 『깨달음의 길』, 『이 세상은 나의 사랑이며 또한 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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