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소개합니다 / 대원불교학술총서 『철학으로서의 불교』
불교를 신앙의 체험을 넘어 정교한 논리와 언어 통해 계승
이 책은 불교를 믿기 전에 생각하게 만든다. 익숙하게 이해했다고 여겼던 개념들을 다시 의심하게 하며, 독자를 일정한 지적 불편함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이 제시하는 사유의 출발점이다. 이 번역서는『Buddhism as Philosophy』의 완역본으로, 2007년 초판 이후 14년에 걸친 연구 성과를 반영해 개정된 노작이다. 단순한 재출간을 넘어 각 장의 논의가 보완되고 세분화되었으며, 영어권 불교철학 연구의 최신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로 새롭게 정리되었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불교를 수행이나 신앙의 대상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대신 인도불교 문헌에 담긴 사유를 철학적 문제로 끌어내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불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만든다. 익숙한 불교를 철저히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입문서인 동시에 독자에게 던지는 하나의 지적 도전이 된다.
불교의 역사는 단지 깨달음의 체험을 전하는 역사만이 아니라, 그 통찰을 언어로 재현하고 해석해 온 장대한 ‘말의 역사’이기도 하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제자들을 말로 가르쳤고, 그 말씀을 정리하고 논증하며 계승해 온 과정 자체가 자비의 실천이었다. 말의 수레가 없었다면 붓다 내면의 통찰은 공적인 공간으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불교철학은 바로 이러한 전통 위에서 성립한다. 즉, 개념을 통해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고자 했던 논사들의 노력, 그리고 그 사유를 논증과 언어로 재구성하려 했던 긴 역사 속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전개되는 복잡한 논증과 개념들은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사유를 통해 해탈에 접근하려 했던 시도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불교 진리를 전제하지 않는 질문, 사유의 해탈을 향한 수레
불교철학은 불교라는 거대한 전체에서 보면 일부분에 불과할지 모르나, 그 일부는 교리의 정교한 구조를 만들고 치열한 대론을 통해 사유를 단련해 온 핵심 영역이다. 저자는 인도불교의 사유를 철학의 범주로 규정하고, 그것이 현대 분석철학의 틀 안에서도 정합적인 논리를 갖추고 있는지 집요하게 검토한다. 일반적인 입문서들이 교리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주력한다면, 이 책은 불교의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이 과연 철학적으로 타당한지, 그리고 지적인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를 비판적 관점에서 따져 묻는다. 이러한 접근의 핵심은 불교를 이미 주어진 진리로 전제하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상대 철학자의 관점에서 논증의 구조를 재구성하고 숨겨진 전제를 드러내어 그 타당성을 분석한다. 예컨대 무아(無我) 교리를 다룰 때 ‘환원주의’나 ‘부분전체론적 허무주의’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여, 오온이라는 전체가 구성요소의 집합에 대한 편리한 지시어일 뿐임을 논증하는 식이다. 이러한 논리적 해체와 분석의 과정은 불교를 “설명하는” 대신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번역 과정에서는 개념의 논리적 함의를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일부 술어를 영어식 표현 그대로 옮겼다. 십이연기를 ‘열두 가지 연결된 의존적 발생의 사슬’로, 사성제를 ‘네 가지 고귀한 자의 진리’로 표현한 것은 용어 자체가 지닌 설명력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563년 중국 광주 제지사에서 진제(眞諦) 삼장이『섭대승론』을 번역할 때 곁에서 도왔던 혜개(慧愷) 스님은 역출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큰 골짜기에 겨자씨만한 배를 띄우려 했고, 둔한 말을 채찍질해 먼 길을 가려 했다.” 방대한 사유를 제한된 언어로 옮기는 일의 무게를 스스로 아는 자의 말이다. 나 역시 이 말을 곁불처럼 빌려 쬐며 서늘한 마음을 달랬다. 이 ‘말의 겨자씨’가 이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사유의 해탈을 위한 수레가 되기를 바란다.
강병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했고, 사단법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상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가산불교대사림』편찬에 참여했다. 역서로『붓다 마인드』,『철학으로서의 불교』, 스티븐 배철러의 『불교 이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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