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라고 믿는 것, 뇌가 만들어낸 신기루입니다

 - 밑줄 그으며 읽는 책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번역, 클랩북스 刊, 2026년 1월


신기루 같은 자아의 탄생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다음 그림을 한번 보자. 좌뇌의 특기가 무엇인지 기억하는가? 이야기를 지어내고, 말이 되게 설명하려 하고, 분류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 다음 그림에 있는 조각난 검은 원과 구부러진 선들을 자아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이라 생각해 보자. 이 중심에 이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이야기가 생긴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삼각형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자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보다시피 그림에 삼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삼각형의 형태를 느끼는 건 주변을 이루는 선과 원의 빈 공간을 해석해 그 반대 형태를 추론해 낸 결과다. 나는 이 삼각형을 보는 방식이 당신이 개별적 자아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방식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둘 다 추론inference으로 창조되는 느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과 선을 보고 삼각형이 있다고 추론하는 과정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개별적 자아가 있다고 추론하는 과정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 삼각형도 내면의 자아도 전부 주변을 둘러싼 정보들 때문에 있다고 느껴질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이 단지 암시에 불과하며 물리적 실체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와 도교를 비롯한 여러 동양 사상에서 수천 년간 이야기한 바와 궤를 같이하는 결론이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는 단지 환영이다. 추론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신경심리학 역시 같은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단 걸 당신도 알게 되면 좋겠다. 확실히 해 둘 것은, 자아가 환영이라고 해서 그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사막 한가운데 신기루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오아시스를 본 건 사실이지만, 그때 본 오아시스에는 실체가 없다. 똑같은 이유로 자아의 이미지는 실재하지만, 그것을 자세히 보면 그건 단지 이미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아시스와 자아의 이미지 둘 다 단지 하나의 개념 또는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만 거기에 있다.

좌뇌가 자아라는 환영을 창조하는 과정은 이렇다. 당신과 남들이 범주적으로 다르다는 패턴을 감지한다. 그렇게 관찰한 것을 기억, 선호도, 그리고 몸과 마음을 운전하는 '조종사'의 관점과 합쳐 자아라고 인식한다. 각자의 자아에 대한 정의는 나와 타인의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아닌 것' 없이 '나'는 있을 수 없다.

이 점은 일상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당신의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나는 아버지, 교수, 작가 등으로 '나'를 정의하며 타인과 구별한다. 당신은 어떤가? 만약 '나'를 교양 있고 똑똑한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그런 사회적 범주에 자신을 포함시킨 것인데, 이 범주는 상대적으로 천박하고 그리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성립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교양 있고 똑똑하다면 당신이 정의한 그 범주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당신을 외향적이라고 정의하려면 비교적 내향적인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남성이라면 같은 의미로 여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대성과 의존성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 도교의 상징 태극이다. 양을 정의하기 위해 음이 필요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심리학과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현재의 나, 되고 싶은 나를 구분하며 일종의 범주 만들기 놀이를 반복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둘로 쪼갠 뒤 더 나은 나로 살지 못할 때 고통을 느낀다. 우리는 더 똑똑해지고, 더 매력적이고, 더 성공하고 싶다. 이 모든 바람이 바로 우리의 '문젯거리'다. 더 나은 내가 되는 수많은 조건 중 자아를 완전하게 만족시키는 경우는 결코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커다란 비극이지 않은가? 자아의 입장에서는 계속 존재하기 위해 계속 생각해야 하고 똑똑함, 매력, 성공의 기준을 계속 바꿔야 한다. 즉, 자아는 언제나 모자란 상태에 머무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더 나은 나의 기준'을 만들어낸다.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여기서 고통suffer의 정의는 우리가 더 나은 내가 되고자 그렇지 않은 나를 배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슬픔, 실망, 고뇌라는 감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좌뇌는 단지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좌뇌와 완전히 동일시하여 그것이 나 자체라고 믿을 때, 고통은 압도적이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해석 장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자신을 책망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이는 고통을 극복하는 데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책 또한 자아가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방법이다. 앞서 말한 현재의 나, 되고 싶은 나를 나누는 게임과 다르지 않으며 그저 자아에게 먹이 하나를 더 던져 줄 뿐이다. 기억하라. 생각한다는 건 그 자체로 범주화하는 과정이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여기서 요령은 나의 생각과 나를 분리하는 것, 그래서 생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생각을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일어날 뿐인 일'로 본다.

마지막으로 다음 그림을 한번 살펴보자. 삼각형은 어디로 갔을까? 

삼각형으로 추론되던 부분은 사라졌지만 그것을 이루고 있던 공간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까도 텅 비어 있었고 지금도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라. 아마도 동양 철학의 핵심 원리 중 하나가 공空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지 싶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이 텅 빔에서 일어난다는 깨달음. 무엇이 이 텅 빔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것을 알아차림 또는 의식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펼쳐진 공간을 아무런 판단 없이 지켜보는 것.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다. 좌뇌는 이런 걸 싫어한다. 언어, 범주, 지도 만들기를 사랑하는 좌뇌에게 텅 빔은 권세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좌뇌를 '나'로 믿는 행위는, 밤하늘을 수놓은 오리온자리가 실제로 독립적인 존재라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별자리는 특정한 각도에서 보이는 별들의 집합일 뿐이며 거기서 마음이 어떤 패턴을 보고 오리온자리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오리온자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만간 '평생 짊어져야 한다'고 배웠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아를 '해석 중독자'로도 비유할 수 있다. 약물 중독자가 매일 약물을 찾는 것처럼 자아는 매일 고치고 개선할 거리를 찾아 헤맨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예를 들면 보고 듣고 느낀 것으로 이야기 지어내기, 나와 타인을 구분하기, 옳고 그름 판단하기.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당신you'을 '당신 자신yourself'으로 정의한다. 당신도 눈치챘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는 것을. 좌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을 끝없이 해석하고 왜곡하는 일에 미친 듯이 매달린다. 목적을 달성하고 의미를 찾아내면 당장은 기쁘겠지만 결국 필연적으로 고통에 봉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누군가는 이 가설이 너무 단순하다는 이유로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많은 고민과 고통이 기껏 폭주하는 좌뇌 하나 때문에 생긴 거라고? 학자로서 나는 이 단순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수없이 많은 소리를 들었다. 이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나도 방법이 없다. 복잡한 관념을 좋아하는 좌뇌의 목소리가 단순한 진실을 의심하는 모습을 내면에서 직접 느껴 보라 하는 수밖에. 언젠가 우주의 모든 힘을 아울러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이 완성된대도, 그 또한 너무 단순해서 믿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본다.

여기까지 우리는 좌뇌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간이 경험하는 수많은 고통이 실은 좌뇌에 편향된 사고 때문이며, 그것이 어떻게 허상의 자아를 만들어 내고 그 자아가 어떻게 스스로를 진짜 주인이라고 주장하는지 말이다. 

 

신진욱|동국대학교 법학과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Worcester State University에서 연수했다. 현재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MSC Trained Teacher, 대한불교조계종 선명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에『드디어 시작하는 명상입문』이 있고, 공역서로 『깨달음의 길』,『이 세상은 나의 사랑이며 또한 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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