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키우며 무아 인용하고 실천
어린 시절, 나는 또래로부터 떨어져 꽃밭 속으로 들어가 멀리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에 귀 기울이곤 했다. 밤의 소리는 더 다채로웠다. 모내기를 알리는 개구리 소리, 한여름 무더위를 반기는 모기 소리, 갈댓잎 스치는 새소리, 철썩이며 돌아가는 한 구비 강물 소리, 섬 우는 소리. 고향의 밤의 소리는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도대체 왜?’, ‘이렇게 해서 어떻게?’라고 거듭 질문하게 했다.
어릴 적부터 세상으로부터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살게 된 나는 대학생 때 본격적으로 불교와 인연을 맺으며 세상과 좀 더 멀어졌다. 7남매 중 장남인지라 출가하기는 어려웠지만 방학 때마다 절에서 지내곤 했다. 그 무렵 『반야심경』을 비롯한 불경을 읽어갔다.
늦기는 했지만 결혼을 한 뒤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누가 키울 것인가를 두고,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아이 엄마보다는 한국에서 교수로 있는 아버지가 키우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본격적인 육아에 돌입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지만 보람찼고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육바라밀을 행했다. 내가 희생한다다거나 손해 본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아이에게 내 모든 것을 베풀었으니 보시바라밀을 행한 것이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한순간도 내지 않고 돌보았으니 인욕바라밀을 행한 것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열이 났을 때 그 어떤 잡생각도 없이 오직 아이를 구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몰입했으니 선정바라밀을 행한 것이다. 아이에게 말하고 행동한 일거수일투족은 최고 최선의 지혜로운 것이었으니 지혜바라밀을 행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 옆에서 나는 완전히 소멸했다. 나는 무아를 인용하고 실천했다.
아내가 돌아와 아이를 그 품에 안겨주고는 5년 만에 휴가를 받아 간 곳이 송광사 여름수련회였다. 화두를 받고 참선을 시작했다. 그 경험은 참 익숙한 것이었다. 참선 수행은 혼신을 다 기울여 아이를 키운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이미 육바라밀을 닦아 초발심을 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호흡 관찰하면서 화두 의심에 집중
초발심을 낸 나는 돌아와 대학 교정과 집 근처 산책길에 수행처를 정해놓고 좌선을 시작했다. 일상생활 중에도 화두가 끊기지 않도록 애썼다. 걸어가고 멈추고 앉고 눕는 어떤 단계에서도 수행이 가능한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일주일 전후의 집중 수행에 동참했다. 집중 수행에서 재발심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더 강한 수행 기운을 얻어 돌아와 심기일전했다. 2001년 이후로 송광사 여름수련회 유경험자 반에 거듭 동참했다. 거금도 송광암, 미국 롱아일랜드 오션젠도와 마하선원, 부산 안국선원, 봉화 금봉암, 홍천 행복공장 무문관 등에서의 집중 수행에 참가했다. 그 경험을 『깨어남의 시간들』이란 책으로 펴냈다.
나름대로 수행법을 터득하고 응용해갔다. 나는 먼저 화두를 들숨과 날숨과 연결시켰다. 코밑 인중 부분의 숨을 관찰하다가 단전의 움직임을 보았다. 단전호흡에 대한 관찰은 몸의 존재를 극세의 수준까지 감지하게 했다. 나는 몸의 작용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나의 오온이 철저히 환임을 깨달았다. 나와 온 세계가 환이요 꿈이며 가상이요 거짓임을 통각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출발이요 궁극이 되었다. 몸의 오묘한 현상과 작용에 대한 관찰이 나와 세계의 무상과 공과 무아에 대한 각성을 가져다주었니, 존재의 역설이요 아이러니다.
들숨과 날숨은 생사의 원천이요 매듭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시간의 흐름이 환임을 감지했다. 부처님은 사람의 목숨이 숨 쉬는 찰나에 깃들어 있다고 대답한 제자만을 도를 안다고 인가하셨다. 중생이 부처인 근거 중 하나도 중생이 한시도 호흡을 중단하지 않으면서 그 호흡을 자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시시각각 내 호흡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부처님 호흡법인 아나빠나 수행을 궁극의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호흡을 관찰하면서도 화두 의심에 집중했다. 어느덧, 들숨 때 ‘이 송장 끌고 다니는’ 하며 생멸 세계가 떠올려지고, 날숨 때 ‘이 뭣고’ 하며 본래 모습 혹은 생멸 이전 세계에 대한 궁금함이 간절해졌다. 화두가 들숨과 날숨을 올라탄 형국이 되었다.
들숨과 날숨은 한 생각의 일어남과 사라짐, 한생의 태어남과 죽음의 비유이며 그 자체이기도 했다. 들숨과 날숨은 힘차게 날갯짓해 ‘이것’이 날아올라 나아가게 했다. 들숨과 날숨은 화두 수행에 힘과 박자를 부여하고 화두를 성성하게 만들었다. 들숨과 날숨의 흐름을 올라탔기에 화두가 생동했다.
들숨과 날숨은 균등하게 반복되다가 날숨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날숨에서 본래면목 혹은 적멸을 보려는 지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생멸 세계와 불생멸 세계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들숨과 날숨에 올라탄 화두의 앞뒤 구분도 흐릿해졌다. 들숨에도 ‘이 뭣고’, 날숨에도 ‘이 뭣고’ 하고, 들숨에도 ‘이 송장’, 날숨에도 ‘이 송장’ 했다. 들숨 날숨이 거듭되는데도 때로는 생멸 세계를 지속해 떠올리고 때로는 불생멸 세계를 연이어 떠올렸다. 들숨은 날숨이 있어 들이켜지고, 날숨도 들숨이 있기에 내쉬어진다. 파도 그대로가 바닷물이듯, 들숨 그대로가 날숨이고, 날숨 그대로가 들숨이었다. 생멸 세계 그대로가 불생멸 세계이고 ‘본래면목’ 그대로가 ‘이 송장’이 되었다.
들숨과 날숨이 편안하고 잔잔한 바람과 같이 되었다. 들숨과 날숨이 자각되지 않은 채 화두만 들렸다. ‘생멸’, ‘불생멸’, ‘송장’, ‘본래면목’ 등 개념으로 포장된 의미나 알음알이도 더 이상 작동되지 않았다. 오직 화두만 남으니 어떤 생각의 문도 다 막혔다.
부산 안국선원에서의 일이다. 생각의 문이 꽉 닫히니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고향 강물과 들판이 보였다. 고향 생가 앞 드넓은 들판 한가운데 수백 년 된 포구나무의 모습이 나타났다. 포구나무 전체의 형상이 강렬한 빛으로 변했다. 내 머리털과 몸의 털이 쭈뼜 치솟았다. 내 안의 기운이 포구나무로 다 빠져나갔다. 감전된 듯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포구나무의 밝고 찬란한 빛과 기운이 내 몸으로 들어왔다. 몸이 밝고 깨끗한 빛과 기운으로 되살아났다. 한참 동안 그랬다. 그러다가 내가 앉아 있던 방으로 돌아왔다. 따뜻하고 그윽하고 느긋한 방. 그 방에 옅고도 화사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방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어떤 것도 다 담을 수 있었다. 내가 그곳을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내가 그 속에 담겼다. 마침내 내가 그 빈방이 되었다. 그곳만 있었지 그곳을 바라보는 내가 사라졌다.
나는 거기서 ‘인가’를 받았지만 내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그 자비심과 서원을 깊이 새겼다. 근원 모를 자비심이 한없이 일어났다. 이제 어떤 존재도 다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사라진 그 순간에 나는 모든 것이 되었다. 내 속에서 간절한 서원이 생겨났다. 내게 남은 이생의 시간을 잘 써서 이 특별한 사바세상을 장엄하게 만들리라, 여전히 번뇌 망상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기 중생과 타인 중생에게 한없는 위로와 힘이 되리라는 보살심이 일어났다. 어떤 고난과 욕됨도 참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중생을 구원하는 데 지치거나 싫증 내지 않는 보살의 삶이었다.
정년 퇴임 후 선사들의 평전과 선어록 번역 및 강설에 지극정성
정년 퇴임을 한 뒤로 좌선의 여건이 더 좋아졌다. 하루 내내 앉아서 정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책상으로 가서 경전과 선어록을 꺼내 들었다. 학자의 업이란 게 참 끈끈했다. 관성의 법칙을 못 이기는 듯 경전과 선어록을 읽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수행의 기운과 동력을 얻었다. 그리고는 다시 앉아 좌선하고 수행 관련 글을 쓰기도 했다. 알음알이를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게 은사 고우 스님이 당부하신 정견(正見) 획득의 길이라고 믿었다. 정견을 위한 읽기와 쓰기이니 알음알이로 빠지는 위태로움은 적은 듯했다. 선사들의 평전과 선어록의 번역 및 강설이 그 열매였다. 『보문선사 평전』을 완성했고, 정언 선사의 『진심직설』을 번역하고 강설하는 데 지극정성을 들였다. 앞으로 몇 분 선사의 평전을 더 쓰고 『수심결』이나 『육조단경』 등에 대한 강설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 수행이 더욱 온전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한동안 바깥 소음에 시달렸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 귀도 닫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은근히 들리지 않은 상황을 바라기도 했다. 그러다 정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난청이 왔다. 절망적 상황을 겪고 다행하게도 청력을 회복했다. 다시 잘 들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듣는 것을 통해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신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을 되새기게 되었다. 들은 것을 돌이켜보아 그 들은 것의 자성을 보는 것이다(反聞聞自性). 소리를 들어서 원만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 것. 시시각각 오롯하고 또렷한 일념으로 ‘들음을 돌이켜 자기 성품을 듣고 본다’는 것. 그제야 어릴 적 꽃밭과 이불 속에서 온갖 소리를 듣고 망연자실했던 것이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 회광반조 수행이었음을 알고 환희했다.
감사하게도 수행의 방법은 참으로 다채롭게 곁에 주어져 있었다. 인연 있는 것을 잘 선택하면 일상의 매 순간이 수행이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실천했다. 앞으로 내내 그럴 것이다.
이강옥|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남대 국문학과 교수, 영남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했다. 예일대 비교문학과, 스토니브룩대 한국학과의 방문교수, 한국문학치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영남대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구운몽과 꿈 활용 우울증 수행치료』, 『새 세상을 설계한 지식인 박지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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