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佛心)을 사루어 시심(詩心)의 사리를 낳게 한 부처님|나의 불교 이야기

불심(佛心)을 사루어
시심(詩心)의 사리를
낳게 한 부처님

이서연
시인, (사)한국산림문학회 부이사장



어린 시절 뜰이 절 도량이었다 

부처님과의 인연은 기억도 못 할 그 전생 어디부터였으리라. 그러하기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인연으로 내 부모님을 만난 것이리라. 흔한 표현대로 불교는 모태신앙이며 부처님은 나를 성장시킨 사상의 뿌리이자, 작가의 길을 가도록 마음공부를 채워주신 스승이시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내게 절은 방학을 보내는 별장이었고, 특히 파주 보광사 부처님은 새벽에 법당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미소법문을 주신 분이었다. 부모님이 방학 때마다 나를 절에 보내신 것은 부처님을 모시거나 불교를 배우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한 번도 종교를 강조하신 적이 없다. 나를 절에 데려다주실 때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절에서도 내게 무엇을 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방학 때마다 절에 가서 스님을 따라다니며 예불 모시고, 도량 청소하고, 연등 만들고, 공양간에서 부각 튀기고, 군불 때는 일을 돕곤 했다. 

어느 스님도 절에선 이렇게 해야 한다고 법도를 가르치거나 불교는 이런 것이다 알려주신 분도, 부처님 공부를 하라고 권한 분도 없었다. 그저 바람 부는 날엔 솔향을 마시고, 비가 오는 날엔 감로수를 마시고, 햇살 쏟아지는 날엔 빛살들을 씹어보면서 청소년기 방학을 보내곤 했다. 

스님 법문도 법당에 들어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주지 스님께서 붓글씨를 쓰실 때 곁에서 먹을 갈아드리면서 화선지에 붓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고 먹향이 온몸에 배일 즈음 내 폐에 스며든 먹향이 코로 나오는 걸 느끼곤 했다. 가끔 스님은 시를 지어 읊어주셨다. 그때였던 것 같다. 훗날 내가 시인이 되면 스님의 시에 시로 화답할 날이 오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어른이 되면 법문을 들으러 다니는 보살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여고 3학년이 되었을 때, 아차산 영화사에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2년 만에 남자 법우들이 하나둘 입대하면서 저절로 정기 모임은 사라졌다. 그러나 법사였던 혜관 스님이 불교문학포교원으로 이끄셔서 동참했고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 생활을 하면서 글을 꾸준히 써온 터라 동인 활동은 즐거웠다. 불교계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느라 밤샘 작업이 많아도 불교문학포교원 회보 편집주간으로서 법우들과의 문학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불교방송국에서 만난 황청원 시인의 권유로 시조를 공부하던 중 박재삼 시인의 추천으로 1991년 시조로 등단했다.  


절에 가는 마음으로 시를 쓰라는 가르침

그러나 가난했다. 가난한 사회복지사의 아내가 되어 먼 곳에서 살다 보니 차비도 궁했던 처지에 문학 활동은 버거운 문화생활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문학 단체 활동은 접고 집에서 작품을 썼다. 그리고 스님들의 설법 자료를 만들고 연구하는 설법연구원에 근무하면서 첫 시조집 『내 안의 나와 마주 앉아』를 출간했다. 박재삼 선생님은 내 시집 서문에 “나는 자주 한문으로 시(詩)라는 자를 풀어서 말하는데 말씀 언(言) 변에 절사(寺)로 이루어진 시(詩)는 절에 가듯 맑은 마음가짐으로 쓰는 것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시인이 추구하고 표출해낸 시어들은 ‘불교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불교’요 ‘선(禪)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피안을 향한 불자로서 이 시인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지만 시를 통해 깨달음을 노래하고 그러면서 참삶을 추구하는 그 자체가 이 시인이 갖고 있는 매력이요, 아름다움이라 여겨지기에 능히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리라 믿는다”고 하셨다.

박재삼 선생님은 이 글을 써주시고 시집이 출간된 후 1996년 겨울에 돌아가셨다. 내 첫 시집의 이 서문이 선생님의 마지막 글이 되고 말았다. 

설법연구원은 3년간 일하고 그만두었으나 스님들께서 공부를 시키시며 설법 자료 원고를 쓰게 하셔서 이 작업을 30년간 했다. 제대로 법문을 들으러 다니거나 불교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었건만 이렇게 불연(佛緣)은 불교 공부로 평생을 살게 했다. 


문학이라는 사리를 낳다

인연의 골짜기를 돌다 보면 그 무엇으로든 부처님 말씀이 마음 중심에 있음을 느낀다. 그 순간이 바로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분명히 나를 알고 있을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하리라는 믿음이다. 그런 부처님의 은혜 속에서 전공과 관계없이 불사(佛事)하며 불심을 성장시켰고, 살아가는 ‘앓이’가 ‘시울음’이 되어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 35년간 시조뿐 아니라 자유시, 수필 작품을 발표했다. 산을 좋아하는 남편과 산행을 즐기며 쓴 수필은 『바람난 산바라기』로, 영국 유학 기간에 하루하루를 『천수경』과 『반야심경』에 의지해 살아내면서 쓴 3년간의 유학기는 『그리움으로 가는 편지』 3권으로 출간되었다. 두 번째 시조집 『산사에서 길을 묻다』는 전국 200여 사찰을 다니며 화두와 사색, 명상으로 건진 231개의 시조를 모은 작품집이다. 이 작업을 하며 우리나라 3대 기도 도량에서 삼천 배를 세 차례 하면서 내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화두로 정진하곤 했다. 지금은 그때 산신 기도 덕분이었을까 산림청 산하 한국산림문학회에서 숲사랑을 문학으로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시조와 문인들의 숲사랑 작품이 세계인들에게 전해지도록 번역집 출간도 이어갈 예정이다.

불교는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의 본질을 깨닫는데 지혜를 열어주는 마음서이자 영혼의 지침서이며, 삶에 던져진 나를 내 안에서 발견하는 신앙적 영역이다. 시는 이 영역에서 나를 스스로 점검하고 표출하는 매개체다. 이처럼 내 영혼을 키워준 불교는 이렇게 나로 하여금 문학이라는 사리를 낳으며 정진하게 하고 있다.  


이서연|1991년 월간 『문학공간』 박재삼 시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사)한국문인협회 감사, (사)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사)한국산림문학회 부이사장, 계간 『산림문학』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시집 『내 안의 나와 마주 앉아』, 『사랑, 그 언어의 무늬』, 『산사에서 길을 묻다』, 영어 번역집  『내 안의 그』, 수필집 『그리움으로 가는 편지』(전 3권), 『바람난 산바라기』, 태교 일기 『사랑하는 나의 작은 우주야』 등이 있다. 한국문학백년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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