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환대,
더 큰 사랑이 필요한 시간
자크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원한은 원한으로 멈추지 않는다. 오직 사랑으로만 멈춘다. 이것이 영원한 진리이다.”
— 『법구경』 중에서
요즘 20~30대 청년들이 ‘연애도 감정과 시간, 돈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칼로 베이는 듯 아팠습니다. 물론 사랑을 하면 감정도 소모되고, 시간과 돈도 들지요.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과연 인류는 지금과 같은 문명과 지식, 문학과 철학과 예술의 힘을 쌓아 올릴 수 있었을까요. 젊은이들에게 사랑을 ‘낭비’라고 생각하게 만든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미워하게 된다면, 우리는 힘들고 아플 때 숨고 싶은 ‘마음의 피난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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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데리다 외 지음, 이보경 옮김, 필로소픽 刊, 2023 |
◦ 차별과 증오의 세상에서 조건 없는 환대와 무한한 자비가 필요하다
『환대에 대하여』
저에게 아름다운 책들은 언제나 사랑과 공감의 힘을 일깨워주는 영혼의 피난처가 되어줍니다. 저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두 권의 책이 바로 『환대에 대하여』와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입니다. 두 권의 책은 우리 각자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단지 가족의 사랑이나 연인의 사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사랑’ 그 자체임을 일깨워줍니다. 데리다는 초대와 환대의 결정적인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초대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하는 것’이거나 ‘특정한 조건을 걸고’ 하는 것이라면, 환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로 무조건적으로 미지의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래서 초대하는 마음에는 어느 정도 ‘계획’이 있기 마련이지만, 불특정 다수,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을 환대하는 마음에는 무조건적인 사랑, 즉 자비가 필요합니다. 자신도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평생 차별을 당했던 데리다는 바로 그 차별과 증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히려 조건 없는 환대, 무한한 자비라는 개념을 철학의 중심 화두로 떠올린 것이지요. 바로 이 무조건적인 환대의 개념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부처님의 사랑은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만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힘겹고, 슬프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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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수정 옮김. 갈라파고스 刊, 2013 |
◦ 슬픔과 고뇌에 빠진 타인의 얼굴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비추다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도 불교의 자비와 연결됩니다. 레비나스는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움직이는 사랑의 매개체임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여쁘고 화려한 이미지에만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뇌에 잠긴 타인의 얼굴을 통해 나의 영혼을 비추는 존재이니까요. 그가 가장 아프고 힘겨울 때 그의 손을 잡아주고 곁에 있어주고 싶은 사람, 그가 바로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이웃이자, 타인이자, 또 다른 나이니까요.
불교의 자비 사상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구절 중 하나로,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모든 중생에게 한량없는 자비심을 베풀어라.” 바로 이 구절이 서양 철학자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 그리고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가능성입니다. 자식이 딱 한 명밖에 없다면 그를 향한 사랑은 얼마나 지극하겠습니까. 바로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내 사랑하는 자식을 대하듯,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타인들을 정성스럽게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비의 실천이고, 사랑의 눈부신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데리다는 진정한 환대란 조건 없는 초대이며, 그 초대는 스스로의 안전과 경계를 넘어서야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는 초대받은 ‘낯선 타자’에게 우리의 공간, 시간, 아끼는 물건과 음식까지 내어주어야 합니다. 이때 환대는 더 이상 상호 교환적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요구가 되는 것이지요.
◦ 자비는 곧 환대이다
이제 불교의 자비와 데리다적 환대를 겹쳐보면 흥미로운 공명이 생깁니다. 자비는 곧 환대인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열고, 그 존재가 겪는 고통과 실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이미 타자를 향한 집 없는 집, 한없는 초대의 공간을 마련합니다. 데리다가 말한 ‘무조건적 환대’는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의 확장’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어느 쪽도 타자를 내 욕망이나 편의 속에 가두지 않습니다. 타자는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지라도, 온전히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또한 자비와 환대는 경계의 해체라는 점에서도 통합니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나’와 ‘타자’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집니다. 우리는 고통의 중심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데리다 역시 환대의 윤리적 요구는 나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설 것을 요청하지요. 초대받은 타자가 나의 안전과 익숙함을 위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내 삶의 공간 속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나’와 ‘타인’을 가르고 있는 울타리가 무너져야만 진정한 사랑과 자비가 가능해짐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받는 존재 앞에서 우리는 자기 안의 두려움과 여러 가지 이익을 계산하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이것은 불교 수행에서 강조되는 무아(無我)의 실천과도 겹칩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계산과 편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진정한 자비와 환대가 피어납니다. 타자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순간, 우리는 자비의 집과 환대의 집을 동시에 짓는 것입니다.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내 삶에 대한 사랑으로, 내가 있는 모든 공간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 ‘나’를 있게 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연대감과 사랑으로 번져가는 세상을 꿈꿉니다. 미움과 질투와 분노가 우리를 사로잡기 전에,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수많은 사랑과 자비의 손길을 기억해주기를.
정여울|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KBS <정여울의 도서관> 및 EBS <클래스e>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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