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신의 개념
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종교적·철학적 차원의 신 이해
인류는 다양한 ‘신(神, God)’ 개념을 발전시켜왔다. 넓게 보아 신의 정의는 두 차원에서 접근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종교나 철학의 관점에서 신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 있는 세계의 창조주나 주재자로 여겨진다. 이렇게 파악되는 신은 종교의 핵심이자, 신학적 담론과 의례적 실천의 중심을 차지한다. 둘째, 일상적인 삶의 맥락에서 신은 인간의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존속하는 실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혼백(魂魄), 조상신, 귀신(鬼神)’ 등이 그 사례다. 후자의 이해는 창조주로서의 유일신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한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지며, 주로 조상 숭배 의례를 통해 전승되었다. 이 글은 종교적·철학적 차원의 신 이해를 주로 다룬다.
신관은 우선 신의 숫자를 기준 삼아 크게 ‘유일신론(唯一神論, monotheism)’과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으로 구분된다. 유일신론은 다시 “초월적 유일신, 범신론적 유일신, 범재신론적 유일신”으로 나뉠 수 있다. 반면, 다신론은 말 그대로 여러 신들이 있다는 믿음이다.
유일신론은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단일한 신을 전제한다. 유일신은 삶의 최종적 의미와 윤리적 기준을 제공하며, 종교적 헌신과 복종의 대상이 되는 절대적 존재이다. 근동에서 발흥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대표적이다. 일자(一者)를 존재의 최종 원인으로 파악하는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Pythagoras),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플라톤(Plato) 등이 설파한 철학적 유일신론도 여기에 속한다.
유일신론은 신과 현상계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기준인 ‘초월성(transcendence)’과 ‘내재성(immanence)’의 도식에 따라 셋으로 나뉘기도 한다. ‘초월적(transcendental) 신론, 범신론(汎神論, pantheism), 범재신론(汎在神論, panentheism)’이 그것이다.
초월적 유일신은 현상 세계와 철저하게 분리된 존재이다. 세계를 창조한 이후 현상계와 인간 역사를 외부에서 지켜보는 주재자로서의 특성이 강조된다. 유일신을 채택한 종교에서 가장 흔한 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신과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철저하게 이질적이며, 양자 사이에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있다.
범신론은 초월적 유일신론과 달리 신과 우주의 동일성을 강조한다. 신은 만물 그 자체이므로, 신의 가장 두드러진 속성은 ‘내재(內在)’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세계의 본질과 신을 동일시하는 종교 사상을 확립한 스피노자(Spinoza)가 널리 알려진 범신론자이다. 일부 힌두 철학에서도 범신론적 경향은 발견된다. 모든 존재가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Brahman) 속에 들어 있다는 힌두교의 믿음이 전형적이다.
반면 범재신론적 유일신론에서는 범신론적 경향과 함께 신의 초월성이 동시에 강조된다. 신은 존재 전체를 자신 속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내재하지만, 동시에 현상계와 분리되어 있다는 초월성 역시 갖는다. 신이 세계를 초월하면서 내재한다는 범재신론적 주장은 여타 신관에 비해 난해하다. 범재신론은 고대 희랍 철학 전통과 동양 철학에서 두드러진데, 플로티누스(Plotinus)의 신비 철학, 우파니샤드의 비이원론적 베단타(Vedanta) 사상이 전형적이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의 한울님 역시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내재하지만, 동시에 초월해 있다는 측면에서 범재신론적이다. 현대 들어 범재신론은 신을 ‘궁극적 실재’로 정의한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종교 사상에서도 확인된다.
‘다신론(多神論)’은 말 그대로 여러 신의 존재를 믿는다. 신들은 자연의 다양한 힘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간의 감정을 비롯한 삶의 여러 측면을 대변하기도 한다. 다신론적 신관은 선사 시대부터 세계 여러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도, 그리스·로마가 대표적이다. 특히 제우스(Zeus), 아테나(Athena), 포세이돈(Poseidon) 등 다채로운 신들이 살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은 다신론의 상징과도 같다.
시공을 초월해 등장하는 다신론은 유일신론과 치열한 경쟁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과 같은 종교 전통들은 다신론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후 절대적 신 관념을 강조하는 유일신론으로 발전했다. 가장 오래된 원초적인 형태의 종교로 일컬어지는 샤머니즘 역시 여러 신들의 위계를 받아들인다. 또 죽은 사자들의 혼백 역시 여기에 포함시킨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일반적으로 다신론은 유일신론보다 더 오래되었으리라 추정된다.
한편 유일신론의 특성은 ‘인격성’과 ‘상호 관계’라는 차원에서도 조망될 수 있다. 인격성은 ‘신이 의지와 감정을 지닌 주체로서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를 내용으로 한다. 근동 종교와 힌두교 등은 인격적 신을 널리 받아들인다. 이에 반해 초월적 존재의 비인격성을 강조하는 흐름도 뚜렷하게 전승되어온다. 불교의 공(空, śūnyatā), 도교의 도(道, Tao), 유교의 천(天)은 의지나 감정을 지닌 실체가 아닌, 추상적이고 궁극적인 원리로 간주된다. 비인격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주로 동양 종교에서 발견된다. 즉 신은 창조자나 주재자가 아닌, 우주적 조화를 뒷받침하는 섭리에 가깝게 파악된다. 또 상호작용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깨달음 체험과 같은 철학적 명상과 관상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덧붙여 신 존재와 인간의 ‘상호 관계’ 역시 신관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초월적 유일신론이나 다신론에서 신은 인간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주체이다. 시나이(Sinai) 산에서 모세를 만나 계약을 맺은 야훼, 천사를 통해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전한 알라는 전형적이다. 범재신론의 신 역시 내재성에도 불구하고, 초월성을 동시에 지니므로 관계의 대상으로 기능한다. 수운이 경신년(1860)에 조우한 동학의 한울님이 그러하다. 반면 신의 내재성만을 강조하는 범신론이나, 초월적 원리의 비인격성을 강조하는 전통에서는 신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 예컨대 불교의 공은 기독교의 신과 달리 만남과 교류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나아가 ‘인간이 신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답변 역시 신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초월적 유일신론의 경우 이원적인 상호작용은 허용되지만, 일원성을 확인하는 신 체험은 불가능하다. 반면 다신론에서는 ‘접신(接神)’과 같은 예외적인 사건으로 신과 인간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다. 범신론과 범재신론, 그리고 신을 초월적 원리로 간주하는 일부 동양 종교의 경우 인간 영혼이나 마음이 직관적으로 ‘초월’을 인식하는 체험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이런 사건이 종교적 신행의 최종 목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동서양 종교에서 두루 등장하는 신비주의(mysticism)적 경향이 그 사례이다.
특히 신비주의는 신 혹은 초월적 원리의 인식 가능성을 인간의 마음에서 찾는다. 명상이 주는 내면적 통찰을 강조하는 불교를 필두로 의식 변화의 다양한 수행법을 전승시켜왔다. 종교 체험을 강조하는 현대의 종교심리학 역시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종교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신과의 합일 체험이 인간의 ‘잠재의식’이라는 장(場)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으며, 카를 융(Carl G. Jung) 역시 우리가 온전히 인식할 수 없는 무의식의 심층적 차원에 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종교사에는 다양한 신의 정의가 등장했다. 단일하고 절대적인 존재라는 인식부터, 위계를 이루는 여러 신들, 우주와 동일시되는 범신론적 신, 내재와 초월을 동시에 구현하는 범재신론에 이르기까지 신의 얼굴은 시공에 따라 다채롭게 드러났다. 한편 신의 각기 다른 모습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렌즈로 기능한다. 신 정의가 필연적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는 물론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우리의 근원적 정체성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의 의지’는 오랫동안 인간의 삶과 공동체의 모습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했다.
성해영|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라이스(Rice) 대학에서 플로티노스의 종교 체험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개인의 종교 체험 전반에 관한 연구와 종교 체험과 종교 사상의 상호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 등이 있고, 「프로이트와 아비나바굽타(Abhinavagupta)의 종교사상 비교: 욕망과 욕망의 승화 개념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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