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의 짐을 내려놓고 보리심의 날개를 펴다『우바새계경』의 지혜|불교 경전에 물들다

죄책감의 짐을 내려놓고
보리심의 날개를 펴다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의 지혜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재가불자를 위한 보살계, 왜 필요한가?
‘붓다스쿨’은 불교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교육기관으로, 그 핵심 주제는 ‘보리심’입니다. 이 보리심을 중심으로 다섯 권의 교과서가 교육의 기둥 역할을 하며, 그중 하나가 바로 『입보살행론(入菩薩行論)』입니다. 이 『입보살행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붓다스쿨의 학생들은 행보리심을 일으켰음을 불보살님에게 증명받기 위해서 ‘보살계’를 수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범망경(梵網經)』의 보살계는 현실에서 지키기 어려운 항목이 많아, 단지 계를 받았을 뿐 실제로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수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고 오히려 심리적 부담만 커질 수 있습니다. 이는 자칫 수행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나 무력감으로 이어져, 보리심이라는 큰 원력마저 흔들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바새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출가보살이 출가계(出家戒)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재가보살은 재가계(在家戒)를 지키는 것이 어렵나니, 왜 그러한가? 재가자는 악연에 많이 얽매여 있기 때문이니라.”

이처럼 재가자는 출가자보다 더 많은 수행의 장애에 직면합니다. 수행은 마음을 맑히는 여정이며, 이는 업력이라는 내면의 장애와 그에 상응하는 외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재가불자가 진지하게 수행에 임할 경우, 마주하게 되는 큰 장벽은 이러한 ‘장애’입니다. 재가자는 다양한 인연과 관계 속에 얽매여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수행의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애착과 집착으로 얽힌 관계, 욕망의 충돌로 발생하는 갈등, 무지로 인해 서로를 속박하며 수행을 방해하는 관계 등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 속에서 보살 수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재가자는 어떠한 계율을 받아야 할까요?

『우바새계경』, 재가불자의 삶을 반영하다
불교에서 재가불자의 도리를 설한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옥야경(玉耶經)』과 재가불자의 보다 폭넓은 인간관계의 도리를 논하는 『육방예경(六方禮經)』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바새계경』은 이 두 경전의 가르침을 계승하면서도 대승불교적 보살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다만, 『우바새계경』에서는 대승불교의 보살 사상이 반영되어 육방에서 예경하는 것이 부모나 스승, 친구나 고용인이라는 대상이 아니라 육바라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육방을 향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바라밀의 실천을 발원할 때, 여섯 관계를 넘어 모든 인연 속에서 선연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경전은 재가불자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원보리심을 일으킨 뒤, 삶 속에서 육바라밀을 실천하고자 할 때 지켜야 할 현실적인 계율을 제시합니다. 『범망경』이 출가보살 중심의 십중대계와 사십팔경계를 설한 데 비해, 『우바새계경』은 재가의 현실을 반영해 육중대계와 이십팔실의계를 설정합니다. 이는 지키기 어려운 계율로 인한 죄책감을 덜어내면서도 수행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방편입니다.

오욕(五欲)을 긍정하며 깨달음으로 향하게 하는 『우바새계경』의 계율
“선남자여, 우바새계는 불가사의한 것이니라. 왜 그런가? 이 계를 받으면 비록 오욕을 누리어도 수다원과나 아나함과에 장애가 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하느니라. 그대는 능히 모든 중생을 가엾어하기 때문에 이 계를 받겠는가?”

수행의 장애는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결국 ‘오욕’에 기인합니다. 특히 재가의 삶에서는 오욕의 추구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입니다. 『우바새계경』에서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오욕을 누리면서도 수행의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계율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모든 중생을 아끼는 자비심을 바탕으로 그들을 돕는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는 계율 역시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된 것이 바로 여섯 가지 중법[六重法]입니다.

“첫째, 살생하지 말라. 둘째, 훔치지 말라. 셋째, 사음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허물을 선전하거나 말하지 말라. 여섯째, 술을 팔지 말라.”

『범망경』의 십중대계와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 음행이 사음으로 변화했다는 것과 네 가지 중한 계율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재가의 삶 속에서 음행을 완전히 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빠진 네 가지 계율 역시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계율이 빠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는 항목은 현실 속 재가자들이 지키기 매우 어려운 계율입니다. 이러한 항목이 참회 불가능한 중계로 설정되면, 갈등이 잦은 재가 생활에서 죄책감만 쌓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파계한 우바새·썩은 우바새·전다라 우바새·더러운 우바새·결박된 우바새라고 하느니라.”

우바새계의 중계가 여섯 가지로 축소된 것은 죄책감을 줄이기 위함인 동시에 계체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죄책감이란 결국 계체가 손상됨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니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는 계율의 항목을 남김으로써, 누구나 예외 없이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재가보살의 삶, 『우바새계경』으로 완성하다
육중법이 재가보살의 삶 속에서 넘지 말아야 할 도덕적 경계를 설정했다면, 이십팔실의계는 그 안에서 수행을 원만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실천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보살행론』 속에서 보살계를 보살의 ‘학처’라고 했듯, 『우바새계경』에서는 재가보살의 계율을 ‘적정처’라고 제시합니다. 즉 이 계율은 수행자가 업력의 장애 속에서도 ‘법다운 마음가짐’이라는 법당 안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보살의 큰 뜻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유마경(維摩經)』에는 보리심의 삶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권선합니다.

“직심(直心)이 곧 도량이요, 보리심(菩提心)이 곧 도량이니라.”
이는 보살계의 마흔여덟 가지 경계가 단순히 숫자만 줄어든 것이 아닙니다. 마흔여덟 가지 속에 없던 계율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재가의 삶 속에서 중요한 원칙들인데 예를 들면 ‘상인으로서 세금을 속이면 안 된다’, ‘국법을 범하면 안 된다’ 등처럼 세속의 삶에 적용되는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가보살의 적정처가 되는 스물여덟 가지 계율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범주로 요약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승가 및 삼보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지 말고 의무에 충실하라.
둘째, 생명을 존중하고 살생을 경계하라.
셋째,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경제 활동에 정직하라.
넷째, 자비심을 지니고 타인을 배려하라.
다섯째, 개인의 삶 속에서 도덕적 문란함과 불성실함을 경계하라.

재가불자의 수행은 결코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우바새계경』은 재가자가 일상이라는 광대한 도량에서 번뇌의 속박을 넘어 보살도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는 현실적이고 자비로운 가르침입니다. 재가의 삶에 최적화된 보살의 ‘학처’를 통해 일상 속 번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보리심의 실천 속에서 안심(安心)을 얻는다면, 유마 거사나 승만 부인처럼 모든 중생의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우바새계경』 속 계율은 재가자의 삶에 꼭 맞는 옷과도 같습니다. 이 계율을 바탕으로 보리심의 가르침을 실천해나간다면, 비록 속박과 갈등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바새계경』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라도 삶 속에서 실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재가보살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뎌보는 것은 어떨까요?


원빈 스님|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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