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마음의 공부’|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마음의 공부’

마크 그레이엄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장강명 『먼저 온 미래』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마크 그레이엄 외 지음, 김두완 옮김, 흐름출판 刊, 2025

◦ ‘우리, 온기가 있는 인간들의 소통’이 해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남겨두길

“천 명을 천 번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위대한 승리이다.”
— 『법구경』 중에서

천 명을 천 번 이기는 것도 어려운데, 과연 내가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나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일, 경쟁으로부터 나다움을 지키는 일, 수많은 탐욕으로부터 내 삶을 지키는 일. 이런 것들이 나와의 싸움일 것입니다. 그때마다 싸움의 의미는 달라지겠지만, 지금 현대인에게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어떻게 ‘나다움’을 지킬 것인가가 중요한 마음의 과제로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란, 마음으로 길을 걷는 일이지요. 인공지능의 시대일수록 마음공부는 더욱 소중해집니다.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답게 산다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마음까지의 거리다”라는 격언처럼,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진정 깨닫는 것은 훨씬 어렵고 중요한 일입니다. 스마트폰,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내가 내 머리로 생각하는 삶’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천천히 종이책을 읽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인간의 문장’으로, 나의 사유로 생각하는 일은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내 머리로 생각하며 내 마음으로 깨달은 것만은, 인공지능이 빼앗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는 인공지능 산업의 확장으로 인해 세계적인 차원의 엄청난 양극화, 그리고 지구환경의 파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일터에서 AI 기술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감시와 지배가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AI 감시 기술이 커질수록 생산 비용은 절감될 것이고, 노동자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고, 노동자의 권리가 약화되어 경영진의 권력이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기념비적인 대결 이후 가장 먼저 인공지능의 습격을 받은 프로 바둑 기사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꾸어왔는지를 심층 취재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그래도 인간의 영역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의 잠정적인 결론은, 인공지능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자리는 항상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토록 매력적인 인공지능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 이유도 사실은 영혼의 나침반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예요.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하면 오히려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돛도 잃고 구명보트도 잃어버린 느낌이 들어요. 아직은 제 힘으로 제 문제를 해결하고 싶거든요. 불완전하더라도, 어설프더라도, 아직은 ‘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들을지라도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만 느낄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 오래, 더 자주 느껴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인공지능보다는 진짜 사람을 만나서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제 마음속에 기계가 아닌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남겨두고 싶은 마음입니다. 결국 인공지능이 그토록 유려한 해답을 내놓는 원리도 기존에 다른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들을 편집하고, 재구성하고, 변형하는 것입니다. 원본이었던 우리 인간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저에게는 더욱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저는 제 안에 ‘우리, 온기가 있는 인간들의 소통’이 해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남겨두고 싶습니다.

장강명 지음, 동아시아 刊, 2025

◦ 완벽한 인공지능의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vs.
불완전하지만 그냥 나 자체인 이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소통을 꿈꾸기 때문이니까요. 오늘의 이야기를 두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완벽한 인공지능의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vs. 불완전하지만 그냥 나 자체인 이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이고, 저는 두 번째 세계,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공지능은 저의 긴 이야기를 이렇게 짧은 두 문장으로 요약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 진의를 왜곡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들 인간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요약된 깔끔한 세계, 살균된 정보의 세계’가 아니라 ‘이렇게 길고 긴 수다를 떨 수 있는 인간의 무한한 자유’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저는 아직 ‘올마이티한 인공지능’보다는 매 순간 변화하는 무한한 감수성을 지닌 존재, 무의식과 육체와 꿈과 이상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의 자유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르네 데카르트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주에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입니다. 좋은 두뇌를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두뇌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두뇌와 감성을 잘 사용할 수 있는지, 인공지능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책은 영혼의 거울이며,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내면을 손으로 만지는 일이니까요. 종이책을 펼쳐, 내 머리로 글을 읽고, 내 마음으로 글을 쓰고, 기계는 흉내 낼 수 없는 단 하나의 빛나는 나와 만나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여울|작가.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KBS <정여울의 도서관> 및 EBS <클래스e>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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