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불교문학의 구도정신과 사성제|불교와 문학, 문학 치유

현대 불교문학의
구도정신과 사성제

김춘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문학평론가

드라마로 제작된 『등신불』(위)과 영화로 제작된 『만다라』

종교적 고뇌와 시대적 고통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불교의 영향은 백화 양건식, 춘원 이광수,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서 김달진, 신석정, 서정주, 조지훈, 김동리, 최인호, 한승원, 김성동, 박상륭 등 많은 시인과 소설가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은 1900년대 이후 서구의 영향에 의해 ‘근대성의 성취’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여겨졌던 ‘현대문학’의 형성 과정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특이한 점이다. 가장 전통적인 종교이자 문화이면서 동시에 조선 시대 500년에 걸쳐 줄곧 차별받아왔던 ‘불교’와 현대문학의 접점은, ‘불교의 유신’이라는 내부적 과제가 국권 상실 등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대 정황과 맞물리면서 ‘역사’와 ‘국가’를 종교적 사유를 통해 재성찰하고 내면화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 그리고 차별을 넘어선 해방과 구원의 종교로서 ‘역사적 수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불교의 유신’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구도를 향한 열망’을 보여주는 불교 소설과 시의 상당수는 ‘구도’라는 목표 안에 ‘종교적인 고뇌’와 ‘시대적인 고통’이 늘 함께 공존해왔다. 불교에서 ‘구도’의 의미는 ‘사성제’로부터 비롯되는데,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네 글자는 인간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여덟 가지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이 없는 상태, 그리고 괴로움을 없애는 수행 방법을 각각 의미한다. 불교의 교의 중 핵심에 속하는 ‘사성제’만 가지고 말한다면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구도’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이 인간 실존의 전제 조건인 것처럼, 문학의 가장 큰 화두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과 의미의 확인,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이해와 초월이라는 점에서 불교적인 사유는 어쩌면 문학이 지닌 인간에 대한 관점과 가장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생로병사,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의 여덟 가지 고통 중에서 ‘생로병사’가 인간의 보편적 숙명이라면, 뒤의 네 가지 고통은 인간의 삶의 양상에 수반되는 일종의 ‘관계’를 포함한다. 물론 불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생로병사’ 역시 12연기의 작용이지만, 현상적인 차원에서 보면 앞의 네 가지보다는 뒤의 네 가지 고통이 세계와 나, 혹은 타자와 나의 관계에 의해서 주로 발생하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작품에서 주로 문제화되는 ‘고통’도 이런 관계의 불화 혹은 시대적 모순에 의해서 발생하는 고통이다. 한국 현대문학의 경우, 식민지 체험, 해방과 분단, 전쟁, 독재로 이어지는 굴곡된 역사적 시련과 수난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불교 문학작품에서 구도의 과정은 언제나 시대적 고뇌를 동반하면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특별함은 이 시집이 사랑의 감정에 대한 뛰어난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불교적 깨달음의 과정과 시대적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개인의 구도(求道)에서 ‘중생’의 구제에 이르기
김동리의 「등신불」은 액자식 구성을 지닌 소설로써 주인공 ‘나’는 대정대학 재학 중에 학병으로 끌려가서 전선에 투입되기 직전에 탈영을 감행한다. 남경 근처 서공암이라는 암자에 기거하던 진기수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원면살생 귀의불은(살생을 면하기를 원해 부처님께 귀의하려고 합니다)’이라고 혈서를 쓰고 구원을 요청한다. 진기수는 나를 ‘정원사’라는 절로 데려가 숨겨주는데, 주인공은 여기서 ‘등신불’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다. 불상은 ‘만적’이라는 스님의 ‘소신공양(燒身供養)’을 모신 것인데, 이 불상은 해탈자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처연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었다. 소설은 여기서 ‘만적’의 내력을 다루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만적 스님은 생모의 탐욕과 그 결과로 집을 나간 이복동생이 문둥병에 걸린 불행한 악업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소신공양하고, 그 후 정원사의 금불은 온갖 영험을 베풀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소신공양’의 이야기는 온갖 욕망과 고뇌,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온몸을 희생하는 간절한 발심의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서로 연결된 수많은 인연의 집합체가 현재의 ‘나’임을 암시한다. 살생을 면하려는 ‘학도병’의 이야기와 그가 발견한 ‘등신불’의 상관성은 이 점에서 또한 서로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전쟁’이라는 예외적인 상황 속 ‘비인간화’와 ‘자기희생’의 대비는 구도의 의미를 ‘해탈’을 넘어서 대승적인 ‘중생 구제’라는 문제로 확장시킨다. 수행의 목표로 본다면 구도란 ‘자기 해탈’과 ‘중생 구제’라는 두 차원이 존재하는데, 인간적인 고통과 고뇌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이 구도의 과정에 ‘희생과 보시’라는 또 다른 ‘대승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김동리의 문학적 신념인 ‘생의 구경 탐구’는 개인적 해탈이 아니라 인연과 업으로 연결된 삶의 표면적 아이러니를 넘어서는 ‘문학적 가치’에 대한 탐구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 안에 이미 불교적인 인연과 우주관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문학 속에 반영된 불교가 시대의 ‘상’을 담고 있다는 말은 여기서 다시 확인이 가능하다. 고통의 형태와 원인은 모든 중생에게 동일하지만 그 형태로 원인의 실상은 ‘인연’과 ‘관계’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결국 특정한 시대와 상황의 특수성을 드러낸다. 한국문학 속의 ‘고통’은 이 점에서 단순한 생로병사나 사랑, 미움, 불만족, 감각적 탐닉의 형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적 한계를 만드는 ‘시대적 업’과 연관되어 있다. 시대적 ‘업’은 인연으로 서로 얽혀 있는 ‘공업(共業)’의 결과로서 한 사람의 개인적 해탈과 구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고뇌 중에는 타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윤리적 책임과 부채의식도 포함된다. 불교의 ‘대승’과 ‘중생 구제’는 이 점에서 고통이 만들어지는 ‘시절 인연’과 무관할 수 없다. 문학의 역사성, 시대에 대한 성찰과 ‘불교’의 인식, 실천이 만나는 접점도 여기서 형성된다.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은 근대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소설인데, 이 소설은 한국 근대 불교의 선종 계보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깨달음 혹은 구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 두 개의 이야기 구조가 서로 안과 밖을 구성하는 형태로 전개되는데, 대학에서 해직된 강빈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경허 스님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한국 근대 선불교의 계보를 알게 되고 또 스스로의 ‘참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강빈은 의친왕과 동기(童妓)였던 어머니의 인연의 결과로 태어났고, 대학 시절에는 이 사실을 알고 혼란과 부끄러움, 방황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해직된 강빈이 공민왕이 남긴 거문고의 출처를 찾는 과정에서 이 거문고의 내력에 대해 알게 되고 결국 정혜사에 보관된 거문고가 자신이 소유한 ‘경허 성우’와 ‘만공 월면’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 묵주와도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문고와 묵주를 통해서 자신의 출생 내력이 밝혀지고 동시에 강빈은 경허와 만공과의 시절 인연을 따라가면서 점차 불교적인 수행과 ‘자아 찾기‘의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강빈의 출생담에 복잡하게 얽힌 인연과 과거의 역사가 동원되듯이,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에는 시대의 모순을 ‘병 속의 새’라는 화두로 품고 있는 객승 지산과 법운이 주인물도 등장한다. 이 두 인물은 시대와 가족사적인 상처를 종교적 열정으로 승화하려는 인물들이다. 불교의 구도적 수행이 ‘만행기’의 형태를 띠면서 ‘출출세간(出出世間)’의 고뇌에 찬 이야기로 펼쳐지는데, 김성동의 이후 불교 소설이 미륵사상과 민중불교에 바탕을 둔 ‘승속’ 초월의 구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소설적 자아 찾기’가 불교적 구도 행위와 일치되는 과정에서 결국 시대의 고통과 다시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상처에 대한 구원으로부터 시작된 ‘구도의 여정’이지만 이런 구도의 끝에는 언제나 그 고통의 진정한 원인이 되는 ‘인연의 얽힘’과 우리가 만든 복잡한 세상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학이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 거대한 세계의 모순에 직면하고 고뇌하면서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불교적인 구도 역시 참된 나를 찾기 위해서 ‘무명(無明)’에서 벗어나 고통을 만드는 ‘원인’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참된 지혜의 터득과 수행’의 과정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이 두 서사의 구조는 서로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불교문학의 ‘구도’ 모티프는 시대적 고통과 개인의 번뇌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 자주 사용되는데, 이 점은 불교가 현대성을 갖추는 과정에서 ‘중생’ 혹은 ‘대중’과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김춘식|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문학평론가, 『시작』 편집위원이다. 평론집 『불온한 정신』, 저서 『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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