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이 내 삶을 밝혀준 등불이 되다|나의 불교 이야기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이
내 삶을 밝혀준
등불이 되다

김나연
다르마 명상심리상담센터 센터장, 원효학술상 수상자

교단 위에서 마주한 질문
고등학교 교단에 처음 섰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그 순간부터, 나는 교실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수많은 인연을 만났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있었고, 그 이야기는 수업이 끝난 뒤 복도나 상담실에서 조심스럽게 피어났다. 나는 내가 아는 최선을 다해 함께 고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부족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해주는 말이 과연 도움이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았다. 전문적인 상담 지식도, 자격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불안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 반짝이는 눈으로 꿈을 이야기하던 한 학생과 함께 미래를 그려보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흔들리는 아이의 모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 아이의 속상한 표정이 내내 가슴에 남았다. 그때 문득, ‘나는 무면허 운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자각이 찾아왔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남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법구경』의 말씀이 뼈아프게 다가오며, 내 마음조차 돌보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교만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부족함을 외면한 채 아이들을 위한다는 핑계 뒤에 숨지 않기 위해, 나는 상담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누구이며, 왜 이 자리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에서 나를 마주하다
상담 공부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접근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중 내 마음을 가장 크게 끌어당긴 건 ‘명상심리상담’이었다. 과거의 상처를 파고들기보다 ‘지금, 여기’의 감각과 정서에 주목하는 방식은 내 삶 전체에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지금 이 호흡을 바라보는 수행의 길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자 삶의 태도였다.

나는 과거의 실수에 집착하거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지금 여기’에 머무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그들과 함께하는 마음’임을 깨달았다. 명상은 곧 나를 직면하는 수행이었고, 상담은 자비의 실천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불교의 향기가 다시 내 삶을 감싸기 시작했고, 명상과 상담은 내 삶의 본질을 여는 문이 되어주었다.

수행자로 다시 선 교실
― 아이들은 나의 거울이자 스승이었다
명상에서 ‘앉는 법’을 배운 뒤, 교실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쉽게 감정이 흔들렸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알아차리며, 생각을 멈추라”는 『대념처경』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교실에서 나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려 노력했다.

이제 교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와 아이들이 함께 수행하는 장이 되었고, 학생들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인연임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 미묘한 표정 하나에도 깨어 있는 마음으로 다가가려 애썼다. 아이들은 마치 맑게 닦인 거울처럼 나의 마음과 태도를 고스란히 비춰주었다. 그들의 표정과 반응을 보면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지, 내가 중심을 잃고 있는지 아닌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의 수행을 일깨우는 존재들이었다.

사춘기 시절부터 막연하게 꿈꿔왔던 ‘고요해지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이제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진심이 닿을까?’라는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그 질문에 하나씩 답해가며 살아가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내 자신이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잘 이해하기 위한 마음이 곧 나 자신을 돌보는 마음이었고, 아이들을 편안하게 바라보려는 연습은 내 내면의 거친 물결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수행이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내게 가르쳐주는 존재였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내가 나답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스승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날마다 나의 거울이 되었고, 나를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가르침이 되어주었다.

교단을 떠나며
지금 나는 교직에서 물러나 명상과 불교 수행을 연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음챙김과 자비, 긍정심리를 바탕으로 청소년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연구실보다도 오히려 교실이, 아이들이, 나의 진짜 수행처였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학생들의 질문 앞에서, 때론 분노 속에서, 그리고 무너지는 마음 앞에서 내가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 그 기억 하나하나가 내 수행의 체험이자 통찰이었기 때문이다. 수행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고, ‘자리’ 속에 드러났음을 깨닫는다. 교단은 나의 도장이었고, 아이들은 도반이었다. 교실을 떠났지만, 그 인연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들의 말, 눈빛, 침묵, 그리고 때로는 눈물과 미소까지, 모두가 나를 성장하게 한 가르침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원효학술상 수상 논문은 내게 단순한 연구 결과가 아니라, 아이들을 향한 진심 어린 고백서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그 아이들의 눈동자와 말과 침묵을 떠올리며 수행 중이다. 교실을 떠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인연들 속에서 배우고 있다. 어쩌면 내 수행의 길은, 그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그 시절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마음에 품고,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바라본다. 그 아이들이 내게 남긴 자취는 오래도록 내 삶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앞으로도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김나연|이화여자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했다. 동국대 불교대학(명상상담 전공)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응용선학 전공). 현재 다르마 명상심리상담센터 센터장, 동국대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청소년 단기명상 혼합연구 : 마음챙김과 자기자비, 긍정심리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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