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을 완성하는 선정 수행 『입보살행론』|원빈 스님의 경전 이야기

보리심을 완성하는 선정 수행
『입보살행론』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명상은 집중이라는 오해
서양에서는 위빠사나를 필두로 한 명상 문화가 이미 깊숙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유독 한국에서 명상이 보급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상은 집중하는 것이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명상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오해입니다. 첫째, 명상의 큰 줄기는 집중과 관찰로 나뉘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반쪽에만 해당하는 생각입니다. 둘째, 집중은 관찰 수행을 위한 발판입니다. 비유하자면 천체를 관찰하기 위해 망원경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바로 집중입니다. 관찰하지 않는 망원경은 필요가 없습니다.

명상이 보급되어야 하는 대상은 산란한 입문자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사띠(sati, 주의력)의 질이 좋지 않습니다. 집중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억지로 집중하려고 하니 일단 재미가 없습니다. 성과도 나지 않으니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면 의지력을 발휘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지력이 소진되면 포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집중은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관찰은 이해와 지혜를 낳습니다. 처음 수행하는 이들에게 집중은 어렵습니다. 반면 관찰은 쉽습니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며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생기는 이 쉬운 수행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 명상은 집중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입보살행론』 제8 「선정바라밀품」에서는 선정 수행을 철저하게 관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대승불교의 명상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입보살행론』의 「선정바라밀품」
『입보살행론』은 총 10품 914 게송으로 구성된 논전입니다. 이 중 선정바라밀에 해당하는 8품에는 187 게송이 배정되어 있고 가장 비중이 높습니다. 제9 「반야바라밀품」의 반야바라밀에 도달하기 위한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8품의 선정바라밀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8품에 입문할 수 있는 자격은 발보리심, 한 가지입니다. 발보리심은 보리심을 희망하는 원보리심과 보살계 수계의식을 통해 보리심에 입문하는 행보리심을 포함합니다. 『입보살행론』에서 보살행에 입문하는 권장 과정은 순차적인 보리심 수행을 거쳐 정진바라밀 이후 선정바라밀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전제 과정을 인식한 상태에서 8품인 선정바라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정진을 일으킨 뒤에 선정을 개발해야 하나니, 마음이 산란한 사람은 번뇌의 어금니 가운데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네. 몸과 마음이 고요하게 되면 마음의 산란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수행자는 세속의 삶을 떠나고 산만한 생각도 떠나야 한다네.”


초기 불교의 색계 선정을 훈련하는 과정은 대상에 대한 집중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미 계율을 훈습해 일상이 정돈된 전문 수행자들이 경의 가르침을 충분히 습득한 이후에 선정 수행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보살행론』은 대승 논전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선정 수행은 출가자의 전유물이 아닌,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재가의 초심 보살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일상의 환경을 정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공성의 수행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에 이르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제8 「선정바라밀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먼저 선정 수행하는 데 역행하게 하는 인연을 멀리하는 가르침입니다. 이후 자타교환의 수행을 훈련합니다. 선정에 대한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 본래 목적인 무아(無我)를 훈련하는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187 게송에는 대상에 집중하는 방법에 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이미 필요한 집중을 훈련했다는 전제이고, 그렇다면 본래 목적인 보리심을 주제로 한 위빠사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선정을 위한 환경, 적정처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많고도 많아 부처님들조차 다 들어주실 수 없는데 나처럼 부족한 이는 말해서 무엇하리오. 그러므로 세간을 향한 생각을 버려야 하리라. 사람들은 재물을 가진 이도 비난하고 못 가진 이도 경멸하는데 그렇게 기쁨을 모르는 이들과 함께한들 무슨 기쁨을 얻을 수 있겠는가. 범부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없으면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은 이들과 친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네.”

논전에서는 선정이 이루어지는 인(因)과 연(緣)을 갖출 것을 강조하며 이를 두 가지 적정처로 표현합니다. 외적인 적정처는 ‘아소(我所)인 소유물과 사람에 대한 집착을 여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대부분 재물 또는 인간관계 때문입니다. 재물과 사람을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고 의존하는 태도가 안심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 의존성을 여의고 법과 자신을 섬으로 삼는 독립적 태도가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적정처에 걱정 없이 기쁜 마음으로 머물면서 단지 홀로 고요히 모든 마음의 산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리라. 다른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로지 보리심에 의지해 마음을 길들이고 선정을 얻기 위해 정진하리라.”


외적인 환경을 적정처로 다스렸다면 이제는 내적인 적정처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적인 불안은 자아의 생존을 위해 오욕락을 추구함에서 비롯됩니다. 논전에서는 내적인 적정처로 ‘오욕락을 쫓는 삶의 목표를 대신해 보리심을 추구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내적인 적정처를 만드는 법인 동시에 선정바라밀을 추구하는 본래 목적입니다.

적정처에서의 훈련 주제, 자타교환
적정처, 즉 고요한 곳에 몸과 마음이 머무르는 것이 곧 선정입니다. 물론 무탐(無貪)과 무진(無瞋) 그리고 사띠·사마디가 있는 적적요요(寂寂寥寥)한 색계선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적정처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탐진치의 활동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논전에서는 이제 보리심을 주제로 관찰을 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아티샤의 명상요결』에서는 보리심을 절대적인 보리심인 지혜와 상대적인 보리심인 자비로 구분합니다. 보살은 고요한 몸과 마음을 준비한 뒤, 지혜와 자비를 훈련해야 합니다. 논전에서는 이를 위한 훈련법으로 자타교환을 제시합니다. 무아의 지혜를 훈습하는 동시에, 일체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품는 수행법입니다.


“먼저 나와 남이 같다는 평등성을 명상해야 하나니, 누구든 모두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싫어한다는 점에서 같으므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듯 남들을 보호해야 하리라. 우리 몸에는 팔다리와 같은 여러 부분이 있지만 이들 모두가 우리가 보호해야 할 하나의 몸이듯이, 세상에는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가 자기 자신처럼 보호해야 할 만한 사람이네.”


이 수행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자타평등을 훈련한 뒤, 자타교환을 수행합니다. 나와 남을 평등하게 여기지도 못하는데, 교환해 남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다른 사람을 내 몸의 일부로 보는 이 수행은 무아의 지혜를 근본으로 하는 동시에 자비심을 증장시킵니다. 자타평등의 수행을 반복한다는 것은 다리가 아플 때 팔이 다리를 돕듯이 중생이 아프면 당연히 그를 돕도록 뇌가소성을 활용해 두뇌를 바꾸고 나아가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남들의 지배 밑에 있다’라고 마음이여, 그대는 분명히 알아야 하나니, 지금부터 그대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모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는 것만 생각해야 하리라.”


보리심을 실천하는 목적은 오직 일체중생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서원의 함의는 일체중생을 위해 내 삶을 바치겠다는 다짐입니다. 오욕락을 쫓는 삶이 육신을 섬기는 삶이라면, 보리심을 추구하는 삶은 일체중생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이 서원을 현실과 일치시키기 위해 일체중생이라는 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자타교환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논전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중생, 수준이 비슷한 중생, 나보다 못한 중생에 대한 교만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며 그들을 온전히 주인으로 섬기는 수행을 제시합니다. 마음을 뒤흔드는 근본 원인인 아집(我執)을 다스림으로써 고요함을 확립하는 것이 보리심 수행 속 선정 수행이고, 이는 아치(我癡)의 뿌리를 뽑아내는 반야 수행의 교량이 됩니다.

명상의 목적은 지혜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지혜로써 삶을 변화시키고 안심에 이르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내면의 족쇄를 풀고 해탈하는 것, 그리고 일체중생을 해탈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것이 『입보살행론』에서 선정의 가르침이 자타교환으로 귀결되는 이유입니다. 명상을 통해 고요함을 성취하는 것은 1단계입니다. 이를 증득했다면 이제 2단계, 3단계를 넘어 궁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입문하는 순간부터 지혜를 낳는 관찰 수행을 균형감 있게 배우고 훈련한다면 한국에도 명상 문화가 원만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원빈 스님|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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